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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인의 영화관람석]<갱스 오브 뉴욕>
2003-03-11

뒷골목은 결코 멋있지 않았다. 마틴 스코시즈 감독 때문에

편애의 예고. 난생 처음으로 감독의 얼굴이 궁금했던 적은 <택시 드라이버>를 보고 난 후였다. 하지만 실망이었다. 작은 키에다 짙은 눈썹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소심한데다 코믹하게까지 생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나에게 비타협적이면서도 고뇌 가득한 신사다. 왕가위가 그의 출세작인 <비열한 거리>에 나오는 빠의 장면에서 색채의 사용을 배웠다는 말은 중요하지 않다. <좋은 친구들>에 나오는 크레인 쇼트로 찍힌 지하 식당 통과 장면 따위도 마틴 스콜세즈를 설명하는 데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할리우드 장르 영화를 찍는 척하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집어넣는 감독이라는 말도 결정적인 찬사는 못된다.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고집불통 감독이라는 말도 헌사치고는 헐렁하다.

삼각 편대. <갱스 오브 뉴욕>은 삼각 멜로물이자 복수극인 동시에 서사극이다. 암스테르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아버지는 뉴욕의 토착 갱 보스인 ‘도살자 빌’(대니얼 데이 루이스)에게 죽었다. 16년 후 다시 뉴욕에 나타난 암스테르담은 빌을 살해할 순간을 엿보면서 그의 심복 노릇을 한다. 동시에 암스테르담은 빌의 정부이기도 한 뉴욕 최고의 미녀이자 소매치기인 레니(카메론 디아즈)를 사랑하게 된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19세기 중엽 뉴욕은 결코 매혹적인 곳이 아니었다. 토착민들과 아일랜드에서 밀려든 이민자들과의 갈등, 천박한 정치인들과 신흥 귀족들과 갱들의 결탁, 노예 해방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치사하기 그지없는 남북전쟁의 모습 등, 뉴욕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자 쓰레기통이었다.

뒤집기. 그 속에서도 사랑은 꽃피어야 하고, 아버지의 복수는 멋있게 이루어져야 하지만 <갱스 오브 뉴욕>은 전혀 그렇지 않다. 디카프리오는 멋있게 칼을 휘두르는 대신에 어물어물한 후 조금 용기를 내다가 졸지에 이긴다. 사랑은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고 죽음 앞에서는 그저 그렇고 그럴 뿐이다. 이야기 구성은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관습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최소한의 개연성만 갖추고 있다. (천억 달러 이상을 쏟아 부은 제작자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마틴 스콜세즈는 미국의 역사를 결코 멋있게 포장하지 않았다. 그에 의하면 미국 역사는 치사하고 구린내가 풍겼던 역사였다.

정직한 사랑. <성난 황소>에서 챔피언은 강박증에 걸린 불행아였고, <비열한 거리>와 <좋은 친구들>에서도 갱스터들의 뒷골목은 결코 멋있지 않았다. 그것은 마틴 스콜세즈이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하지 않았던 미국과 미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대중적으로 질문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환갑을 넘어선 나이에, 그것도 할리우드에서 이럴 수 있는 것은 그가 미국을 정직하게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삼각 멜로 드라마와 복수극과 서사극이 행복하게 만나는, 그 이야기와 스펙터클의 향연만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눈을 크게 뜨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