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살 전직 보험맨 아내잃고 슬퍼하다가 숨겨진 연애편지에 열받고 후원하는 6살 꼬마에게 인생푸념 늘어놓고 사윗감 맘에 안들어 딸결혼 방해작전 펴고...슈미트 역 맡은 잭 니컬슨 행복해질 수 있을까?
여기 66살의 남자 워렌 슈미트가 있다. 퇴임날이다. 의례적인 퇴임파티까지 끝내고 나니 인생은 갑자기 공허해진다. 자신의 기업을 일구겠다던 젊은 날의 꿈이 조직의 체계라는 수레바퀴에 딸려들어가 버린 뒤, 그래도 열심히 일해서 승진하는 것으로 자족하며 살아온 삶. 그런데 이제 무엇을 하지
<어바웃 슈미트>는 주인공의 직업이 보험수리사가 아니어도, 이름이 김갑돌이어도 상관없을 어느 노년의 초상화다. 직장과 가정에 충실했으며, 이웃의 문제에는 눈돌릴 짬이 없었던 중산층 보통사람의 이야기이다. 아서 밀러는 이런 인물로 <세일즈맨의 죽음>의 비극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루이스 버글리의 1996년산 소설을 짐 테일러와 공동각색한 <어바웃 슈미트>는 유머와 회한이 절묘하게 뒤섞인 희비극이다.
은퇴생활에 적응하기도 전, 42년 결혼생활을 함께 해온 아내마저 세상을 뜬 건 비극적이다. 게다가 아내가 못 견디게 그리워져 유품을 뒤적이다가 아내가 옛날 자신의 친구와 주고받은 연애편지를 발견한 것도 비극적이다. 배신감에 사로잡힌 슈미트는 얼굴을 부비고 파묻던 아내의 옷들을 캠핑카에 쓸어담아다 의류재활용 통에 던져버린다. 분노와 재활용이라는 이질적 요소가 마찰하면 거기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런 식이다. 잭 니콜슨이 워렌 슈미트 역을 맡아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다.
슈미트의 감정기복을 드러내주는 건 편지.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린이구호기금 광고를 보고 그는 충동적으로 후원금을 낸다. 탄자니아의 여섯살난 은구두라는 사내아이가 양자로 배정되는데,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글은 그의 분노, 슬픔, 쓸쓸함을 털어내는 배설구가 된다. 66살 인생의 푸념의 대상이 6살이라는 것, 이것 역시 우스꽝스러운 역설이다. 이 역설 역시 슈미트의 노년비극에 몰입하지 못하도록 관객의 등덜미를 잡아채는 효과를 낸다. 감독 페인은 이른바 거리두기 작전을 성공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슈미트의 외동딸 지니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물침대 판매원인 사윗감이 맘에 들지 않지만, 슈미트는 캠핑카를 몰고 딸의 결혼식이 열릴 덴버를 향해 난생 처음 긴 여행을 시작한다. 길 위에서, 또 덴버에서 기다리는 물침대에서 잠을 잘못 자 목을 못쓰게 되고, 몸을 풀러 들어간 온탕에 안사돈(케시 베이츠)이 알몸으로 합류하는 등 참으로 어이없는 소극들이다. 결혼을 막을 수 있으면 막으리라 결심했건만, 온갖 아름다운 축복을 열거한 결혼피로연 축사는 이 소동의 극치다.
그런데, 이제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집에서 아름다운 반전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그건, 사는 동안 처음으로 자기 바깥으로 내민 손을 누군가가 따뜻하게 잡아주었다는 깨달음이다. 희극과 비극은 그렇게 겹쳐지고, 겹쳐진다.
아서 밀러의 윌리 로먼과 페인의 워렌 슈미트가 다른 점은 바로 그것이다. 밀러는 “이 사람을 주목하라”며 보통사람의 폐허를 가리키는데, 페인은 그 보통사람에게 출구를 마련해준 것이다. 자신을 벗어나는 순간 생겨나는 그 기적은 반전 시위가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조직가능한 연대의 시대, 또다른 세계화의 시대의 증거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사실 하나. 전작 <선거>를 부산영화제에 선보인 적 있는 감독 페인은 캐나다에서 할리우드로 활동무대를 계속 넓혀온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의 남편이다. 7일 개봉.
안정숙 기자 nam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