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코시즈가 30년간 별러온 필생의 영화, 이탈리아 치네치타에 재현한 19세기 중반의 뉴욕 뒷거리, 레오너드 디캐프리오의 변신 등 무수한 화제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9·11 테러발발로 개봉이 1년 연기되면서 궁금증은 증폭됐다. <갱즈 오브 뉴욕>이, 이민과 빈곤과 폭력과 남북전쟁으로 터져나온 정치적 격변에 들끓던 형성기의 그 뉴욕이 문을 열었다.
원주민갱-이주민갱 격돌
원주민 갱들과 아일랜드 이주민 갱들이 대결하는 첫 장면부터 뉴욕의 빈민가 파이브 포인츠는 야만적 힘이 지배하는 설화의 거주지가 된다.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친' 아버지의 나라 뉴욕을 한갖 이주민들에게 내줄 수 없다는 `도살자 빌'과 이상을 찾아 바다를 건너온 이 땅에서 한뼘의 거주공간을 지켜내려는 아일랜드 갱 `죽은 토끼'파의 우두머리 발론 신부. 발론은 어린 아들 암스테르담의 눈 앞에서 빌에게 쓰러진다. 소년원으로 보내진 암스테르담은 16년 뒤, 레오너드 디캐프리오로 성장하여 파이브 포인츠를 찾는다. 복수의 시작이다.
파이브 포인츠에는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여전히 물밀듯 몰려들고, 중국인과 해방된 흑인들이 터를 잡고 있지만 빌의 1인 지배 아래에 놓여 있다. 정치가들은 그 빌을 통해 하층민들의 표를 노릴 뿐, 그들의 삶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법은 한마디로 멀다. 그 속에서 암스테르담은 빌의 최측근이 되는데 성공한다. 카메론 디아즈가 오디션을 통해 따낸 제니 에버딘은 빼어난 소매치기 전문가. 빌이 그만의 방식으로 거둬온 여자지만, 제니와 암스테르담은 자신들의 젊음과 상처로 한데 묶인다. 두 사람의 사랑도 빌의 암스테르담에 대한 편애를 막지 못한다. 그의 품안에 있으니 아늑하다, 라는 암스테르담의 독백과 `공포'를 이용해 이 바닥의 권력을 유지해왔노라고 그에게 털어놓으며 도살자 빌이 잠시 비치는 고독은 복수의 여정에서 형성된 일종의 부자애를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식 비극이 될 법한 이 구도에 `정치'가 균열을 낸다. 뉴욕항에 정박하는 배들은 남북전쟁에서 죽어간 장정들의 관을 부려놓고, 그 수만큼 장정들을 실어간다. 병역의 의무는 그러나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부과되지 않는다. 300달러를 내면 징병면제가 가능하다. 돈 대신 목숨을 내놓아야하는 뉴욕의 빈민들에게 흑인해방이라는 남북전쟁의 대의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의사 부자관계를 끊고 암스테르담과 빌이 대결하기까지, 그러니까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그동안 파이브 포인츠 관장을 맴돌던 정치와 전쟁이 본격적으로 얼굴을 디민다. 징병에 반대하는 빈민들의 폭동과 그를 진압하는 군대의 출동. 시위대를 향해 쏟아지는 총탄과 파이브 포인츠 건물들을 향한 포탄의 자욱한 연기 속에서 두 집단의 싸움은 허무한 몸짓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모든 대립은 이렇게 지워지는 듯 하다. 신대륙 도착 시기를 기준으로 한 편가르기도, 너희를 해방시키기 위해 내 자식과 남편을 죽일 수 없다는 빈민들의 흑인들을 향한 분노도.
허버트 애즈버리 소설 영화화
허버트 애즈버리의 원작소설을 드디어 영화화해냄으로써 마틴 스코시즈는 <비열한 거리>부터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과 <비상근무>에 이르는 뉴욕탐구를 완결했다. 한 이민자의 아들로서. 그런데, 파이브 포인츠로 근대식 군대가 진군하는 냉혹한 장면은 새로 건설된 뉴욕의 원경과 겹쳐져 그 근대 이전의 뉴욕에 대한 향수마저 불러 일으킨다. 스코시즈가 재현한 연옥도는 그럴 만큼 힘있고 강렬했다. 28일 개봉.
안정숙 기자 nam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