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대표감독 몬테이루, 세상을 버리다유럽의 거장 감독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지난 1월 모리스 피알라에 이어 지난 3일에는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감독, 호아오 세자르 몬테이로가 6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포르투갈 하면 우리는 흔히 축구 강국이라는 이미지만 떠올리게 되지만 포르투갈은 축구 못지 않게 영화에서도 강국에 속한다. 그러나 산업적인 차원이 아니라 순수하게 미학적인 차원에서 그렇다. 사실 아직도 이 나라에서는 영화가 산업이 아니라 장인적인 예술로 남아있다. 1년에 고작 열 편 정도의 영화가 제작될 뿐이지만, 한 편 한 편은 세계와 영화에 대한 감독의 독특한 시선을 담고 있고, 그 형식적인 스타일은 기존의 어떤 작품과도 달라 영화 기호 해독에 이물이 난 비평가들조차 가끔 당황하게 만든다. 이처럼 ‘읽기가 쉽지 않은’ 포르투갈 영화의 특성은 42년 간 계속되던 살라자르의 독재가 끝나고 1970년대 초 포르투갈 영화에 ‘누벨 바그’가 일면서 시작되었다. 이 흐름의 선구자는 파울로 로샤와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이지만, 이들의 미학적 탐색은 1970~80년대는 몬테이로와 호아오 보텔료, 1990년대는 페드로 코스타와 마누엘라 비에가스가 이어나간다.몬테이로는 1939년 포르투갈 중부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런던의 영화기술학교에서 수학한 뒤 1968년 포르투갈 시인에 관한 첫 단편 영화, <소피아 데 멜루>를 만든다. 이후 2000년까지 그는 총 15편의 영화를 만드는데, 이 영화들에서 우리는 그의 세계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일관되게 찾아볼 수 있다.그는 실제 삶에서 종교·도덕·이념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히 성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고자 했는데, 그의 이런 퇴폐적 댄디즘은 특히 ‘John of God’이라고 불리우는 극중 인물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몬테이로의 분신과도 같은 이 인물(89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노란 집의 추억들>에서 태어나 <신의 코미디> (1995), (1998)에서 반복 등장한다)은 몬테이로처럼 철저하게 개인적으로 살고 싶어하지만 그의 ‘특이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와 마찰을 빚게 된다. 그 결과 그/몬테이로는 치유하기 힘든 좌절과 고독을 느끼게 되는데, 영화는 이들을 구원해주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노란 집의 추억들>에서 시대에 절망해 자살하는 주인공을 부활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건 영화다. 또한 몬테이로가 그만의 고유한 세계를 지키고 변호할 수 있는 것도 영화 덕이다. 몬테이로에게 영화는 데이비드 린치의 경우처럼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그의 모든 욕망들을 투사하는 장이었던 것이다. 비록 정형화된 서사 방식을 거의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 관객에게 쉬이 다가가지 못했지만.
파리/박지회·파리 3대학 영화학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