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결론에 도달했다 싶은데 눈치빠른 사진기자 이혜정씨, 이때 “사진부터 먼저 찍자”며 심재명 대표의 말을 자른다(역시 9년차 기자는 뭔가 다르다).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동안 심재명 대표의 방을 천천히 둘러보니 정면 책장에 줄잡아 20개가 넘는 상패가 보인다. “그동안 상 정말 많이 타셨네요” “상으로만 따지면 다른 제작사보다 훨씬 많은 편이죠.” 그런가 하면 심재명 대표의 방 오른쪽에는 미국의 영화주간지 <버라이어티>가 각국을 대표하는 10명의 제작자를 뽑아 찍은 기사가 액자로 걸려 있다. 워킹타이틀(<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빌리 엘리어트>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을 만든 영국의 영화사)처럼 내로라 하는 영화사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 이은 감독의 환한 웃음과 더불어 쑥스러운 듯 고개숙이며 웃고 있는 사진 속 모습이 심재명 대표의 성격을 드러내주는 듯하다. 그는 남들 앞에 나서는 일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많은 영화인이 모인 자리에서도 조금 뒷전에 서 있으며 대외적인 일은 주로 이은 감독의 몫이다. 하긴 심재명 대표는 영화사 기획실에서 일하던 시절, 영화운동을 하던 이은 감독이 너무 논리적이고 똑똑하게 말하는 데 매력을 느껴 사귀게 됐다고 한다.
그는 지난 1년6개월 동안 <씨네21>의 ‘충무로 다이어리’ 코너를 썼다. 유심히 읽어본 독자는 다 알겠지만 제작자로서 심재명 대표는 겉보기보다 훨씬 많은 것을 품고 있는 사람이다. 지난해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명필름의 여러 사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그의 말은 좀더 간명해진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말, 심재명 대표는 묻지도 않은 얘기까지 줄줄 읊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그의 글에서 느껴지듯 머리에서 오래 숙성해서 정리된 것만 끄집어낸 것 같다.
-지난해 명필름은 5편에 투자해서 3편을 개봉시켰는데, 이렇게 많은 영화를 관리해보니 어떻던가.
=여력은 되는데 이전에 과작 형태로 하면서 신경쓰는 것만큼 신경쓰긴 힘들다. 시장의 변화라든가 관객 성향의 변화라든가 그런 변화를 간과한 게 있는 거 같다.
-지난해 코스닥 등록을 위한 심사를 받았는데 등록에 성공하진 못했다.
=영화제작사는 리스크가 큰데, 앞서 제작사로서 등록한 케이스도 없고, CJ는 제작사가 아니라 유통사로서 가능했던 거 같다. 우리가 첫 번째 케이스라서….심사위원회에서는 우리가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던 거 같다.
-최근 CJS연합 움직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후 명필름은 어떻게 할 것인지.
=아직 공식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서 뭐라 말하기 그렇다. CJS가 어떤 마인드로 어떻게 할 것인지 모르면서 어떤 반응을 말하긴 힘들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거 같은데 긍정적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게 2강이 합치면 또 다른 경쟁자가 또 생길 수도 있고. 예전엔 3강이 맞는 거 아니냐, 그런 얘기도 있었지만 두고 봐야지.
-예전엔 신씨네, 우노필름, 명필름이 손잡고, 거대 배급사에 맞서서 제작사가 연대하는 형태인 SUM이라는 걸 만들기도 했는데.
=잘 안 됐다. 아무 구속력이 없으니까. 지금은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는 거 같다.
-최근 금융자본이 제작사와 투자사의 관계를 변화시키려고 하는데 이런 움직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아무래도 제작사가 전보다 불리해질 거 같은데.
=전에는 약속된 제작비를 오버하지 않으면 제작사는 리스크가 없었다. 투자사와 제작사가 5:5나 6:4로 수익을 나눴는데…. 올해부터 그런 게 아니라 지난해에도 7:3, 8:2로 변화는 있었다. 그게 아니면 총제작비 가운데 마케팅비는 먼저 비용으로 제한다거나. 투자방식이 바뀌는 건 대세 같다. 제작사가 많아지고 투자심리는 위축되니까. 당연한 수순인 거 같다.
-그간 이픽처스(해외 세일즈 회사)나 라이트림(조명기자재 대여회사) 같은 자회사도 생겼는데 이픽처스에선 어떤 성과가 있나.
=해외 세일즈라는 게 기본적인 콘텐츠가 있어야 하는데 일단 우리 회사 작품 위주로 하니까 아직은 내놓을 만한 성과는 없다. 해외 합작이나 외화에 대한 투자 등으로 관심을 넓히고 있는 중이다.
-그럼 투자한 외화가 있나.
=지아장커의 <임소요>에 투자를 했다. 전체 제작비가 5억원인데 1억원 정도. 공동제작사로 올라 있고 국내 배급권도 갖고 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임소요> 개봉시키라고 선동한 글도 봤을 텐데.
=(웃음) 개봉시켜야지. 어차피 배급권을 갖고 있는데. 아직 개봉일정을 못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