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시아 3국합작 영화 <쓰리>를 통해 공포영화의 ‘몸을 풀었던’ 김지운 감독이 몹시도 ‘괴이하고도 슬픈’ 본격 호러영화를 찍고 있다는 소문은 일찍부터 나돌았다. <장화, 홍련>이라 이름붙은 이 영화, 조선조 세종시대 평안도 어느메의 옛이야기에서 원형만 공유할 뿐,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입혔다는 이 영화의 촬영현장을 지난주 찾았다.
남양주 서울종합촬영소 제2스튜디오의 <장화, 홍련>의 ‘귀신들린 집’에는 네 식구가 살고 있었다. 마침 언니 수미(임수정)는 핏기없는 얼굴에 없어진 동생 수연(문근영)을 찾아 온 집안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현관에서 발견한 피베인 포대기, 감독에 따르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막 들어가는 순간”이다. 결사적으로 동생을 지키는 수미역과 생모의 죽음을 목격한 뒤 늘 공포에 시달리며 언니에게 의지하는 수연역의 두 배우는, 아직 영화 1~2편의 출연경력 밖에 없지만 이 몹시도 축축하고 음울한 영화의 분위기에 썩 어울려 보였다. 친엄마를 잃은 두 자매의 아버지 무현(김갑수)은 가정의 상처를 바라만 보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고, 젊고 아름다운 새엄마 은주(염정아)는 완벽한 가정을 꿈꾸지만 자신에게 적대적인 자매에게 증오심을 느껴가며 집안을 공포로 몰아가는 인물이다.
삐걱거리는 목조건물, 고풍스런 가구와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런 벽지로 꾸며진 ‘집’은 이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이다. 배경은 현대라지만, 서구풍과 일본풍이 어우러져 기묘한 분위기를 내는 이 집은, 딱부러지게 시간과 공간을 정의할 수 없는 곳이다. “가정의 비극이란 오래 전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집을 통해 상처난 가족의 내력이나, 가정의 비극이 이 집안에서 계속 반복되어 온 듯한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 언제나 ‘현대’의 이야기를 하지만, ‘영화적 창’을 통해 보여주길 선호했던 김지운 감독의 스타일이기도 할 것이다.
한적한 시골파출소에 행방불명된 동생을 찾아달라며 나타난 창백한 젊은 여자로부터 시작되는 이 영화는, 이를테면 “현대인의 죄의식에 관한 영화”다. ‘계모형 가정비극’이란 정의처럼 선악의 대립이 분명했던 고전 <장화홍련전>은 가족의 얼개만 남아있다. 죄의식은 “돌이킬수 없는 순간에 대한 두려움, 깨끗이 씻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자기안 흔적”이기도 하며, 이 ‘가족의 비극성’은 가장 감수성 예민한 시기 비극을 안에 살고 사는 어린 소녀들에게서도 찾아진다. 그 안에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관계인 가족이 내포하고 있는 공포나, 성장에 대한 공포도 있을 수 있다. 김 감독은 “<엄마없는 하늘아래>의 호러버전일 수도 있다”라고 웃지만.
영화는 세트에 지어진 실내에서 80% 정도 진행되는 실내극이 될 예정이다. 집의 외관은 뒷자락에 늪이 있는 전남 보성에 지어졌다. 올 5월 개봉예정이다.
남양주/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