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17살의 고교생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버지 및 프랑스 몽샤르 출신의 어머니와 함께 단란한 가정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에게 국세청으로부터 압력이 들어오고, 프랭크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옛 동료와 집안에서 관계를 가지는 것을 목격한다. 그러던 중 부모의 갑작스러운 이혼 소식을 접하고는 단숨에 집을 뛰쳐나간다. 이후 그는 팬암항공사의 조종사를 위장해 비행기에 무료 탑승하는가 하면 위조수표를 만들어 거액의 돈을 모으게 된다. 급기야 프랭크가 만든 다량의 위조수표를 입수한 FBI의 칼 핸래티(톰 행크스)가 추적에 나서고, 여기서부터 그 둘간의 쫓고 쫓기는 관계가 펼쳐진다. 그러나 프랭크는 번번이 칼을 따돌리고 의사, 변호사 등을 사칭하며 계속해서 사기행각을 벌인다.
■ Review
“두 마리의 쥐가 크림통에 빠졌습니다. 첫 번째 쥐는 금세 포기했고 익사했죠. 그러나 두 번째 쥐는 크림을 휘저어 버터가 될 때까지 싸우고 투쟁해서 밖으로 기어 나왔습니다. 저는 바로 그 두 번째 쥐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아버지인 프랭크 애버그네일(크리스토퍼 워컨)에게서 들은 위와 같은 우화가 깊이 새겨져 있다. 이는 희대의 수표사기꾼, FBI 최연소 지명수배자로서 쉼없이 쫓겨다니는 프랭크의 행동원칙이자, 간단히 ‘고양이와 쥐의 게임’으로 요약될 수 있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의 그의 위치에 대한 친절한 주석이다. 그리고 이 ‘톰과 제리’ 이야기에서 영악한 쥐를 쫓는 고양이의 자리는 베테랑 수사관 칼 핸래티의 몫이다.
기이한 자기반영적 우화 <A.I.> 이후,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통해 점점 흥미로운 경지를 펼쳐내며 그간 자신을 향해 날아들었던 비평적 상투구들을 의문부호 사이로 몰아넣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일견 더할 나위 없이 ‘스필버그적’이라 불릴 만한 세계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는 영화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단 그는 실존인물인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와 그를 체포한 수사관 칼 핸래티의 이야기를 소재로 끌어들인 다음, 그것을 새로운 가족적 유대를 형성해 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로 정리한다. 그런데 비슷한 의사(擬似) 부자관계가 엿보이는 영화 <퍼펙트 월드>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의 과거 스타 이미지(<더티 하리>)를 비판적으로 차용했다면,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스필버그는 톰 행크스의 스타 이미지와 로버트 저메키스의 영화를 거의 노골적으로 흡수, 변주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 가령, 문틈으로 빠져 나온 지폐 한장이 프랭크를 쫓던 핸래티의 눈앞에서 펄렁거리며 날아가는 장면에서, 우리가 포레스트 검프의 머리 위로 날아가던 깃털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포레스트의 어머니가 맡았던 역할은 일정 부분 프랭크의 아버지에게로 이전된다. 퇴역군인이자 국세청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그가 프랭크에게 생일선물로 수표책을 선물하면서 가르쳐주는 것은 (어떤 형태이건) 그룹의 일원이 된다는 것의 중요성이다. 그런 까닭에 아버지가 로터리 클럽의 회원이 된 뒤 연설하는 장면을 보며 감동에 휩싸여 박수를 치는 소년 프랭크의 모습이 영화 초반부에 배치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후 프랭크의 운동의 근저에 놓이는 것은 귀속을 향한 갈망이며 귀속감의 가시적 상징물은 바로 유니폼이 된다. 그의 운동의 방향은 진짜 아버지가 입었던 군복과도 유사한 항공기 조종사의 유니폼을 선택하는 것으로부터, 금세 벗을 수 있는 의사의 백색 가운을 거쳐, 변호사의 정장을 선택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이 여정은 그가 마침내 그를 쫓는 ‘또 다른 아버지’ 칼이 속한 FBI의 흑색 정장을 선택하기까지 지속된다. 영화 후반부, 다시 항공기 조종사의 유니폼으로 차려입고 도주하려 하는 프랭크와 그를 쫓아온 칼 사이에 벌어지는 대화에 긴장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 복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두 아버지들간의 상징적인 대립인 것이다. 사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포레스트 검프>와 더불어 <퍼펙트 월드>와 이중으로 공명하고 있는 영화다. 하지만 스필버그의 최종적인 선택은 두 영화 그 어느 쪽과도 다르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으로부터 우리가 다시 한번 스필버그의 자기반영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때 제목 “잡을 테면 잡아봐”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변신을 꾀하는 그에게서조차 언제나 가족 이데올로기와 유년의 망상이라는 진부한 테마만을 읽어내는(그리고 ‘다 따라잡았다’며 만족하는) 이들에 대한 항변, 혹은 자신감의 표명이 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프랭크의 어머니 폴라(나탈리 베이)는 스필버그의 영화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인물이다. 자식을 유기하는 <A.I.>의 어머니로부터 더욱 나아간 이 인물을 통해 스필버그는 동화적인 ‘고아의식’의 세계에 의문을 던진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가족은 이제 <A.I.> 이후의 스필버그 영화에서 그저 인물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한 출발점(이자 이상하게 뒤틀린 종착점), 혹은 숨바꼭질의 서사를 위한 히치콕적 맥거핀이 달라붙는 곳이 되었다. 프랭크는 기어이 탈출하여 재혼한 어머니의 집에 찾아가 창문 너머로 화목한 가정을 지켜보며(<E.T.>의 외계인?) 슬픔에 잠기지만, 그건 이미 그가 예전에 보았던 ‘얼룩’을 재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행복하게 춤출 때, 하얀 양탄자 위에 떨어져 있던 붉은 포도주 얼룩을.
짧은 기간 안에 빠른 속도로 완성된 <캐치 미 이프 유 캔>이 분명 낙천성과 활력으로 가득한 영화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프랭크가 체포된 뒤 수감된 프랑스의 한 감옥과 그의 어머니의 고향 몽샤르를 보여줄 때만큼은 <A.I.>나 <마이너리티 리포트> 못지않은 악몽의 미장센으로 향한다. 거기다 프랭크와 그의 아버지를 배신하는 어머니 역에 장 뤽 고다르와 베르트랑 블리에의 영화 등에 출연한 바 있는 프랑스 배우 나탈리 베이를 캐스팅한 것까지 고려하면 궁금증은 더해진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추측은 아직 좀더 미뤄둬야 한다. 다만 거의 할리우드 고전기 장인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는 스필버그의 여유 가득한 자만이 화면 가득 뿜어져 나오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이, 생각만큼 ‘순진한’ 스필버그 영화만은 아니라는 걸 분명 염두에 둬야 한다. 유운성/ 영화평론가 akeldama@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