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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워>에서 배우-감독으로 만난 사제감독 장선우·김수현
2003-01-14

제자 “접신 꿈꾸는 박수무당역 졸라…”

스승 “내가 자길 도와줄 차례라니…”

모든 데뷔작에는 그 작가의 온 체험과 욕망이 담겨 있기 마련이라지만, 김수현 감독의 데뷔작 <귀여워>에는 하나가 더 들어 있다. 사부까지 배우로 끌어들였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문제감독’ 장선우 감독을 서울, 재개발 지역 철거 직전의 아파트에서 접신을 꿈꾸는 박수무당 장수로로 변신시킨 것. 경기도 남양주군 서울종합촬영소 스튜디오의 촬영현장에서 두 감독을 만났다.

감독 : 배우

김수현(이하 김): 장 감독님(왕년의 조감독은 꼭 ‘님’자를 붙여 말한다), 잘 생겼잖아요.(웃음) 그래서 캐스팅했죠. 사실은 원래 한진희 선생을 염두에 뒀는데, 시간이 서로 안맞았어요. 문득, 감독님이 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르기 시작했죠.

장선우(이하 장): `성소'(성냥팔이소녀의 재림) 개봉한 뒤, 잠겨서 지내고 싶었어. 그런데 김 감독이 5년 넘게 날 도와줬다며 이제는 내가 자기를 도와줄 차례라니 피하지를 못하겠더라. 이런 게 다 인연인가 보다, 하고.

김: <너에게 나를 보낸다>로 충무로에 들어왔죠. 그땐 장선우 박광수 연출부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는데. 광주영화 한다기에 굉장히 하고 싶어서 기다리다 <씻김> <꽃잎> <나쁜 영화>까지 하게 된 거고. 조감독 수업은 감독님 밑에서만 했네요.

장: 배우 하니까 참 좋아. 수평적 관계에서 배우들과 얘기하는 것도 좋고. 수다가 많이 늘었어.

서로 말하기를

김: 감독님 영화 중에선 내가 안한 걸로는 <경마장 가는 길>이, 한 것으로는 <나쁜 영화>가 젤 좋아요. 장선우 영화는 지극히 공격적이죠. 관객들에게 말을 많이 걸죠. 삐딱하게. 그리고 가치관이 됐든, 세계관이 됐든 그 다양성이 좋아요. 그런데 모호하잖아요. 알듯 모를 듯한 얘기를 즐겨하고. 닮지 말아야지 했는데….

장: <귀여워> 시나리오, 처음부터 좀 특별났어.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이렇게 카니발 적인 영화는 우리나라에 없었어. 에미르 쿠스트리차 영화들, <집시의 시간>이나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에서 같은 혼란스런 에너지가 느껴졌어. 삶에서 찾아낸 판타지와 일상을 함께 갖고 뒹굴 수 있다는 것 멋있더라.

판타지, 그리고 현실

김: 89년 사당동 재개발 때 그곳으로 ‘빈활’ 갔어요. 애들과 놀아주다 철거 깡패들 들어오면 막아주는 거 잠깐 했는데, 언젠가 영화해야지 했던 것 같아요. 그뒤, <꽃잎> 끝나고 단편 하다 안좋은 일 겪은 뒤 잊고 싶어서 퀵서비스 18개월 한 거 같아요. 생각지도 않던 엉뚱한 곳까지 배달하러 다니면서 서울을 다시 발견했어요. 그 속에 사는, 욕망은 있지만 분출해낼 재주도 기회도 없는, 경계밖 사람들이 <귀여워>의 장수로와 세 동갑내기 아들들이고요. 네 부자가 순이라는 여주인공을 놓고 경쟁하지만 도덕적 잣대로 평가를 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이 여자, 누구든 닿기만 하면 억눌렸던 것들을 폭발시키는데, 촉매 같은 존재, 여신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될까요

안정숙 기자 nam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