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이상의 연극 팬이라면 프랑스 극작가 로베르 토마의 <8명의 여인들>을 어렴풋이라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8명의 여인들>은 <그 여자 사람 잡네>와 함께 토마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고, 우리 극단들도 이 두 작품을 즐겨 무대에 올렸다. <8명의 여인들>은 마르셀이라는 중년 사업가의 외딴 저택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추리물이다. 폭설이 내리는 날 마르셀이 등에 칼이 찔린 채 죽자 집에 갇힌 두 딸, 아내, 장모, 처제, 누이, 두 하녀 사이에 범인을 찾아내기 위한 상호 심문이 벌어지고, 이들의 알리바이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에서 재산과 치정에 얽힌 가족 구성원의 칙칙한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나도 1980년대 말쯤에 <8명의 여인들>을 본 기억이 있다. 대학로 어딘가의 한 소극장에서였던 듯한데, 어느 극단에서 무대에 올렸는지, 누가 연출했는지는 잊었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가, 특히 대사 연기가 썩 어설펐다는 느낌은 희미하게 남아 있다. 프랑스 바깥에서도 널리 대중적 호응을 얻었을 만큼 경쾌하고 야무지게 쓰여진 희곡을 해석자들의 혀가 충분히 소화해내지 못했다는 느낌 말이다.
<8명의 여인들>이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뮤지컬영화로 다시 태어났다. 이로써 토마의 원작은 뮤지컬코미디살인극이라는 다성체(多聲體)로 진화했다. 이미 토마의 원작만 해도 애거사 크리스티를 연상시키는 살인 동기의 미로적(迷路的) 중첩(닫힌 공간 안에서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의 전형적 구성이다) 위에 코믹하고 발랄한 대사들을 얹어놓은, 슬프고 다소 잔혹한 희극이었다. 그런데 오종은 다시 거기에 노래들을, 더러는 들떠 있고 더러는 처져 있는 노래들을, 얹어놓은 것이다. 토마 자신이 생전에(그는 1989년에 59살로 작고했다) 뮤지컬살인극을 써볼 의사를 내비쳤다고 하니, 오종이 토마에게 결례를 범한 것은 아니겠다. 더구나 스크린에 오른 <8명의 여인들>도 시간의 통일, 장소의 통일, 행동의 통일이라는 고전적 삼일치의 법칙을 우직스럽게 견지하고 있어 연극적 분위기가 물씬물씬하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왜 굳이 뮤지컬로, 하는 생각을 지워낼 수 없었다. 빠른 템포에 실린 스토리의 긴장감은 등장인물들의 노래들로 툭툭 끊기고 있었다. 카바레 곡들 가운데서 뽑았다는 이 노래들 자체가 듣기 거북살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그 자체로는 들을 만한 대중가요들이었다. 다만, 누구나 모듬회를 먹고 싶을 때가 있고, 광어회나 참치회를 집중적으로 먹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또 모듬회라고 해서 아무 생선이나 닥치는 대로 모아놓다보면 도리어 맛을 상하게 하는 수도 있다. 나는 아마 <8명의 여인들>을 볼 때 광어회나 참치회가 집중적으로 먹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면, <8명의 여인들>이라는 접시에 모인 갖가지 생선회가 서로 썩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물론 나와 달리 느끼거나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 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토마의 원작이겠지만)를 다른 방향에서 헐뜯을 수도 있다. 엄숙한 페미니스트라면(나는 물론 아니다), 이 영화가 설정하고 있는, 부지런하고 너그럽고 희생적인 남자와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게으른 여자들의 대비구도를 못마땅해할 것이다. 견결한 리버럴이라면(나는 아마 아니기 쉬울 것이다), 이 영화 속의 부지런하고 너그럽고 희생적인 자본가와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게으른 군식구들의 대비를 못마땅해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설픈 투정들을 그야말로 어설픈 생트집잡기로 보이게 할 만큼 <8명의 여인들>이라는 모듬회는 영양가가 풍부하다. 관객은 우선 카트린 드뇌브에서 이자벨 위페르와 에마뉘엘 베아르를 거쳐 비르지니 르두아양과 뤼디빈 사니에에 이르는 세 세대의 프랑스 여배우들을 이 영화에서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이들은 대개 일급 배우들이고 이들의 연기는 한결같이 볼 만하다. 내게는 특히 ‘피살자’의 처제 오귀스틴 역을 맡은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가 환상적이었다. 오귀스틴은 극도의 신경질과 좌절감이라는 갑옷 속에 한 자락의 윤리적 견고함과 따스한 마음씨를 감추고 있는 여자다. 이자벨 위페르가 아니었다면, 오귀스틴은 그저 이기적인 기숙사 사감 같은 캐릭터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미스터리물이 늘 그렇듯, <8명의 여인들>도 끝을 알고 나면 재미가 없어지는 영화다. 그러니 끝머리에 반전이 있다는 것 정도만 적어놓겠다. 반전이라는 말을 하고 보니 새 대통령이 생각난다. 개인사만으로도, 지난 한해 동안 그이만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사람이 있을까 더구나 그 거듭된 반전에는 그 자신의 퍼스널 히스토리만이 아니라 한국 정치와 사회의 지형과 방향이 상당 부분 걸려 있었다.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다, 또는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터이다. 만일 새 대통령의 지난 한해를 누가 희곡이나 소설 속에 온전히 담는다면, 그 작품은 단지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도 삼류 작품 취급을 받을지 모른다.고종석/ 자유기고가 aromach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