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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시리즈 감독 피터 잭슨 인터뷰
정리 황혜림 2002-12-24

˝물리적 압력 덜했고,정신적 압력 더했다˝

1년 뒤에 돌아오겠다던 관객과의 약속대로, <반지의 제왕>은 지난 12월 19일 전후 세계 극장가에 화려하게 귀환했다. 아직 공식 집계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국내 극장만 해도 이미 개봉 주말까지 예매 매진을 기록하면서 최소 30만 관객의 환대를 예약하며 돌아온 것이다.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이하 반지원정대)의 웅장한 서막을 잇는 3부작의 2악장은 <반지의 제왕:두 개의 탑>(이하 <두 개의 탑>). 이미 3부작을 동시에 촬영했던 피터 잭슨은, 매 편마다 꼬박 1년이 걸린다는 편집 및 후반 작업으로 올해를 보냈다고. <데드 얼라이브> <천상의 피조물> 등 저예산 B급 호러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뉴질랜드 감독이 2억7천만달러를 들여 찍은 <반지의 제왕>은 할리우드의 거대한 도박이었지만, <반지원정대>는 세계 시장에서 8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대성공을 거뒀다. <두개의 탑> 역시 전작 못지 않은 스펙터클과 캐릭터의 배합으로 호평을 사며 흥행 제패를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잭슨 자신은 여전히 "맨발" 차림을 좋아하는, 그리고 할리우드가 아닌 뉴질랜드에서 B급 상상력과 유머를 악동같은 맘껏 풀어놓을 저예산영화의 '자유로운' 재미를 잊지 않는 괴짜다. <두개의 탑> 개봉을 맞아, <필름 포스><팬고리아> 등 여러 매체에 실린 것을 종합한 그의 인터뷰를 싣는다.

<반지원정대>의 성공에 대한 소감이 어땠나. 그렇게 성공하지 않았다면, <두개의 탑>에 대한 위험부담이 더 커졌을 텐데.

→ 만약 <반지원정대>가 그런 반응을 얻지 못했다면, <두개의 탑>은 비디오로 직행했겠지. (웃음) (미국에서 11월에 발매된) <반지원정대>의 보강된 DVD 버전도 나오지 않았을 테고. 감독으로서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영화를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것 이상 바랄 게 없다. <반지원정대>를 열번, 스무번씩 본 사람들로부터 받은 편지들도 정말 좋았다. 지난해에는 뉴라인의 미래가 이 영화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몇번씩 상기해야 했다. 뉴라인쪽에서 상기시키거나, 무수한 잡지에서 그런 기사를 읽거나. 올해는 그런 물리적 압력은 덜했지만, 정신적 압력이 첫 영화보다 더 컸다.

속편인 <두개의 탑>을 준비하면서는 어떤 점이 가장 부담스러웠나.

→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 <반지원정대>는 우리가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에 놀라움의 요소가 있었다. 누구나 기대는 했겠지만, 우리가 어떤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알지 못했으니까. 이번에는 그런 놀라움의 요소는 없는 셈이었다. 사람들은 <반지원정대>를 이미 봤고, 그 이야기의 다음장을 기대하면서 <두개의 탑>이 그만큼 잘 나오길 바랐다. 성공한 영화에 뒤따르게 마련인 묘한 압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더이상 영화사에 짓눌리는 운명은 아니란 것. 그건 좋았다. (웃음)

<두개의 탑>이 더 어려운 도전이었나.

→ 그렇다. 스토리텔링이 더 복잡한 작품이니까. 알다시피 1편은 근본적으로 직선적인 이야기다. 호비튼에 있던 프로도가 여정에 나서고, 다양한 동료들을 모아서 함께 길을 떠나고. 2편은 세개의 이야기를 수평적으로 꾸려가면서 서로서로 교차시켜야 했다. 하나의 이야기를 좀더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지점까지 따라가다가 장면을 바꾸면서 사람들에게 기대를 남겨놓는 것. 보통 성공한 영화의 속편을 만들려고 하면, ‘이게 첫 영화에서도 먹혔으니까, 다시 그렇게 해야지’ 하고 비슷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두개의 탑>도 만약 <반지원정대>와 완전히 별개로 만들었다면 그렇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자족하지 않기 위해 아주, 아주 조심했다. 이미 약 18개월 동안 3편의 영화를 동시에 찍었기 때문에 뭔가를 바꿀 수 있는 여지도 적었다. 같은 작가, 감독, 출연진, 촬영감독 등 모든 게 1편의 연속이라 감수성은 같되, 원작 자체에 차이가 있었으니까. 원작의 중요한 순간은 다 들어 있지만, 톨킨이 쓰지 않았던 장면도 쓰면서 원작의 내러티브를 강화했다.

톨킨 팬들과 폭넓은 관객의 요구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나. 2편에서는 1편처럼 전사를 설명하는 플래시백도 없는데.

→ 영화사는 <두개의 탑>에도 약간의 플래시백을 넣길 원했지만, 그런 설명은 하지 않기로 했다. (목소리를 깔며) “지금까지 <반지의 제왕>의 이야기는…” 어쩌고 하는 것은, 정말이지 볼품없는 TV식 장치다. (웃음) <반지원정대>를 보지 않은 사람 중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두개의 탑>을 볼까 물론 그냥 와서는 왜 자신들이 헷갈려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반지원정대>를 안 봤다면, 지금은 DVD로 나와 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웃음) 그러니 이 영화의 첫 5분을 1편을 보지 않고 그냥 올 소수의 비위를 맞추는 데 들이고 싶지 않았다. <반지원정대>를 본 이들이 1년간의 팝콘 휴식시간 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다음 릴을 보는 것처럼, 그런 일관된 느낌을 갖길 바랐다. 난 톨킨 원작에 없던 시퀀스를 개발하는 것도 좋아한다. 이번에는 골룸의 이야기를 확장했다. 톨킨은 골룸의 정신분열적인 본성을 암시하는 정도였는데, <두개의 탑>에서는 스미골과 골룸이 서로 갈등하는 장면을 더했다. 또 톨킨은 짧게 묘사했지만, 거대한 늑대 같은 동물로 말처럼 오크를 등에 태운 워그도 흥미롭다고 생각해 기사들과의 전투신을 만들었다.

<두개의 탑>은 아라곤의 영화에 가깝다.

→ 그렇다. 아라곤의 영화다. <반지원정대>가 프로도의 영화였고. 프로도와 샘과 골룸, 골룸이 누구인가 하는 심리전이 작은 이야기고, 거대하고 서사적인 이야기는 단연 아라곤이 로한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나서게 되는 과정이다. 3부작의 가운데 장으로서 <두개의 탑>은, 보통 3부작의 중간 에피소드에 요구되는 것들을 갖고 있다. <스타워즈> 3부작에 비교하면 <제국의 역습>과 좀 비슷하다. 중간 이야기는 더 어둡고, 더 격렬해지는 경향이 있다. 아직 사건은 미결인 가운데 1편의 나쁜 상황을 가져와서 더 나쁘게 끌어가는 거니까. (웃음)

<두개의 탑>이 <반지원정대>만큼 좋다, 혹은 그 이상이란 평도 많은데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나.

→ 난 두 영화에 너무 밀접한 사람이다. 물론 <두개의 탑>은 그런 반응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다른 영화라고 생각한다. <반지원정대>는 중간계에서도 주로 공상적인 영역을 다룬다. 호비튼과 그 근사한 마을에 사는 호빗족들, 리벤델의 요정들, 로스로리언 숲. 좀더 가볍고 기발하다. <두개의 탑>은 좀더 어둡고, 판타지가 줄었다. 세상이 좀더 현실적인 공간으로 변했으니까. 인간들의 세계인 로한을 주무대로 하기 때문에 이야기도 더 사실적이고, 역사적인 느낌을 갖는다. <브레이브 하트> 같은 방향이랄까. 그러니 당신의 감성이 어느 쪽이냐에 따라 1편을 더 좋아할 수도, 2편을 더 좋아할 수도 있겠지. 난 지금은 세 번째 영화를 제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왜 절정이니까. 끝도 있고! (웃음) 아니, 아니다. 아주 감동적이다. 내가 눈물을 글썽인 데가 몇 군데 있다.

<반지의 제왕>의 성공 이후 개인적인 삶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새 집이나 차를 샀다든지, 아니면 최소한 새 신발이라도 마련했다든지.

→ 신발은 안 샀다. 신발은 두 켤레 있다. 오스카 시상식 때 신었던 근사하고 번쩍이는 검은 신발과 촬영 내내 신었던 낡아빠진 운동화. 운동화는 4년 됐는데, 구멍 투성이에 너덜너덜하다. 프랜(월시: <반지의 제왕> 작가)과 같이 5년 전에 오래된 집을 샀는데, 지붕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바꿨다. 사실 우린 <반지의 제왕>을 만드는 것 외에 뭔가를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하긴, 3년 동안 3편의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방대한 작업이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만드는 작업의 끝을 고대하나, 아니면 거기서 떠나오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나.

→ 내 인생을 재조정한 중요한 계기로 남을 테니, 끝난다면 이상하겠지. 마치 7년 동안 지속된 결혼을 끝내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사실 생각하고 싶지 않다. (웃음) 논스톱 컨베이어벨트였다. 3년 전 이 영화에 대한 허가를 얻은 이후론, 늘 기차 앞에서 선로를 까는 사람 같은 기분이었다. 커다란 영화가 바로 뒤에 있고, 또 하나가 그뒤에 있고. 효과장면과 음악을 각각 최대한 잘 만들기 위해 애쓰고는, 곧바로 다음 영화로 가는 것이다. 거대한 열차가 압도해오는데 그 열차가 날 따라잡기 전에 선로를 깔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니까. 숨을 헐떡일 시간도 없었다. 큰 영화를 만들고 6개월, 1년씩 쉬는 감독들이 정말 부럽다. 하지만 불평할 순 없다. 이 경험을 사랑했으니까. 처음부터 함께해온 팀과 계속해온 것, 1편이 잘된 것도 사기를 올려줬다. 이번에 배우들이 약간의 추가 촬영을 위해 왔을 때도 너무 재미있었다. 이 영화가 끝나면 가발을 쓰고 커다란 고무발을 한 엘리야를 보는 것도 마지막이겠지. 이언 매켈런, 비고와 리브와도 안녕일 테고.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과는 굉장한 동료의식을 쌓아왔는데, 서로 작별을 고하는 게 정말 슬플 것 같다.

<반지의 제왕>은 뉴질랜드에서 이벤트영화를 찍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 같다. 할리우드에서 멀리 떨어져도 이런 대작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던 것도 뉴질랜드 로케이션을 택한 동기 중 하나인가.

→ 난 뉴질랜드에서 사는 게 좋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얼마를 벌든 이곳에 우리의 소우주를 짓는 데 투자하고 있다. 영화 한편을 끝내고 지금 스튜디오로 개조한 창고를 사고, 또 한편으로 특수효과를 위한 컴퓨터 창고를, 또 다른 한편으로 작업실과 후반작업을 위한 사운드 믹싱 장비를 사고. 항상 조지 루카스의 스카이워커 랜치의 미니 버전을 짓고자 모든 돈을 쏟아부었다. 할리우드로부터 떨어져 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곳. 뉴질랜드 밖에서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게끔 하는 이유들을 하나하나 제거해왔다. 할리우드산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할리우드에 관심이 없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작용했는지는 몰라도, 이 영화의 질이 일부는 할리우드로부터 멀리,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고 확신한다.

<킹콩>, 좀비영화 등 신작 물망에 올랐던 프로젝트들이 꽤 있었는데, 어떤 영화를 가장 먼저 보게 될까.

→ 사실 하고 싶은 영화는 5∼6편 된다. 일단 <반지의 제왕>을 끝내면 프랜과 작은 영화를 먼저 하기로 했다. 내년쯤 <천상의 피조물들> 정도 규모의 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살인극은 아니고, 뉴질랜드의 실제 삶에 대한 드라마. 유니버설이 <킹콩>의 리메이크에 관심이 있다며 언질을 주긴 했다. 오리지널 <킹콩>은 여전히 좋아하는 영화고, 정말 하고 싶다. 하지만 다시 큰 영화를 만들고 싶어지려면 아무리 빨라도 2006년은 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는데, 솔직히 유니버설이 기다려줄지 모르겠다. 언제든 좀비영화도 하나 할까 한다. 난 열광적인 호러 팬이고, 더이상 아무도 좀비영화를 만들지 않는 것 같으니까. 좀비영화는 거의 소멸한 장르다. 그래서 또다시 그런 영화를 만드는 거도 근사할 것 같다. 저예산 공포영화를 만드는 재미 중 하나는, 바로 자유다.

혹시 감독 외에 하고 싶은 일이 있나.

→ 난 정확히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8∼9살 때부터 해왔던 그 일. 지금도 별로 다르다고 느끼지 않는다. 아직도 조그만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어떤 앵글을 쓸 지 궁리하는 9살짜리 아이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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