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오늘은 선거일. 사막으로 뒤덮인 섬의 가장자리에 낙하산에 매달려 내려온 투표함 하나가 착륙한다. 이제 막 근무를 교대한 군인은 이 섬에 온 여자(!)선거관리인을 안내해야만 한다. 그는 선거관리인이 여자인 것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그렇게 악착같이 투표할 것을 권고하고 다녀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선거관리인은 그런 무지하고 고지식한 군인한테 하나에서 열까지 설명을 하며 돌아다닌다. 어울리지 않는 이 둘은 이제부터 어쩔 수 없이 한팀이며 섬의 주민들을 ‘찾아내’ 투표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까지 돌아와야만 한다.
■ Review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영화 <민주주의의 실험>의 한 장면(투표함을 들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여자)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게 되었다는 이 영화는 1999년 <하루만 더>에 이은 버박 파여미의 두 번째 작품이다.
도시에서 온 선거관리인과 그 섬에서 보초를 서는 군인은 오늘 하루 섬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투표를 권유해야만 한다. 솔직히 그렇게 해야 하는 사람은 선거관리인이고, 군인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라나서게 된 셈이다. 그런데 이 군인에서부터 시작해 만나는 거의 모든 유권자들이 각자 하나씩의 이유와 근거와 사정과 논리로 오늘 하루의 선거 원칙을 복잡하게 한다. 열명의 후보 중 아무나 두명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 일이지만, 그것이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밀수꾼도 할 권리가 있는 투표라면 하지 않겠노라고 군인은 언포하고, 결혼은 12살이어도 되고 왜 선거는 16살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선거관리인은 난감해한다. 혹은 남자의 허락없이는 못하겠다고 하고, 산모로서 다른 남자 사진을 볼 수 없어 못하겠다고 하고, 물건을 팔아줘야만 하겠다고 하고, 믿는 것은 신뿐이니 차라리 신에게 하겠다고 하고, 죽은 사람을 되살리지도 못할 문제이니 안 하겠다고 하고, 아는 사람은 당신뿐이니 당신에게 하겠다고 한다. 선거관리인은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포기하고, 때로는 혼란스러워 하고, 때로는 깨닫는다. 누구의 말이, 무엇에의 기준이 맞는 것일까 어디에 원칙을 묶어두어야만 하는 걸까
투표를 해야만 한다는 원칙이, 그러니까 객관화된 집단의 원칙이 개인의 상황들에 마주치면서 그 논리를 질문받는다. 법이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무효화되기도 하고, 아예 폐기되기도 한다. 민주주의를 상대로 묻는 휴머니즘의 질문들이 이어진다. 따라서 그것이 비난조로 들리거나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시 대답보다는 질문들이 더 많이 남게 된다. 특이한 논리의 설득과 논쟁을 거치면서 선거관리인과 군인은 그 남은 질문들을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만들어간다. 그녀는 투표함을 들고 떠나가고, 근무시간을 끝마친 군인은 하염없이 생각에 잠긴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진실에 관한 민주주의적 모호함, 민주주의로 얼룩진 휴머니티, 둘 중 어느 쪽을 가리키는지 가늠하면서 봐야 할 여지를 남긴다.
무엇보다도 도시에서 섬으로 들어오는 선거관리인은 도시에서 농촌으로 들어오는 외부인이라는 점에서 키아로스타미의 인물과 겹쳐진다. 모흐센 마흐말바프에게서 영감을 얻은 이 영화는 더불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제식화된 방식들에 많은 부분 선택적으로 기대고 있다. 영화 속의 어느 누구보다도 질문을 많이 받고 또 당혹한 논리들에 마주서야만 하는 선거관리인은 키아로스타미의 인물들처럼 미로 같은 낯선 골목길들을 헤매야 하는 대신(<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에서 얼마 전 본 것처럼), 그만큼의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미로를 겪어야 한다.
♣ 주로 카메라는 인물을 쫓아서 따라가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무심히 보기만 한다. 숏의 길이가 왕복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시간 할애되고 있는 것이다.
키아로스타미에게서 배운 교훈들은 순환과 왕복으로 나타난다. 섬으로 들어왔다 다시 섬을 빠져나갈 때까지, 또는 근무를 시작해 근무가 끝나는 시간까지, 라는 식의 시간상의 순환구조에는 공간 안에서의 왕복이 겹으로 놓여 있다. 화면 안에서 인물의 동선이 종종 눈에 띄게 반복적인 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선거관리인에게서 눈을 떼지 말자. 이 사람은 유권자들에게 투표시키기 위해 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름의 이유로 거절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이 사람은 꼭 그 일을 해내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근데 시간은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매우 조급하다. 또한 그들과는 일종의 심리적 거리감이 형성되어 있다. 이것을 영화는 왔다 갔다 하는 인물의 반복적인 왕복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그재그로 뛰거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뛰어다니는 대신 화면의 전경에서 후경으로, 또는 후경에서 전경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곧잘 볼 수 있다. 반복의 개념을 차용하면서도 이 영화의 의미에 결부시켜 멀고 가까움의 심리적 거리감을 공간 안에서의 전후 움직임으로 표식화하려고 한다. 주로 카메라는 인물을 쫓아서 따라가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무심히 보기만 한다. 종종 숏의 지속시간이 길다고 느낄 때쯤 투표함을 든 그녀가 이쪽으로 오거나 그쪽으로 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둘 모두. 숏의 길이가 왕복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시간 할애되고 있는 것이다.
♣ 어떤 사람은 남자의 허락이 없이는 선거를 못하겠다고 하고, 산모로서 다른 남자 사진을 볼 수 없어 못하겠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선거관리인은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포기하고, 때로는 깨닫는다.
숏이 길어지고 카메라가 멀리 있을 때, 또 다른 차용의 표식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여전히 카메라는 멀리 있다. 또 한 사람의 유권자를 만난 선거관리인은 분명 열변을 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끄러운 기계 소리에 그들이 나눈 대화를 ‘들을 수가 없다’. 듣고 들리지 않고. 키아로스타미가 오프 스크린을 활용하기를 즐긴다는 것은 이제 모두 아는 사실이다. 보이고 보이지 않고. 여기서 효과는 동일한 목적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만약 <비밀투표>가 어느 순간 지루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아마도 반복이 단 하나의 정점을 이루지 않고 그것들을 여러 번 나열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복은 말 그대로 계속되는데, 그때마다 꼭 의미가 단락지어져 있다. 이런 걸 그 무슨 거장과의 차이라고들 한다. 정사헌/ 영화평론가 taogi1776@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