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금 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엉망이 된 지프 한대가 갈피를 못 잡게 꾸불꾸불한 길을 간신히 기어나가는 장면 위로 이런 불평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내 생각에는, 이란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최고 작품인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는 이렇게 시작한다.
엔지니어 한명과 조수 두명(스크린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일행이 테헤란을 떠나 머나먼 쿠르드 마을 시어 다레에 당도했다. 이들이 찾으려는 길이 헷갈린다면, 그들의 의도 역시 그러하다. 비록 가이드를 맡은 마을 소년에게 농담처럼 ‘보물’을 찾아왔다고 얘기해주기는 하지만, 이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왜 이 시어 다레 마을에 왔는지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다. 그 보물이란 것이 마을의 병든 노파(역시 스크린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곧 확실해지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결코 직접적으로 밝혀지지 않는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는 솔직하면서도 장난스러우며, 놀라우리만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또한 산뜻하게 겸손한 영화이기도 하다. 키아로스타미를 두고 많은 평론가들이 여러 가지 호의적인 평을 남겼지만, 그의 작품들은 정말이지 잘난 척과는 거리가 멀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는 유쾌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놀랍다는 느낌이 먼저다. 키아로스타미의 유머감각은 그가 그리는 시골풍경만큼이나 건조하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코미디다. 타이밍이 완벽하고 대사의 경계가 급작스럽다. 개그는- 개그라는 표현이 적당한 것이라면- 이 작가의 활기차고 어딘가 아이로니컬하기도 한 보이스오버와 시점사용에서 잘 나타난다. 때로는 동물 울음소리로 변화가 주어지기도 하면서 똑같은 일상이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는데, 이것은 마침내 어떤 뮤지컬적 구조마저 만들어낸다(염소 한 무리가 스크린을 가로지르는 것으로 숏이 마무리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이런 견지에서 보자면,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는 자크 타티의 영화와도 닮았으며 좀더 최근 작품들 중에서는, 기타노 다케시의 <기쿠지로의 여름>을 생각나게 만든다.
다큐멘터리라고 해석한다면(실제로 일부는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는 크게 보아 이 마을의 일상적 삶, 즉 간결한 풍습과 괴상한 말다툼을 주로 담는다. 하지만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만들기 방식은 이 이상의 무언가를 겨냥한다. 이것은 누구 건지 모르게 떠다니는 목소리들과 절반 이상의 캐릭터들과 새로 태어난 아기를 포함해, 스크린 밖의 존재들을 다루는 영화이다. 늘 건물 안에 있거나 어디선가 딸기를 먹고 있는 엔지니어의 두 조수들과 마찬가지로, 키아로스타미는 언제나, 볼 수도 보여줄 수도 없는 것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것을 관객에게 요청하는 것이다(이중에는 공식적으로 이란의 “안 보이는” 소수족으로 통하는 쿠르드족도 포함될지 모른다. 감독은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는 어떤 종류의 정치적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지만, 그는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받았다고 느낀다면 그건 그들 소관이다”라며 뭔가 암시적인 톤을 사용했다).
이러한 뛰어난 형식 덕분에, 영화의 마지막 10분 동안 관객은 뭔가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는 무(無)와 만물에 대한 영화이며, 삶과 죽음, 빛과 먼지 이는 언덕에 대한 영화이다. 결론을 자신있게 결여시킴으로써, 이 작품은 키아로스타미의 공식적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도식적이고 답답한 알레고리투성이의 <체리향기>를 훨씬 뛰어넘는다. 다큐멘터리와 자기고백적 영화만들기의 각각 측면이 자연스럽게 섞여 조화를 이루면서, 편안하고 결말이 열려 있는 우화가 되었다. 이리하여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는 그저 재미난 재료들에 지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신비로우리만치 형이상학적인 비전을 만들어냈다.
이 모든 위대한 시간낭비 덕분에,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는 무엇보다도 임종 감시인의 역할을 다한다. 영화 후반에 가면 그 엔지니어가 시어 다레에 2주나 머물렀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결국 밤이 되자, 그가 거기서 보낸 시간은, 금빛 찬란한, 아무런 목적없는, 영원한, 단 하루의 오후 한나절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59살의 키아로스타미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영향 아래 성장한 마지막 세계적 영화거장일지 모른다. 직업배우가 아닌 이들을 기용하는 것, “일상의 평범한” 상황들을 배경으로 삼는 것, 꾸밈없는 카메라 스타일, 분위기 있는 음악을 일부러 피하는 것, 아이들에 대한 관심, 열린 결말에 대한 선호 등등은 그런 짐작을 뒷받침해준다. 하지만 마지막 네오리얼리스트로서의 키아로스타미는, 스스로의 모습 역시 제대로 투영해낸다. 짐 호버먼/ 영화평론가·<빌리지 보이스>
* (<빌리지 보이스> 2000.8.1.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