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은 그 어떤 공간도 닫힌 공간으로 만든다. 한국의 해안선은 3중의 의미에서 ‘벽’이다. 민간인들은 밤이 되면 아름다운 해안선의 어떤 부분을 넘을 수 없다. 반대로, 그 선은 수색대원들에게는 세상과의 단절을 뜻하는 선이기도 하다. 또 크게 보아 그 선은 ‘통일’로 가려는 조선인들의 열망을 막는 벽이다.
이렇게 3중의 벽으로 닫힌 공간 속에 연기자들이 투입된다. 김기덕의 남자들은 그 속에서 넘어서는 안 될 것/넘고 싶은 것 사이의 심연을 깨닫는다. 김기덕은 다시, 그 남자들을 그 심연 속으로 침투시킨다. 그리고 김기덕의 여자들은 종종 그 ‘심연’에 존재하는 희생양들이다. 연기자들은 심연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닫힌 비극의 상태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꿈을 깨듯 영화는 끝난다.
<해안선>은 그 닫힌 상태의 한 기록이다. 펼쳐져 있지만 드넓은 벽인, 닫혀 있는 물. 어떻게 음악적으로 그 공간을, 그리고 그 공간 속의 상황을 표현할까. 음악을 맡은 장영규(for 복숭아) 역시 그에 관한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장영규는 어어부프로젝트의 멤버로서 이미 <반칙왕> <복수는 나의 것> 등 비중있는 작품에서 작품의 무게를 훌륭하게 감당해왔다. 코믹 서커스 유랑극단의 음악에서 무조적이고 신경질적인 불협의 선율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도 영화를 따라 점점 넓어진다. 이제는 어느 정도 베테랑이 되었다 싶을 정도로, 어떤 영화적 상황이라도 음악적으로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 보인다.
이번 음악에서는 ‘비극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음악적으로 비극성과 ‘신파’를, 다시 말해 울부짖는 사람들과 울고 짜는 사람들을 구별하고 있다. 신파를 배제하고 심각한 비극적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하는 것이다. 비극의 특징 중의 하나는 ‘구조’가 완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극은 완결된 구조 속에 투입된 운명들이 어떤 ‘힘’에 대항하거나 혹은 그 힘에 놀아남으로써 맞이하는 결과이다. 이 영화의 음악은 거의 곡마다 반복적인 아르페지오로 닫히고 완결된 구조를 암시한다. 첼로의 저음이나 불협적인 피아노의 신경증적 느낌을 바탕으로 그 구조는 짜여진다. 그 위에 심각한 단조의 선율이 흐른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그 심각한 구조를 밀어붙이는 건 아니다. 이러한 기조 위에 다양한 방식으로 슬픔과 애수를 표현한다. <미영의 테마>는 동요적이다. 남자친구가 간첩으로 오인, 사살당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이후 실성한 미영은 이 전체적인 비극의 구조가 낳은 가장 뼈아픈 희생양이다. <미영의 테마>는 현실은 날아가고 오직 유아적인 추억의 공간만이 남아 있는 실성한 사람의 마음속으로 사람들을 이끈다. <과거는 흘러갔다>는 반추하는 듯하다. O.S.T는 장동건이 부른, 무반주의 버전과 어어부가 부른 버전을 모두 싣고 있다. <강상병의 테마>가 따로 있긴 하지만, 이 노래가 좀더 강 상병의 테마에 가깝게 들린다. ‘해안선’의 비극적 구조를 초래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그 구조의 좀더 근본적인 희생양이기도 한 강상병의 노래는 ‘돌이킬 수 없음’을 표현하고 있다. 김기덕의 영화는 희생양의 영화다. 르네 지라르가 말한 것과 비슷하게, 그 희생양들의 돌이킬 수 없는 죽음과 실패가 오히려 우리를 정화시킨다.성기완/ 영화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