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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애> 프로듀서 신혜은
2002-12-04

감독은 공격수,프로듀서는 수비수

→ 1966년생→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3) 제작 스탭→ 1993년 6월, 변영주 감독과 함께 다큐멘터리 제작소 `보임` 결성→ 이후 <낮은 목소리>(1995), <숨결>(2000) 제작→ 김소영 감독의 <거류>(2001) 프로듀서

신혜은(36) 프로듀서는 <밀애>의 숨은 산파다. 알려져 있듯, 3년 전 원작을 읽고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맘먹은 것도 그다. 독자로서 “미흔이 묘사하고 고백하는 어떤 모멘트의 정서들에 공감했다”는 그는 “거창한 메시지 대신 통속적인 줄거리를 제시하는 것이나 미흔이 창문을 넘는 장면의 시각적인 쾌감”이 자신을 현장으로 내몰았다고 말한다. 처음엔 원작에 대한 부담 때문에 싫다고 했던 변영주 감독이 결국 연출을 맡기로 하면서 추진에 힘이 붙었지만, 그러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도중 제작사가 바뀌고, 심지어 남자배우 캐스팅도 끝을 보지 못한 채 서둘러 촬영에 들어가야 했다. <거류>를 찍을 당시부터 점찍어놨던 남해를 로케이션 장소로 삼아 낙향했지만, 태풍 루사의 변덕에 휘말려 촬영 일정 또한 지연됐다. 여름이 끝나기 전까지 돌아가야 하는 폴란드 촬영스탭들을 고려하면 <밀애>는 ‘시간과의 피말리는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갑내기 단짝인 변 감독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다면 이를 어떻게 버텼을까. 그러고보니, 벌써 10년이 넘었다. 변 감독을 알게 된 것은 1991년 말. 그는 ‘이름 대면 알 만한’ 문화판 선배들과 영화저널을 준비하고 있었다. “옆 사무실이 푸른영상이었는데 거기 있던 변 감독이 날 볼 때마다 ‘눈 좀 크게 떠보라’며 ‘강아지같이 생겼다’고 놀려댔어요. 그러다 친해졌죠. 매일 정기적으로 알코올 타임을 가질 정도로.” <레즈>도 좋지만, 들국화 콘서트에 가는 것도 좋아했던 당시로선 겁없는 성향으로 인해 이들의 만남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고. 동시에 선배들의 눈총 대상이기도 했다는 그는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제작에 참여한 뒤, 곧장 보임을 결성한다. “필름 작업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것. 당시에는 비디오 다큐가 대부분이라 주위에서 “니네 돈 많냐”는 식의 욕도 많이 먹었다는 그는 15만원 든 통장을 종잣돈으로 필름 100피트씩을 후원받는 캠페인 등을 통해 <낮은 목소리>를 제작한다. “감독이 판 벌이면 뒤치다꺼리하는 게 프로듀서잖아요. 감독이 공격수라면 프로듀서는 수비수죠.” 앞으로의 진로를 모색하면서 잠시 떨어져 있자고 합의한 뒤 95년부터서는 영화 월간지 <키노> 기자로 일했다. 하지만 마감을 일찍 끝낸 뒤 사무실 앞에 찾아온 보임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했다는 그는 결국 <숨결>로 다시 현장에 컴백한다.

“영화 일은 싫증이 안 나요.” 입시학원 강사부터 광고 카피라이터까지, ‘이력서가 걸레’라는 그는 스스로를 “통풍이 안 되면 못 견디는 체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서부영화광이었던 엄마(정작 영화가 시작하면 잠이 들곤 하시던) 의 성화에 TV 앞에 끌려나와 본의 아니게 온갖 장르를 섭렵하면서 일기 시작한 창작에 대한 경외와 작가들에 대한 동경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가 프로듀싱할 다음 작품은 <밀애>의 시나리오를 만들었던 김재연 작가의 연출 데뷔작인 미스터리영화. 변 감독과도 차기작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데, 게임에 빠져 있는 통에 아직 이야길 건네지도 못했단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