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먼저. 영화의 앞날을 걱정하는 따위의 주제넘은 일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의 앞날이 궁금할 뿐이다. 그래서 눈앞에 벌어지는 영화 현상의 이면을 캐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쓰지만, 확실한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해외의 영화 전문가들과 유학생들은 한국영화가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대중영화와 작가영화가 뒤섞여 곧 터질 듯 꿈틀대는 화산같은 곳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진담, 농담같은 진담, 위악스런 진담 대신에 농담 그 자체이거나 진담 혹은 위악으로 포장된 쓰레기같은 대부분의 한국 영화를 나만 혹평하고 있단 말인가 모를 일이다. 여하튼 한국 영화와 영화 산업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그 이면에는 참혹함 혹은 나약함도 있다. 분명히 개봉은 했건만 불과 하루도 넘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영화가 참혹함에 속한다면, <메이드 인 홍콩>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던 홍콩 감독 프루트 첸의 야심작 <화장실 어디에요>는 나약함에 속한다. 한국, 홍콩, 중국, 인도, 미국 등을 무대로 아시아의 아픔을 그리고자 했던 이 영화를 보다가 나 역시 졸고 말았다. 그래서 다시 봤다. 하지만 치밀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예술적 야심, 그 나약함과 단순함에 경기를 일으켰을 뿐이었다. 내가 보기에, 해외의 추킴에 으쓱해 있는 한국 감독들과 아시아 영화의 바람에 스스로 감복하는 프루트 첸 등은 여전히 ‘후진 상태’에 머물고 있다.
디지털 영화제를 표방하고 있는 ‘레스페스트 2002’(11.29~12.5,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는 그 후진 상태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 음악, 디자인 그리고 문화와 예술이 영상을 통하여 만나는 이 자리는 단순히 기술적 진보만 주장하지 않는다. 과거의 실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재 혹은 미래의 실험에 대해 논쟁하는 자리, 주류 영상의 시장터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말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분명 기술의 진보는 개인의 표현력을 향상시킨다. 이 말은 우리가 거대 자본과 결합하지 않고도 영상 예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 이제 혼자서도 영상으로 놀 수 있다고 유혹한다. 수많은 영화제들의 세속적 통속성에 동조하지 않고도 각자의 ‘첫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격려한다.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각자의 세상을 보는 시선과 상상력에 달려 있다. 이런 주장은 지난 토요일 밤 5시간 동안 상영된 심야 프로그램에서도 드러난 편이지만, 개막작으로 상영된 크리스 커닝햄의 뮤직 비디오 <프로즌 : 마돈나>, <플렉스>, <컴 투 데디 : 에이펙스 트윈> 등 12편은 그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열아홉살에 <에이리언 3>의 특수효과팀을 이끌었던 커닝햄은 이제 주류 영화와는 완전히 담을 쌓고 자신의 세계에 몰두한다. 하지만 그것은 혼자만의 세계가 아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끓고 있는 분노와 욕망 그리고 절시증을 그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드러낸다. 그것은 격렬하거나 느끼한데, 그가 시대와 호흡을 함께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기술과 시장의 진보는 언제나 가능하다. 하지만 예술의 진정한 진보는 시대의 진보 정신과 함께 해야만 가능하다. 진보가 싫다면 할 수 없지만.
이효인/영화평론가,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