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로 잘 알려진 독립영화판의 여걸 변영주가 메가폰을 쥔 첫 본격 극영화인 <밀애>는,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교과서적인 사랑의 전복’을 꿈꾼 영화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일부일처제의 구조를 받아들였던 한 여자가 남편의 외도에 의해 그 구조 자체가 허위라는 걸 깨닫는다. 2) 배신감에 젖어 있던 그녀가 역시 일부일처의 구조에 회의를 품고 있는 한 시골 의사와 한여름 동안의 격정적인 밀애를 겪는다. 3)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찾는다. ‘격정멜로’라는 근사한 장르명이 붙어 있는 이 영화는 마치 플로베르의 <보바리부인>의 현대 한국판 같다. 특히 시골 밤길을 잠옷바람으로 달려 자신의 애인을 찾아가는 장면 같은 데가 그렇다. 이 불륜의 드라마에서 어느 정도 ‘고전’의 느낌이 풍긴다.
음악은 이 영화의 그런 측면을 고려하지 않았나 싶다. 심리극에 잘 어울리는 실내악적인 분위기를 주로 구사하고 있다. 브람스의 <피아노 사중주 G단조> 같은 작품을 선곡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전적인 실내악풍의 음악은 거의 대부분의 드라마가 전개되고 있는 시골스러운 공간에도 잘 어울린다. 핀란드의 민요나 빌라로보스, 비발디의 작품이 선곡된 것도 내면적인 심리드라마, 전원풍의 분위기, 그리고 고전적인 향취라는 세 꼭지점에 포인트를 고려할 때 이해가 간다. 작품을 이끄는 중요한 모티브로 여겨지는 존 바에즈의 <도나 도나> 역시 이러한 맥락에다가 여성적 소박함에서 오는 굳셈이랄까, 그런 것을 추가한 느낌이다.
핀라드 민요에서 존 바에즈의 음악까지, 시공을 종횡으로 누빈 음악을 감독한 사람은 조영욱이다. 알다시피 그는 <접속>에서 <러버스 콘체르토>를 발굴하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탁월한 선곡자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영화음악계에서 그의 음악선곡 폭이 가장 넓지 않나 싶다. 그것은 그가 그만큼 폭넓은 ‘리스너’라는 점을 알려준다. <텔미썸딩>에서는 닉 케이브의 노래를 선곡하더니 <해피엔드>에서는 북으로 간 가수 김해송의 음악까지 선곡했다. 그가 이렇게 폭넓게 음악을 선곡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가 음악을 엄청나게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의 선곡에서는 그가 얼마나 음악을 좋아하는지가 절절히 묻어 있다. 감상적이면서 차분한 오리지널 스코어는 최승현, 심현정이 썼다. 전체적으로 선곡과 스코어가 무리없이 영화에 들어맞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전체적으로 조금 덜 ‘격정적’이지 않았나 싶다는 것. ‘격정멜로’치고는 뾰족한 데가 덜하고 오히려 동글동글 갈려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조금 지나치게 고전적이고 평온하다는 것.
물론 ‘여성의 시각’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대놓고 격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화 <밀애>는 결과적으로는 약간 아이러니한 대목이 있다. 여주인공이 한여름 동안의 격정적인 밀애를 통해 남편과 자식 대신 자기 자신을 찾는다. 그건 맞다. 그러나 그녀의 죽은 애인이 ‘한 여자에 한 남자’식의 애인관계를 부정하는 반면 그녀는 여전히 그 구조 속에 있다. 그녀는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당신이 필요해요”라고 말한다. 자기 애인을 자기와 일대일 대응시키고 그 구조 속에 묶어놓으려 한다. 어떻게 보면 바람둥이인 남자 애인은 미꾸라지처럼 그 구조를 빠져나간다. 여관방에서, 잠을 깨고나니 남자는 가고 없다. 일대일 대응의 관계 속에 홀로 남아 있는 건 오히려 여주인공이다. 그래서 ‘조금 덜 격정적인’ 느낌이 들었던 걸까. 어쨌거나 음악은, 그런 느낌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