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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감독 “일류는 느끼해 삼류가 상큼해”
2002-11-15

<주유소 습격사건>(1999)과 <신라의 달밤>(2001)이라는 두 편의 코미디가 잇따라 성공하면서 일약 ‘흥행감독’의 앞자리를 차지한 김상진(35) 감독의 새 코미디 <광복절 특사>가 22일 개봉한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등 두 편에서 호흡을 맞췄던 시나리오 작가 박정우씨와 함께 만든 작품이다. <광복절…>의 첫 기자시사회가 열린 13일 중앙극장 커피숍에서 만난 김 감독의 장난끼 가득한 얼굴엔 코미디 감독이라고 써 있는 듯했다. “데뷔 때부터 ‘탈옥’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포장마차에서 김형준 한맥영화사 사장과 소주 한 잔 하다 그 얘기를 했더니, 그 분이 탈옥 영화는 많으니 다시 들어가는 얘길 만들어보라고 했다. 그 때 바로 느낌이 왔다. 기가 막힌 얘기가 될 것 같아 그걸 지금까지 발전시켰다.” 사진기자가 하자는 대로 연기자 뺨치는 우스꽝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던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광복절…>이 그의 이른바 ‘쌈마이 코미디’의 최종판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주유소…>가 새로운 ‘장르’까진 안 돼도, 당시 우리나라에 없던 새로운 톤의 코미디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그 전엔 섹스 코미디 아니면 사회풍자적인 요소가 강조된 코미디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주유소…>는 즉물적이고 직선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좀 새로운 코미디다. 물론 다분히 폭력적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나온 뒤 ‘아류’라 할 만한 코미디가 많이 나왔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령 우리는 <주유소…> 이후 세 편을 만들면서 그 밑에 은근하게 깔아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마구 쏟아져나오는 코미디들을 보면 그런 게 깔리지 않은 채 단순히 폭력적인 행태만 빌린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젠 좀 다른 방식의 영화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다른 영화라곤 해도 그는 여전히 ‘코미디’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코미디를 만들긴 할 텐데, 지금까지와는 느낌이 좀 다를 것이다. 가령 서스펜스가 있는 코미디라든가, 역사적 이야기를 코미디로 새롭게 재해석한다든가 하는.” 좀처럼 진지해지거나 심각해지기 어려워 보이는 김 감독은 “코미디 이외에 도전해보고 싶은 다른 장르가 있느냐”고 묻자, “죽어도 하기 싫은 장르를 말하는 게 더 빠를 것”이라는 답을 돌려준다. “멜로하고 에스에프는 거의 할 가능성이 없을 거다. 우선 멜로는 그 감수성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무리 애써도 난 그런 쪽으론 닭살만 돋지, 전혀 발달이 안 된 것 같다. 다음, 에스에프는 한국 현실에서 정서적 바탕도 다르고 특수효과나 컴퓨터그래픽 등 기술력이 뒷받침이 안 되는 것 같다. 관객도 잘 따라와 주지 않는다. 할리우드 에스에프엔 관대하면서 한국의 에스에프에 대해선 너무 인색한 것 같다. 이런 거 빼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코미디, 액션, 서스펜스, 공포 등이다. 앞으로는 이런 걸 배합할 것이다. 어차피 이제 영화가 단순히 한 가지 장르만 가지고는 안 된다. 액션 코미디라든가 로맨틱 코미디 등 복합적인 장르이어야 힘을 갖는다. 요즘 관객들의 요구도 그런 것 같다.” 그는 시나리오 대로 찍는 법이 없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수정하기도 하고, 작은 에피소드조차 어디로 튈지 모르게 자꾸만 뒤튼다. “그렇게 잔뜩 벌려놓으면 나중에 결말을 지을 때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오버’에 ‘오버’를 거듭하다 보면 원안대로 결말을 짓기가 어렵다. 가장 고마운 사람이 박정우 작가다. 이번엔 결말을 12번 수정했는데, 끝까지 함께 달라붙어 새로 썼다. 나중엔 촬영 직전까지 수정본을 건네주지 않았다. ‘이 인간 (결말을) 바꾸는 게 취미’라면서….” 그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여섯 편의 영화 가운데 다섯 편이 코미디다. 웃음에 관해선 일가견이 있을 법한데도, 김 감독은 “그런 거 없다”고 겸손해 한다. 좋아하는 배우는 역시 채플린, 좋아하는 감독은 코엔 형제. 코엔 형제를 좋아하는 까닭은 “그들 영화에 아이러니가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부조리하고 불합리하고 역설적인 상황에서 빚어내는 웃음을 좋아하는 편이다. 전체 줄거리도 그렇지만, 작은 에피소드에도 그런 아이러니를 넣어두길 즐기는 편이다. 가령 <광복절…>에서 교도관이 죄수 노릇을 하는 식의 에피소드가 그런 예다. 그런 상황이 주는 웃음이 재미있다.” 웃음에 관한 철학 대신 그에겐 이를테면 ‘삼류에 관한 철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 “작가 박정우씨와도 많이 한 얘기지만, ‘일류는 세상을 지키지만, 삼류는 세상을 바꾼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그래서 ‘삼류로 가자’는 거다.” 체면이나 모양새를 돌아보지 않는 그런 과감한 ‘삼류 정신’이 어쩌면 그의 영화의 힘일지도 모른다. 김 감독은 다음 작품으로 가까운 과거인 1920∼1930년대 조선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찍었던 사람들 이야기를 역사 코미디로 만들어볼 생각이다. 슬랩스틱이나 개그에 의존하지 않는 또 다른 형식의 코미디를 그에게 기대하는 건 이제 관객의 몫일 터이다.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