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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밴드 12팀의 편집음반
2002-11-14

살아 숨쉬는 인디

편집음반은, 대개 여러 뮤지션의 히트곡을 모은 ‘종합선물세트’로 기획되거나, 아니면 새로운 음악(인)에 대한 소개서 및 ‘리트머스 시험지’의 용도로 발매되곤 한다(넓게는 공통주제로 기획된 음반이나, 특정인에 대한 헌정음반까지도 편집음반의 유형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보다는 안전한 전자쪽에 비중이 치우치는데다가 최근 물량/가격 공세 등을 통한 과도하고 왜곡된 편집음반 시장의 형세는 많은 이들의 우려를 낳았다. 때문에 알차고도 소박한 편집음반이 그리운 시점인 것은 확실하다.

최근 <Open the Door>라는 편집음반이 발매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재발매된 음반이다. 1999년 발매되었던 것이니 시간상으로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러 사정상 절판되었던 음반이다. 본래는 당시 인디 음악에 관심있는 이들은 한번 들어봤음직한, 1990년대 중후반 인디 록의 전파자 중 한 사람이었던 전 경기방송 조경서 PD가 기획한 음반이었다. 좀더 부연하자면 그는 자신이 진행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지상파 방송 매체에서는 듣기 힘들었던 한국 인디 음악을 소개하던 산파였으며, 인디 뮤지션들을 모아 새로 녹음한 이 음원들은 1990년대 후반 한국의 인디 신에 대한 기록물 중 ‘하나’로 노정된다.

그로부터 3년 뒤 당시와는 수록곡 순서를 달리하며 우리에게 다시 나타났다. 지금은 인디 신의 총아가 된 크라잉 너트의 패러디 접속곡 <블라디미르 광주로 간 사나이>를 필두로, 1위를 다툴 정도로 ‘뜰’ 것을 당시 혜안으로 점찍기라도 한 듯한 체리 필터 데뷔곡 <난 여자였어>, 그리고 한국 ‘모던 록’의 기린아로 자리를 잡은 미선이(현재는 <버스, 정류장> 영화음악으로도 알려진 루시드 폴만 활동)의 <파노라마>에 이어, 최근 세 번째 정규 앨범으로 작은 화제를 일으키며 복귀한 언니네 이발관의, 풋풋함이 묻어나는 초기 기타 팝 <보여줄 순 없겠지>의 순으로 초반부가 장식되고 있다. 현재 인디 뮤지션의 대중적 접근을 위한 재배치일 듯하다. 물론 아쉬운 부분이 있다. 더 나아가, 좀더 적극적인 제작과 마케팅 등에 대한 전략이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당시 한국 인디 신의 풍경에 대한 한 기록임에는 분명하지만 왜 지금 재발매되어야 하는지는 명확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음반사의 본 음반 소개에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그런 설명이 없을 뿐더러 심지어 음반 뒷면 정보에는 원본에 대한 기록도 없다).

그렇다고 여기 담긴 당시 인디 음악의 생생한 현장 기록물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성기완의 <라면을 끓이며>의 몽환성 및 남상아의 <창틀위로 정오같은>의 폭발성(이들은 현재 3호선 버터플라이 멤버다)을 비롯해, 전위()에서 잠시 떠나 특유의 서정성을 발산하는 어어부프로젝트의 <양떼구름>이나, 현재는 표표히 사라진 노이즈가든의 하드하고 노련한 연주가 돋보이는 <혹성탈출> 등. 게다가 인디 신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나아진 바는 없기 때문에 여전히 이 음반은 인디 음악이 낯선 이에게는 인디의 창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인디 신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다채로운 음악 풍경을 펼치는 여러 인디 뮤지션의 이본(異本) 혹은 당시의 신곡을 음미해보는 것도 한 즐거움일 것이다. 그때 그들을 회고하고, 지금 그들과 비교하며 경청해보는 것도 과거의 편집음반을 다시 듣는 한 가지 의미일 테니. 물론 아쉬움과 의아함은 그래도 남지만….최지선 / <weiv>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