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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진·변영주, “불륜은 없다, 편견은 있을뿐”

<밀애>는 개봉 이전부터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던 영화다. 전경린씨의 인기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이 원작인 것도 그랬지만, <낮은 목소리>1·2 등 군위안부 할머니들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던 변 감독의 극영화 데뷔작이라는 점은 궁금증을 낳을 만했다. 도대체 불륜이라는 통속적인 소재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28일 첫 시사회 뒤 만난 변 감독을 만났다.

“우스개 말 같지만 이 영화가 불륜을 조장하길 바란다. 다른 뜻이 아니다. 가정이나 가족이라는 제도로 재단당하고 제어당하는 열정을 폭발시키는 자유의지를 영화의 인물들이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팬터지와 만족감을 20~30대, 특히 여성에게 주고 싶다.” 석달동안 꼬박 남해의 섬에 갇혀 진행된 촬영으로 깊어진 정 때문인지, 자매 또는 동지같아 보이는 변 감독과 김윤진씨(영화속 미흔 역)가 미흔의 추억을 나눴다.

김윤진이 말하는 미흔

김씨는 ‘미흔’의 지독한 두통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했다. 그는 미흔이 아픈 장면을 촬영해야 하는 날은 장염에 걸리기도 하는 등 촬영내내 “마치 뭐가 씌운 듯한 느낌”이었다.

김씨는 2년 전 어느 날, 원작을 읽고 영화화를 결심한 변 감독의 눈에 띄었다. 변 감독은 배우를 물색했으나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던 중이었다. 첫 만남에서 김씨는 “전반부 미흔의 아픔을 끌어낼 자신이 없다”고 말했고, 변 감독은 이 말을 듣고는 “바로 저 배우다”라고 찍었다고 한다.

변 감독은 노출이 많다 등의 이유로 여배우들에게 작품에 관해서 제대로 말조차 꺼내보지 못했던 터였다. 김씨와 이종원씨의 노출연기는 개봉 이전부터 호들갑스런 입소문을 탔다. “작품 속에서 필요하다면 벗는 게 당연한 건데, 이게 화제가 되거나 심지어 ‘김윤진 대단하다’는 식의 평가를 받으니 씁쓸하다.”

김씨는 “여자가 삶의 의지를 찾는 계기는 일일 수도, 사랑일 수도, 아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흔에게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사건이 있기 전까지 남편이 전부였다. 그 상처의 치유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그걸 ‘불륜’이라 비난할 수 없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렇게 미흔을 이해한 김씨에게 이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드로 여겨진다. “홀로 살아가게 된 미흔은 어느날 밤 문득 미친듯 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불행한 걸까 미흔은 살아갈 자기의지를 찾은 건데….” 마지막 부분, 미흔은 영화가 시작한 이래 가장 젊어보인다. 영화에서 김씨의 연기가 가장 돋보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울고싶은 마음인데 ‘야 신난다’ 이런 마음도 함께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모호한’ 연기지시를 했다. 윤진씨에게 한번 더 확인해두자는 생각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의 시선을 아예 피했다. 그런데 윤진씨는 이 지시를 말끔하게 해냈다. 정말 대단한 배우라고 느꼈다.” 변 감독은 김씨와 이종원씨 등을 두고 “지금 개런티로 한 10년동안 함께 영화를 찍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변영주가 말하는 불륜

변 감독은 <밀애>의 선택에 대해 “다큐를 만들며 가장 짜증났던 건 너무나 정치적으로 뻔하다는 거였다. 옳은 일 하려 영화하는 건 아닌데 작품은 보지도 않고 ‘수고했다’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야 했다. 그래서 극영화를 한다면 정치적으로 쉽게 지지받기 어려운 걸 하자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집을 나온 미흔은 인규에게 딸의 사진을 하나도 갖고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며 운다. 하지만 이 장면은 흔한 모성애를 그리는 방식이 아니다. “딸과 나의 추억이 내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미흔은 괴로운 것이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 그런 게 아니다. 그랬다면 70년대 영화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변감독은 말했다. 그렇기에 그는 “이 세상에 법으로 재단되거나 금지되는 사랑은 없다”며 ‘불륜은 없다’고 잘라말한다.

여성과 남성도 흔히 생각하는 관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여자환자인 미흔이 인규의 병실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뻔하게 생각하는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미흔은 그 관계를 순식간에 전복시킨다.” 미흔의 남편 효경은 ‘악의 화신’이 아니다. 때로는 안쓰러울 정도로 착하고 삶의 의지를 잃은 아내를 보며 안타까워한다. “그런 남편 앞에서도 관객이 미흔의 감정을 이해하길 바랬다.” 감독은 “여성이 푹 젖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싸움을 거는 영화

그런 점에서 <밀애>는 ‘쉬운 길’을 두고, 사람들의 관습과 편견에 싸움을 거는 영화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오래 생각했다. 그건 파괴하는 것이다. 파괴한답시고 어설프게 덤비면서 오히려 보수적인 담론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관습을 넘나들며 제대로 파괴해보고 싶다.” 변 감독은 다음 작품은 남자들이 좀더 많이 나오면서 “보다 퇴폐적인 분위기가 될 것”이라 웃었다.

‘밀애’ 뭘 속삭이나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남편 효경(계성용)만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아온 미흔(김윤진)의 집에 젊은 여자가 나타난다. 그는 남편을 “오빠”라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오빠를 통째로 빨아당긴대.”

그때부터 미흔의 지독한 두통은 시작되었다. 한없이 잠에만 빠져들기도 했다. 효경은 그런 미흔과 딸을 데리고 바닷가가 멀지않은 산골 나비마을로 이사한다.

<밀애>의 전반부에서 미흔은 나약해 보인다. “삶이 참을 수 없이 허접해”라고 하면서도 남편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이런 미흔에게 윗집에 사는 보건소 의사 인규(이종원)가 게임을 제안한다. 넉달동안 연인처럼 즐기되, 어느 한쪽이 “사랑한다”라고 말하면 끝나는 그런 게임을 말이다.

카메라는 길고 정성스레 이들의 정사장면을 비춘다. 그것은 ‘죽었던’ 미흔의 몸이 다시 살아나는 과정이었다. 흔히 ‘불륜’이라 부르는 관계지만, 미흔에게 이것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서 거치는 한철의 지독한 사랑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 지독한 사랑은 좀더 내밀한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 느낌이다. 감독은 휴게소 여자와 미흔과의 관계나, 미흔의 방황을 좀더 자세히 표현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상투적이지 않은 미흔, 특히 인규의 캐릭터는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위해 결혼이라는 ‘보험’을 들면서, 사실은 억누르고 있을 지 모르는 ‘욕망’을 드러낸다. 여기다 김윤진·이종원 두 배우의 안정된 연기에 힘입어 <밀애>는 후반부로 갈수록 사람의 감정을 죄는 힘을 발휘한다. 큰 소리를 내진 않지만, 서서히 젖어드는 물기처럼 세상의 관습과 편견을 낮은 목소리로 자극한다. 사진관에 홀로 앉은 미흔은 그래서 아름답다. 11월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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