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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악인’ 렉터, 공포감 몰고 다시 왔다 <레드 드래곤>
2002-11-01

앤서니 홉킨스가 연기하는 한니발 렉터 박사는 90년대 이후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장 사랑받는 악인 가운데 하나다. 인육을 먹는 광기의 인물이지만, 교양있는 말투로 우아한 취향을 드러내며 인간의 본능적인 악마성을 건드리는 렉터 박사에게 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레드 드래곤>은 첫 부분부터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십분 이용한다. 영화는 감옥에 갇히기 전 렉터의 과거에서부터 시작한다. 한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장에서 플루트 연주자가 자꾸 틀린 음을 낸다. 카메라가 훑은 객석에 렉터가 앉아있다. 묘한 표정을 짓는 그가 다음날 식탁에 내놓은 게 무엇일지, 관객들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앤서니 홉킨스는 렉터의 현신처럼 보인다. 비록 연기는 정형화된 듯 하지만, 그것이 주는 공포감은 줄지 않았다. 감옥에 갇힌 렉터는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 만으로도 보는 이들을 오싹하게 한다. 토마스 해리스가 쓴 렉터관련 소설 세편이 모두 영화화(86년 <맨 헌터>, 91년 <양들의 침묵>, 2001년 <한니발>)됐음에도 사람들은 한니발 렉터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레드 드래곤>에는 유능한 FBI 전 수사관 윌 그래엄(에드워드 노튼)과 정신적 상처투성이의 연쇄살인범 프랜시스 돌하이드(랄프 파인스)가 등장한다. 7년전 ‘존경하던’ 렉터 박사가 인육을 먹는 살인범임을 알게 되고 격투 끝에 감옥에 보냈던 그래엄은 그 충격으로 은퇴했지만, 상사(하비 카이텔)의 부탁으로 또다른 연쇄살인사건의 조사에 참여하게 된다. 사건의 실마리를 얻기 위해 그래엄은 렉터 박사를 다시 만나러 가고, 돌하이드는 존경심을 담아 렉터에게 편지로 조언을 구한다.

렉터 시리즈는 범인을 숨기지 않는다. 범인이 누구인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거리낌없이 보여준다. 보는 이들은 깜짝 놀랄 반전이 아니라, 등장인물들 내면의 갈등과 인물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분명 <레드 드래곤>은 직접적인 잔혹성(물론 끔찍한 장면도 많다) 보다는, 슬금슬금 다가오는 공포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적어도 <한니발> 보다는 한 수 위다. 기대감을 충족시킬 만한 오락성 또한 갖췄다.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다 ‘온 몸에 본드를 붙이게 되는’ 기자 캐릭터도 재미있고 쟁쟁한 배우들이 뿜어내는 광기는 이를 잠재우고도 남는다. 하지만 비급영화의 정서를 간직했던 <맨 헌터>에 비한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쑤시는 맛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화려한 성찬 같은, ‘잘 만들어진’ 대작영화다. 6일 개봉.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