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다 보면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음악인도 예외는 아니다. ‘히트곡 모음집’ 형태의 음반이나 특정시대의 편집음반이 자주 나오는 것은 꼭 음반사의 이윤동기가 아니더라도 지난 음악을 정리하고픈 음악인의 의사와 무관하지 않다. <Body & Feel>은 어느덧 60대 중반에 접어든 노장 음악인 신중현의 음악인생을 결산하는 기념음반이다.
<Body & Feel>(2CD)에 담긴 18곡은 대체로 신중현이 1968년부터 1974년 사이에 만들어 발표(했거나 이때 히트)한 곡들이다. <님아> <커피 한잔> <봄비> <미인> 등은 이 시기 청년들의 ‘애창가요’였고, 신중현은 이른바 ‘솔·사이키 가요’ 열풍을 일으킨 인기 작곡가이자 가수 조련가로서 명성을 날렸다. 어느 정도였냐면, 작곡가와 가수 조련가로서 신중현은 요즘으로 치면 박진영, 서태지, 유영진과 비슷했고, 당시 인기면에서 그가 키운 펄시스터즈, 김추자, 김정미, 장현, 임성훈(!) 등은 요즘의 god, 보아, 이수영 등에 뒤지지 않았다.
이 음반이 다른 히트곡 모음집과 다른 점은 단순히 예전 레코딩을 재수록한 게 아니라 신중현 작곡의 ‘애창가요’릏 새로 녹음한 것이라는 데 있다. 그런데 수록곡들이 히트했던 시기(1968∼74)는, 지금은 잊혀졌지만, 한국 그룹 사운드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신중현 역시 팀과 멤버들을 바꿔가며 그룹 사운드를 이끌었는데, 이 밴드들은 상대적으로 그가 키운 가수들만큼의 대중적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신중현은 대부분 솔로 가수들을 통해 히트했던 곡들을 재녹음하면서 직접 노래도 했다.
표지에 적혀 있듯이 이 음반은 ‘스튜디오 라이브’ 형태로 녹음되었다. 신중현이 활동하던 초창기에 마이크 하나 놓고 빙 둘러서서 한번에 녹음하던 모노 레코딩과 유사하게, 여러 번의 합주 중 잘된 것을 원본으로 삼았다. ‘리얼 뮤직’이라든가 ‘멀티 사운드 녹음 방식’이란 홍보문구는 음악의 생생한 질감을 잘 살렸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실제로 음반의 볼륨을 높여 들어보면 녹음하고 있는 스튜디오 녹음현장에 있거나 공연 스테이지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음악이 살아서 파닥거리는 것처럼 들린다.
음반에 담긴 사운드는 (오케스트라를 세션으로 초대한) 록 밴드의 라이브, 혹은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예외로 한다면) 언플러그드 라이브를 연상시킨다. 모든 곡이 신중현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시작하고, 그가 리드하는 밴드 음악과 마에스트로 챔버 오케스트라의 현악 세션이 어우러진다. 밴드의 연주는 욕심내거나 과시하지 않고 무리없이 진행되며, 오케스트레이션은 이를 담백하게 수식한다. 음의 표면은 다듬어지지 않은 듯 까칠하며, 노이즈 같은 불순물도 거르지 않고 함유하고 있다. 노자 사상에 친화적인 ‘한국 록의 대부’답다.
다만, 고음은 힘에 부치고 음정은 종종 불안정한 신중현의 보컬은 귀에 거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노욕’(老慾)이었을까. 하지만 정감어리다는 느낌을 끝내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그의 보컬이 악곡과 썩 잘 어울린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며, 역설적으로 신중현의 곡들은 지금 들어도 훌륭한 ‘한국 대중음악의 클래식’이란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음반에 담긴 결과물을 중의적으로 ‘신중현 클래식’이라고 부른다면 그런 맥락에서다. 이 음반은 그럴 자격이 있다.이용우/ 대중음악평론가 garuda_in_thom@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