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아주 재밌는 곳을 하나 발견했다. 그곳은 광화문에 위치한 미대사관 내 미국 비자 발급처 또는 신청소다. 뉴욕의 링컨센터와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줄여서 MOMA라고 한다)에서 주최하는 뉴디렉터스/뉴필름스에 초청되었기 때문에 미국 비자를 신청하러 그곳에 간 적이 있다. 처음엔 미국에서, 그것도 권위있는 영화제라고 하니까, 그런 데서 초청한다고 하니까 비자가 그냥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인터뷰라는 걸 해야 된다고 하기에 내심, “음, 역시 중요한 영화제라고 해서 그런가?” 하면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의 첫 장면을 떠올렸다. 푸에르토리코 난민이었던가 이민자였던가… 하여튼 알 파치노가 의자에 앉아 미국의 어떤 행정관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떠올랐던 것이다.
적어도 난 이민자가 아니고 난민은 더더욱 아니니까 책상을 사이로 소파나 의자에 앉아 인터뷰라는 걸 하겠군. 무슨 차를 마시겠냐고 물으면 미국 커피는 화가 치밀 정도로 맛이 없으니까 정중히 사양해야지, 주스나 한잔 달라고 할까? 하고 들어갔다가 완전히 입구에서부터 손 번쩍 들고 검색대 통과하고 주머니에 있는 모든 물건 다 꺼내고 정복입은 여직원이 내 휴대폰을 뺏다시피 하고 난리가 아니었다. 적어도 광화문에서 손들고 내 주머니에 있는 거 다 꺼내놓기는 중학교 때 광화문 일리삼파 양아치 형님들과의 만남 이후 처음이었다.
조금이라도 행동이 굼뜨게 되면 그 여직원에게 호통을 들을까봐 빠릿빠릿한 행동을 취했다. 입구를 지키는 여직원이라 체격도 체형도 만만치가 않았기 때문에 미리미리 조심했던 것이다. 표시선을 따라가다보면 마치 미술관의 경비처럼 군데군데 앉아 있는 사람들이 흘낏, 말은커녕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손목의 스냅을 부드럽게 이용, 올라가라고 손짓한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리루 꺼져버려!라고 받아들여도 손색없는 손짓이었다. 그런 손짓이었냐구 물어볼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올라갔지만 입구서부터 애초에 내가 상상한 구도와 너무 달라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기엔 난 너무 여린 심성을 가졌기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인터뷰할 땐 안 그렇겠지 하면서 인터뷰장소에 도착했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서 수백명의 사람들이 복권 당첨 전광판을 쳐다보듯 거기에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스카페이스>의 푸에르토리코 난민 알 파치노보다 더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다. 그 웅장미에 압도되어 조금 전에 다부진 체형의 여직원도 부드러운 손목 스냅의 사나이도 다 잊어버렸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미국 비자를 신청하러 오는구나 하는것과 이렇게 신청인이 많은데 이렇게 협소한 곳에서 비자 신청을 받는구나였다. 그런데 비자를 못받고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랐다.
한번 쭈욱 훑어보니까 거기서 일하는 한국 사람들의 태도나 표정에 상당히 이해 못할 부분이 많았다. 좀더 좁혀서 애기하면 단순직보다는 행정 사무직 사람들이, 좀더 좁히면 통역관보다는 대기표 주는 사람들이, 좀더 좁혀서 얘기하면 왼쪽 창구의 조금 더 반반한 여자의 태도나 표정이 아주 적절하게 내 기분을 망쳐놓는다. 좀더 친절하게 하면 안 되나? 같은 동포끼리? 어려울 때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아군일지도 모른다.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당당하게(?) 인터뷰에 임했다. “무슨 일로 가시나요?” “당신 나라에서 나를 초청했다.”(바쁜 시간 쪼개서 간다.) “얼마나 있다 오시나요?” “일보면 바로 들어온다.”(걱정마라.) “합격.” “수고했다.”(땡큐.) 여기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미국 비자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을 나오면서, 이게 뭐야? 이게 나라야?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하여튼 재밌는 곳이니 안 가보신 분은 한번 시험삼아 가보시길….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