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1. 현장에 모니터가 귀하던 시절, 영화의 순서편집을 대행하듯 촬영 카메라의 앵글대로 컷을 연결해 현장 사진을 찍던 때가 있었다. ‘스틸’이라는 말조차 생경하던 현장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스틸 스탭의 위치는 어제와 사뭇 다르다. ‘정지해 있다’는 뜻의 ‘still’이 말해주듯, 움직이는 영화의 장면장면을 사각의 틀 안에 고정시키는 작업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으나, 기록과 보존의 역할이 강조되던 예전에 비해 예술적 측면이 많이 부각되었다. 홍보 때문이다. 홍보를 통한 사전 이미지 메이킹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지금, 각종 보도자료로 동원되는 사진이 바로 스틸사진이다. 하나 더, 영화보다 먼저 만나는 포스터 역시 잘 찍은 스틸사진을 이용해 만든다. 여기서 ‘잘 찍었다’의 의미는 마케팅 전략과 영화의 이미지, 그리고 찍는 사람의 정서와 감각이 한데 어우러진 사진을 의미한다. 그러한 한장의 사진은 두고두고 관객의 뇌리에 남아 영화를 추억하는 고리가 된다. <소름>의 홈페이지에서 만난 몇장의 스틸사진은 김지양(35)의 정서가 요즘 ‘따뜻함’과 맞닿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take2. 영화 속의 결정적인 모티브가 될 용현의 어린 시절 사진을 찍기 위해 촬영장 근처의 오래된 사진관을 일부러 찾았다. 조금 불안한 심정이 된 제작진. 컴퓨터로도 충분히 새 사진을 옛 사진으로 둔갑시킬 수 있건만 그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인공적인 연출이 뿜어내는 억지스러움에 질린 탓일까. 그녀는 ‘그럴듯함’보다는 ‘진짜 그런 것’을 원했고, 그런 그녀의 생각은 급기야 옛날 사진관에서 구식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에 미쳤다. 제작진들은 조근조근 이해를 시켰다. 제작진의 고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인은 척척 장비를 조율하기 시작했다. 초점을 맞추고 노출을 재고 이제 셔터만 누르면 되도록 맞춰놓더니 주인은 그녀를 카메라 앞에 세웠다. 믿는다는 의미일까. 순간 긴장한 김지양은 조심스레 카메라를 점검한 뒤 셔터를 눌렀다. 의외의 결과였다. 그녀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색감이 나온 것이다. 얻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배우들의 살아 있는 표정. 자동카메라 앞에 섰을 땐 결코 기대할 수 없던 자연스러운 자세가 구식 카메라 앞에서 나왔던 것이다.
take3. 현장에서 스틸사진을 찍는 작업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이미 꾸며진 세트 안에서 조명과 카메라의 위치가 정해져 있는 만큼 편할 듯도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그 속에서 매순간 디테일한 선택을 해야 하는 만큼 오히려 다른 작업보다도 ‘디렉터’로서의 자질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상황을 조율하고 적절한 순간에 사각틀을 지우는 것. 현장의 서로 다른 조명들이 뿜어내는 개성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순간을 잡는 바로 그때가 그녀의 손이 셔터 위에 머무는 순간이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10년 이상 다루면서 그녀가 가진 생각은 ‘솔직함’이다. 아니 더 나아가 ‘영상의 솔직함’을 배웠다. 웃는 얼굴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는, 카메라 앞의 모델뿐만 아니라 찍는 자신도 즐거워야 한다는 지론은 앞으로 오랫동안 그녀의 마음을 잡아끌 것 같다. 다음 작품은 미정. 사진집을 준비중이다.
글 심지현/ 객원기자 simssisi@dreamx.net· 사진 오계옥 기자 klara@hani.co.kr
프로필/
1967년생·서울예대 사진학과 93학번
97∼98년 <인서울매거진> 등 잡지사진 기고
99년 <미인> 스틸 및 포스터
2001년 <소름> 스틸 및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