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삐>의 제작사는 ‘엔젤 언더그라운드’라는 멋진 이름의 영화사지만, 사실은 이진숙 피디(33)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회사다. 영화진흥위원회에 제작지원금 신청 당시 법인등록이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었다. 홍보수단은 이씨의 개인 휴대전화 한대가 전부다. 사무실은 있을 리 없다.
지난해 여름 김지현 감독이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때 “내가 키우고 싶은 개들을 몽땅 출연시키고 싶은 욕심”에 덥석 시작한 영화라고 한다. 이씨는 “감독과 나의 무모함이 없었다면 결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긴 블록버스터도 ‘동물영화’는 힘들다는데, 감독의 카메라를 팔고 언제 갚을지 모르는 카드빚을 긁어가며 만든 <뽀삐>는 ‘연기하는 개’들이 10마리도 넘게 단체출연하는 독립영화다.
그는 “한때 독립영화라면 이념영화, 단편, 이런 인식이 있었지만 나는 주류영화사에서 만들어지는 것 이외는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고 본다”며 “감독들의 작업이 개인적인 것에 머무는 게 아니라 나름의 제작과 배급과정을 거쳐 가장 경제적인 비용으로, 상업적 진출을 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 말했다. 이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제작경험을 통해 그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는 그는 <뽀삐>가 끝나자마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만드는 ‘인권영화’의 제작을 맡아 다시 뛰고 있다. “음지에서 양지를 지양하는” 엔젤 언더그라운드가 미국 독립영화계의 상징인 킬러필름즈가 될 날을 기대해본다.
김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