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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성의 한계를 `개운한` 웃음으로 대신하다. <굳세어라 금순아>
2002-10-15

■ Story

전직 배구 선수이자 초보 주부인 금순(배두나)은 남편(김태우)의 첫 출근 준비를 제대로 해주지 못해 우울하기만 하다. 배구장을 찾아 지난날을 추억하고, 친정 엄마(고두심)를 찾아가기도 하지만, 별 위안을 얻지 못한다. 시부모의 급작스런 방문 소식을 접하고 동분서주하던 중에 날아든 청천벽력 같은 소식. 남편이 기백만원에 달하는 술값을 갚지 못해 술집에 잡혀 있다는 것이다.아이를 들쳐업고 밤거리를 헤매보지만, 문제의 그 술집을 찾는 일은 수월치 않다. 설상가상으로 우연히 조폭(주현)들의 세력 다툼에 연루된 금순은 영문도 모른 채 험악한 사내들의 추격을 당한다.

■ Review

원로 가수 현인의 목소리로 알려진 <굳세어라 금순아>는 실향민의 그리움, 북에 두고 온 누이를 걱정하는 노래였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그 금순이가 이 땅에 재림했다.그런데 좀 이상하다.무대도 역할도 바뀌었다.금순이가 헤매고 있는 길은 흥남 부두가 아니라, 서울 유흥가 어드메다. 오라비가 발견해 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오라비라 부르는 남편을 구출하겠다고 달리고 또 달린다.그 품새가 미덥지 않지만,그래서 더욱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우리의 주인공, 바로 ‘재림 금순’이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세상 물정 모르는 초보 주부 금순의 하룻밤 유흥가 유랑기를 그린 캐릭터코미디다. 금순이는 만화 <순악질 여사>나 코미디 <쓰리랑 부부>에서 만났던, 공포스러울 만큼 대찬 아줌마 캐릭터와는 딴판이다.왕년에 날리던 배구 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재기에 실패했고, 힘들 때 위로해준 ‘오빠’에게 빠져 덜컥 임신부터 하고 결혼해,아직은 ‘아줌마’의 정체성을 갖추지 못했다. 남편에겐 “까먹고 빼먹고 흘리고 태우기만 하는 여자”라고, 친정 엄마에겐 “애보다도 못하다”고 핀잔을 듣는다.그런 금순이가 그 못지않게 철없는 남편이 볼모로 잡혀 있는 악덕 유흥업소에 찾아간다. 대체 무슨 경쟁력으로, 전투력으로, 남편을 구해낼 것인가.

금순에게 준비된 속성 트레이닝 프로그램은 밤거리 마초들의 부정하고 부도덕한 공기를 호흡하는 것이다.마시지도 않은 술병으로 바가지 요금을 매긴 악덕 업주, 옌볜 출신 여종업원에게 협박을 일삼는 졸렬한 고용주, 딸 같은 소녀를 여관방으로 끌어들이는 추잡한 중년 남성 등이 초보 아줌마 금순의 가슴에 ‘불을 댕긴다’. 때론 알이 큰 과일로 서브를 넣고, 때론 공중으로 점프해 적의 얼굴에 강스파이크를 넣기도 하면서, 금순은 ‘여전사’의 면모를 갖춰 나간다. 그뿐 아니다. 조폭들에 쫓기는 급박한 순간에도 시어머니 대접할 “고등어 두 마리”를 챙기고, 옥상에서 떨어지다가 업힌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자세를 바꿀 정도로 기민함을 보이기도 한다.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금순이 부쩍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들이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금순이가 밤새 뛰어다녀야 하는 상황들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어리버리 순박한 처자가 밤거리 구석구석을 누비며 겪는 문화 충격이 주요 폭소탄. 그러나 ‘유흥가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그만큼 전형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포장마차 부부, 노점 아줌마, 노숙자 가족 등 유흥가 언저리의 인물들은 금순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줄 거라는 예상을 조금도 어기지 않는다. 엉뚱한 오해로 금순을 쫓기 시작하는 조폭들의 세력 다툼을 묘사하는데(이야기의 맥이 끊김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시간을 할애한 것도 조폭코미디에 대한 강박을 읽을 수 있는 부분. 그 많은 인물과 사건들을 ‘금순이’라는 하나의 연결 고리로 꿰려 하니, 더러 방만하고 억지스러워 보이는 대목들도 눈에 띈다.

그러나 <굳세어라 금순아>의 미덕은 분명하다. 웃기긴 하지만 유쾌하진 않은 코미디들의 홍수 속에서 이 영화는 비교적 ‘개운한’ 웃음을 선사하려 한다. 욕설이나 폭력이나 섹스 같은 ‘강수’를 거의 쓰지 않는 대신 이명세식 만화적 표현들을 아기자기하게 배치한 ‘귀염성’으로 승부하고 있다. 이는 배두나라는 배우의 캐릭터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면서, 묘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남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금순이의 모습에, 개도둑을 잡겠다며 온 아파트를 헤집고 다니던 <플란다스의 개>의 현남이 겹쳐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현남이가 결혼해서 아기를 낳았다면, 금순이 같은 아줌마로 살고 있지 않을까. 자신의 캐릭터를 살아 숨쉬고 자라나고 소통하게 만드는 힘. 그 배두나의 동선과 표정을 좇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영화다. 박은영 cine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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