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우림의 팬이다, 라고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다. 정규음반 4장에 리믹스 음반, 라이브 음반까지 모두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외에는 한 일이 없다. 공연에 가본 적도 없고, 팬사이트에서 뭔가를 해본 적도 없고, 팬으로서 해야 할 무엇인가를 한 게 없는 것 같다. 그러니 ‘팬’으로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자우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쓴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자우림의 노래를 좋아하고, 듣고, 음반을 산다. 그 탓에 글도 쓴다.
나는 자우림을 좋아하고, 김윤아의 보컬을 좋아한다. 그건 내 취향이다. 나는 여성 보컬에 혹하는 경향이 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전율을 느낀 것은 지금까지 짐 모리슨과 마이클 스타이프 정도밖에 없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늘 여성 보컬에 귀가 쏠린다. 전율까지는 아니어도 마음을 달래주거나, 짜릿함을 안겨주는 것은 단연 여성 보컬의 힘있고 블루지한 음색이다. 80년대 대학가요제에서 등장했던, 여성 보컬을 앞세운 수많은 밴드나 그룹에 혹한 것도 그런 이유인 듯하다. 로커스트, 어우러기, 바다새, 해오라기, 도시의 그림자, 샤프, 작품 하나, 마음과 마음 등등. 그들이 가요판으로 나왔다가 소리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안타까웠다. 왜 여성 보컬을 앞세운 밴드는 제대로 살아남지 못하는 것일까.
절대적으로 자우림을 옹호하는 이유 하나는 그것이다. 나는 자우림이라는 밴드가 오래도록 살아남기를 바란다. 김윤아가 솔로로 독립하지 말고, 밴드의 일원으로서 승승장구하기를 바란다. 자우림이라는 밴드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5년 동안 4장의 정규음반과 1장의 리믹스 음반 그리고 라이브 음반을 낸 이력만으로도 자우림은 훌륭하다. 3집의 <마왕>은, 개인적인 베스트 트랙이다. 그 노래 하나만으로도 나는 자우림의 영원을 바란다.
김윤아는 단지 밴드의 앞에만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자우림이라는 밴드가 김윤아의 카리스마에 상당부분 기대는 것은 확실하지만, 자우림은 김윤아의 1인밴드가 아니다. 1집에서 김윤아가 작곡에 참여한 것은 10곡, 그러나 3, 4집에서는 5곡이다. 자우림의 음악은 밴드의 결과물이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다. 4집이 이전과 조금 달라진 것은, 색깔이 조금 더 우울해지고 무거워졌다는 점 정도다. <팬이야>처럼, 과거의 자우림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하는 곡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퍼플(자줏빛)의 ‘아름다운 혼란’이 강해졌다. 야누스처럼 발랄함과 우울함을 동시에 발산하던 자우림이 4집에서는 무게 중심을 우울로 조정했다.
지난 음반들에서 김윤아가 작곡한 곡은 대체로 자유분방했다. 실험적이라기보다는 고정된 장르의 편향없이 활발하게 쏘다녔다. 4집에서는 <Hey Guyz>가 그렇다. 이선규를 비롯한 남자 멤버들이 작곡한 곡은 대체로 무겁다. 우울이나 슬픔이라는 단어와 썩 잘 어울린다. 이선규 작곡의 <Good Morning>과 <Only One>, 김진만 작곡의 <벨벳소로우>, 김윤아 작곡의 <#1>은 이번 음반에서 유난히 귀에 잘 들어오는 곡이다. 언제나 도발적이고, 촉촉하게 스며드는 가사는 여전하다. ‘내보일 것 하나 없는 나의 인생에도 용기는 필요해. 지지 않고 매일 살아남아 내일 다시 걷기 위해… I’m my fan, I’m mad about you’(<팬이야>) 같은 가사를 들으면, 자우림의 음악이 인기를 얻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자우림의 노래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거나 누군가의 정서를 자극해주는 힘이 있다. 그건 말의 힘이기도 하다. 자우림은 말과 음악 모두 뛰어난 감성을 지니고 있고, 또 노력한다. 누구는 ‘인디음악의 변질’이라고도 하지만, 별 관심없다. 노래가 좋으면 인디건 실험이건 그런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자우림은 그냥 자우림일 뿐이다.김봉석/ 문화평론가 lotusid@@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