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레이니 캐리건(안젤리나 졸리)은 시애틀 지역 방송사에서 잘 나가는 리포터. 화사한 금발에 늘씬한 몸매, 스타 야구선수를 약혼자로 둔데다 전국 방송에 진출할 기회까지 잡은 그녀의 앞날은 순탄대로인 듯 보인다. 하지만 예언이 잘 맞기로 소문난 괴짜 부랑자를 취재하러 간 날, 레이니에게 청천벽력이 떨어진다. 전국 방송 진출의 꿈을 이루기는커녕 다음주 목요일에 죽을 거라는 것이다. 레이니는 앙숙인 카메라맨 피트(에드워드 번즈)의 장난이라며 코웃음치지만, 풋볼시합 점수부터 날씨까지 부랑자의 예언이 하나둘 맞아떨어지자 불안에 휩싸인다.
■ Review
내가 며칠 뒤에 죽게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어느날 그녀에게 생긴 일>은 누구나 한두번쯤 상상해봤을 법한 ‘만약’의 가정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의 한 정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레이니. 운명의 강제로 생에 종지부를 찍게 된 상황에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의 의연함을 유지하는 게 쉬울 리 없다. 영화는 불치병 같은 이유도 없이 들이닥친 죽음의 예언 앞에 허둥대는 인물이 벌이는 해프닝과 함께, 눈앞의 성공에 연연해온 삶의 의미를 돌이켜보는 ‘인생 찾기’의 과정을 따라간다.
따라서 영화의 주축은, “완벽하다”고 자부했던 지금까지의 인생이 겉모습만 화려할 뿐 뭔가 소중한 것들을 간과한 결과라는 깨달음의 행로. 헬스클럽을 드나들며 외모를 가꾸고 표피적인 성공에 집착해온 삶에 회의를 품는 레이니의 동선은 예측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녀의 고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약혼자와의 사이에는 진정한 소통이 없고,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했던 가족과도 소원하기 짝이 없다. 혼란에 빠진 레이니가 차츰 무엇이 소중한가를 재발견한다는 이야기는, 그녀의 변화를 반기는 피트와의 연애담에 많은 비중을 두면서 로맨틱코미디의 틀을 따른다.
어떤 취재든 근사하게 보이는 데만 신경 쓰던 레이니가 술에 전 채 버스노조 파업 현장에서 롤링스톤즈의 <I Can’t Get No Satisfaction>을 부르는 장면처럼, 가식과 허영을 털어내는 일탈의 에피소드는 자잘한 웃음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레이니의 우상과 같은 스타 앵커우먼과의 인터뷰에서 “(결혼과 아이를 포기할 만큼) 가치 있는 성공이었나”를 회의적으로 묻는 설정에서 보듯, 영화가 무게를 두는 가치들은 꽤 고전적이다. 전작 <엑셀런트 어드벤처>의 발랄한 코미디 감각의 잔재와 <삼총사> <홀랜드 오퍼스> 등 근작들의 상투적인 전개가 뒤섞인, 스티븐 헤렉 감독의 범작. 황혜림 기자 blaue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