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
애초 장 감독은 이 영화에 하이퍼텍스트라는 개념을 도입해 기존의 텍스트를 많이 인용, 또는 패러디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영화를 만들기 전 그는 많은 영화의 액션장면을 참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억력이 나쁜 탓에 뭐가 좋은 장면인지 떠오르지 않아 모방도 안 되더라”는 장 감독의 말처럼 패러디는 많지 않았다. “한탕에 성공해서 잘사는 게 좋아보여” 엔딩장면에 패러디한 <트루 로맨스>의 라스트신이나, <매트릭스>와 연관성을 가진 시스템 안의 격투신 등은 애초 의도를 살린 장면들이다.
표현양식
<성소>는 매우 자유로운 문법의 영화다. 성소의 내러티브는 장난기 넘치고, 때때로 해체적이다. 성소가 위선적인 노인에게 끌려가는 순간, 라라가 등장하는 장면은 그중 하나다. 라라는 오토바이를 탄 채 총을 쏘며 다가온다. 그러다 공중으로 붕 떠서 몇 바퀴를 돈 뒤 다시 오토바이에 앉는다. 이렇게 멋진 장면이 보여진 뒤 ‘원래 의도는 이러한데…’라는 자막이 뜬다. 그리곤 장면은 리와인드되고 다시 라라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토바이의 안장이 아니라 땅바닥에 엉덩이를 우스꽝스럽게 찧는다. 세번의 엔딩이 나온다는 점이나, 말풍선을 이용해 대사를 처리한다거나 하는 장면도 재미있다. 특히 영화의 초입, 김정구의 시를 형상화한 고전영화 분위기의 시퀀스는 전체 내러티브와 결정적 관계가 없으면서도, 절묘하게 대구를 이룬다.
해피엔딩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장선우 감독으로선 다소 의외의 시도. <서울예수> 이외엔 명시적인 해피엔딩을 취한 적이 없던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서울예수>는 당시 검열 상황 때문에 굴절된 해피엔딩이다. 이것은 내 의도가 담긴 해피엔딩인데, 문제는 해피엔딩으로 안 보여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우울한 해피엔딩이 될지 모른다, 이거다. 행복함과 우울함을 섞어버리는 것, 해피엔딩인데 왜 이리 슬프지, 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 그렇게까지 될지 안 될지가 관건이긴 하지만.”
홍콩
홍콩 무술스탭의 공헌은 대단했다. 이 영화에 참여한 무술감독은 세명이었다. 이들은 비자문제나 다른 스케줄 때문에 바통터치하듯 영화에 참여했다. 장 감독은 이들 셋을 <삼국지>의 세 영웅에 비유한다. 초반부에 참여했던 리들리(서보화·徐寶華)는 장비 스타일이다. 화끈하게 일을 진행했다. 그는 롯데백화점 앞길장면, 오인조의 아지트 추격신을 연출했다. 두 번째 무술감독 원덕(元德)은 유비에 비견됐다. 조용하지만 지혜롭게 일을 꾸렸다. 그는 성소의 난사장면과 시스템 중앙통로 액션을 연출했다. 끝까지 남았던 ‘관우’ 유지호(劉志豪)는 <천녀유혼> 등에 참여한 경력 탓인지 무협 판타지의 감각을 갖고 있어 장 감독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무술감독. 나이트클럽 공중액션, 화력발전소 구출 신, 시스템 내부의 액션 등을 만들었다. 이들 무술감독 세명 외에도 액션연출 슈퍼바이저였던 레이먼드 펑은 영화제작 초반부터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액션의 컨셉을 흐트러지지 않게 유지시켰다. 게다가 상당한 내공의 소유자로 장 감독과 호흡이 잘 맞았다는 것
흥행
아무리 <성소>가 미스터리에 가득 찬 프로젝트라 해도, 가장 알쏭달쏭한 점은 바로 흥행이다. 이 영화의 순제작비는 92억원. 마케팅 비용을 20억원으로 잡는다면, 국내 흥행 성적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전국에서 370만명 이상이 들어야 한다. 마케팅 비용을 회수하는 데 66만명, 제작비용을 회수하는 데 300여만명이 입장해야 하는 탓. 때문에 투자사인 튜브엔터테인먼트 입장에서는 이익이 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대신 해외 시장에서의 좋은 반응을 기대하고 있다. 하긴, 어차피 흥행이라는 건 개봉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진 누구도 예측할 수 없으니 아직 속단은 이르다. 문석 ssoony@hani.co.kr / 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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