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전세계인에게 제공되는 어마어마한 액션 스펙터클은 전쟁에서의 전투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오우삼의 신작 <윈드토커>는 최소한, 매우 시의적절할 영화라고 하겠다. 원래 지난해 가을 개봉예정이었던 이 영화는 온통 경건한 나팔 팡파르를 터뜨리고 멈출 줄 모르고 깃발을 나부끼는 가운데, 작금의 패셔너블한 복고 리바이벌의 흐름을 선도하며 기획되었던 것이다.
줄거리는 그럴듯하다. 일본군과 대치 중인 서태평양 전선에 새로운 암호체계를 만들기 위해 수백명의 나바호 암호병들이 등장한다. 악명 높도록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 나바호말(물론 나바호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그렇단 말이다)로 절대 해독할 수 없는 특수암호체계를 만들어 교신하기 위해 나바호족 암호병과 특수부대원들이 전쟁에 투입되는 것이다.그러나 <윈드토커>는 해독하기 까다로운 영화가 아니다. 솔로몬 군도에서 벌어진 엄청난 살상의 아비규환에서 살아남은 강인한 해병 조 엔더스(니콜라스 케이지)는 명랑한 암호병 벤 야흐지(애덤 비치)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달리 말하자면, 엔더스의 임무는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암호체계를 일본군으로부터 사수해내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소모품이다. 안개 낀 모뉴먼트 밸리부터 사이판의 해변에 이르기까지 전장의 감상주의와 상투적 군대묘사로 넘치는 <윈드토커>에서 싸구려이면서도 장엄하다. 언어학자인 벤자민 워프는 나바호를 인간의 지각이 언어에 의해 구축됐다는 학설을 증명하는 데 사용한 바 있지만, <윈드토커>는 매우 인습적인 잡동사니이다. 다른 오우삼 프로젝트들이 그렇듯, 이것은 조건없는 끌림과 우정, 의리를 담은 버디 무비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쓰인 듯한 각본은, <브로큰 애로우>와 <페이스 오프> 등 그의 최고의 할리우드영화들에서 보여준 참신하고 충실한 맛이 거의 없다. 후방 하와이의 자그마한 간호사가 오매불망 보내오는 구슬픈 연서들을 완고하고 끈덕지게 무시하는 심술궂은 구두쇠 엔더스는 처음에는 귀찮을 정도로 믿고 따르는 충성스러운 피보호자를 멀리하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뒷날의 야흐지를 보라. 세상을 떠난 엔더스에 대한 의리와 사랑을 간직한 채,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딴 아들과 함께 망자를 위한 의식을 치뤄주지 않는가. 가장 암시적인 플롯 비틀기는, 오랫동안 파묻혀 있다가 설득력 있게 오우삼류 페이스 오프식으로 튀어나오는데, 이 백인과 인디언이 모두 (냉담한) 가톨릭 교도라는 것이다.
아마도 ‘보편교회’, 다시 말해 로마 가톨릭 교회는 할리우드에 대한 오우삼의 은유일 것이다. 전투 시퀀스로 보자면 <블랙 호크 다운>보다 덜 첨단적이고 극적인 깊이에 있어서는 <씬 레드 라인>보다 훨씬 진부한 <윈드토커>는, 주로 개인들간의 알레고리에 공을 들인다. 완고한 편견을 가진 동료들에게 일본인으로 자주 오인되는 나바호인들은 백인들의 전쟁에서, 언어적 기능과는 별도로, 거의 홍콩적인 의식(무술, 신비로운 칼 던지기, 명상, 그리고 신성한 피리 연주 등)을 수행하며 기능한다. “이거 원, 나바호 잡소리들이 어마어마하구먼!” 영화에서 엔더스가 외친다. 그리고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성공한 아시아 영화감독 오우삼은, 이곳에서 잡소리가 통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빌리지 보이스> 2002.06.18 짐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짐 호버먼/ 영화평론가·<빌리지 보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