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나쁜 영화> <거짓말> <해피엔드>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의 김우형
2002-08-16

나는 충무로의 택시운전사

나? 감독을 모시는 택시운전사

“예술은 기술적인 숙련에서 비롯된다.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대부> 1, 2편, <애니홀> 등을 촬영한 미국의 촬영감독 고든 윌리스의 잠언은 김우형(33) 촬영감독에게서 이렇게 해석된다. “촬영감독은 영화감독이라는 손님을 태우는 택시기사 같은 존재다. 택시기사의 임무는 손님을 최단시간 안에 원하는 곳까지 안전히 모시는 것 아닌가.”카메라라는 택시를 모는 김우형 감독이 5년 동안 4편의 장편영화와 2편의 단편영화를 통해 모신 ‘손님’은 모두 4명. 이상할 건 없다. 단골손님이 있었다는 얘기니까. 그는 바로 장선우 감독이다. 그와 장 감독과의 인연은 꽤 질긴 편이다. 런던에서 촬영 공부를 마친 뒤 1996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로자를 위하여>에서 함께 일했던 김봉훈 감독으로부터 <나쁜 영화>의 촬영부로 들어올 생각이 없냐는 연락을 받은 게 시작이었다. 35mm, 16mm, 6mm디지털 등 여러 종류의 카메라가 사용된 이 영화에서 김우형 감독은 6mm를 맡았고 일부 장면에선 16mm를 담당하기도 했다. 두편의 단편영화도 따지고보면 장선우 감독과 관계가 있다. ‘영화제작소 청년’이 제작한 박찬옥 감독의 <느린 여름>은 <나쁜 영화> 당시 제작부였던 청년 출신의 이선미 프로듀서 때문에 참여한 것이었고, <땅에서도 하늘에서처럼>의 염정석 감독과는 <나쁜 영화>에서 촬영부로 함께 일했던 사이다. 김우형 감독은 이어 <거짓말>을 제작하는 장선우 감독의 ‘콜’을 다시 접수하게 된다. 짧은 경력의 그에게 ‘장선우 영화의 촬영감독’은 부담스러운 자리였지만, “나를 지목한 것은 내 마음대로 찍어주길 바라는 장 감독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기꺼이 응했다. 이후 청년의 <해피엔드>에 참여하게 된 것은 시나리오도 좋았지만, 일종의 신뢰 때문이었다. “<느린 여름>을 찍을 때, 정지우 감독은 촬영장을 간간이 찾았다. 내가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아는 사람이 나를 선택했다는 게 좋았다.”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참여해 현재 후반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치르면서’ 김우형 감독은 장선우 감독과의 인연이 얼마나 징그러운지 실감하고 있다. 2년도 훨씬 넘는 악전고투 도중 장 감독과 미운 정 고운 정이 고루고루 잘 배어든 것. 그는 주변으로부터 장 감독의 ‘변덕’과 즉흥성에 균형을 맞춰주는 뚝심과 계획성의 소유자로 평가받고 있다. 장 감독도 “호흡이 잘 맞는 스탭이 계속 함께한다는 건 행운이다. 우형이는 내겐 복덩어리다”라고 얘기한다. 김우형 또한 장선우 감독을 자신이 모는 택시의 ‘평생 우대고객’ 정도로 생각하는 눈치다. “영화에 관한 모든 것, 그리고 그 이외의 것까지 가르쳐준 장 감독님은 내 진정한 스승이다.”입문? 운명 또는 오해김우형 감독에게 특이한 점이 있다면 영화에 앞서 카메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때 촬영장비를 개발하기도 했던 6년 터울 형 김준형씨가 8mm카메라나 비디오카메라 등에 푹 빠져 있는 마니아였던 덕분이다. 한데, 그는 어린 시절부터 형이 만드는 엉터리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이런 오해를 품게 됐다. ‘아하, 영화는 카메라를 든 사람이 만드는 거구나.’ 어찌됐거나, 중학교 때 그는 형의 소니 일체형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앞집 친구, 초등학교 동창 등을 모아 <현상수배>라는 ‘갱스터영화’를 만드는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쳤다. 그가 영화라는 일을 하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중학생 때 만난 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는 엄청 울었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영상들이 그의 머릿속에 맴도는 이미지들의 원형질이 됐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뿐 아니라 잘 만든 할리우드영화야말로 궁극적으로 내가 꿈꾸는 영화일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대학에 가면서 집안사정으로 영화와는 관계없는 전공을 택했지만, 김우형 감독은 입학 초 학생회관 부근에 붙은 전단 한장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 전단은 영화동아리인 ‘얄라셩 영화연구회’의 신입부원 모집 공고였다. “고향이 광주인지라 ‘현실’에는 일찍 눈을 떴지만, 당시 내가 꿈꾸던 영화는 같이 현실 밖에 있는 것이었다. 왠진 모르겠지만 그 전단을 보니 현실과 영화, 그 둘이 하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아리에 들어가자마자 마침 촬영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는 비디오카메라를 잡고 집회와 시위현장의 최루탄 연기 사이로 포커스를 맞추며 1년을 보냈고, 군대에 다녀와 복학한 뒤 이지상 감독의 단편영화 <로자를 위하여>에서 연출부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무렵, “갑자기 어딘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욕망에 사로잡힌 그는 일을 저질렀다. 학교를 때려치우고 무작정 영국을 향한 비행기 트랩에 오른 것. 그리고 몇 가지 우여곡절을 더 겪은 뒤에야 그는 런던국제영화학교에 촬영 전공으로 입학해 본격적인 촬영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1969년 광주 출생1989년 서울대 농생물학과 입학, 얄라셩 영화연구회 가입1993년 <로자를 위하여>(이지상 감독) 연출부1994년 런던국제영화학교 촬영 전공 입학1997년 <나쁜 영화>(장선우 감독) 6mm디지털, 16mm촬영1998년 <느린 여름>(박찬옥), <땅에서도 하늘에서처럼>(염정석) 촬영1999년 <거짓말>(장선우), <해피엔드>(정지우) 촬영2001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장선우) 촬영스타일? 배우의 눈 따라가기스스로를 택시운전기사에 비유하는 데서 짐작되듯,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좀처럼 앞세우지 않는 촬영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그에게 일관된 스타일이란 게 있다면 그건 감독의 애초 의도에 가깝게 시나리오를 영상으로 옮겨내려 노력한다는 점일 것. 정지우 감독은 “그에게는 시나리오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의 콘티는 무엇을 어떻게 찍겠다는 것이 매우 정확하고 분명했으며 내 생각과 거의 똑같았다”고 말한다. “설사 엉터리 시나리오일지라도 감독의 뜻에 가깝게 완성시키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는 김우형 감독은 이런 제한 속에 자신의 스타일을 위치지운다. <거짓말>을 촬영할 때는 모든 장면을 핸드헬드로 찍었는데, 이는 꽉 짜여지지 않은 구성과 생짜 신인인 연기자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핸드헬드는 배우를 카메라에 적응시키기보다는 카메라가 배우에 익숙해지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얘기다. 어쨌건 그는 핸드헬드를 잘 다룬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학 시절과 유학 때 다큐 작업을 많이 해서인지는 몰라도 들고 찍는 게 편하긴 하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촬영에 관한 가장 큰 가르침 또한 장선우 감독으로부터 얻었다. 그는 <거짓말> 촬영 초반 조명기 위치나 장면 구성 등에 신경을 쓰며, 자신의 뜻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장면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그의 고민에 대해 장 감독은 “아직도 아카데믹한 요소가 많은 것 같다. 맨눈으로 봐야 한다. 배우에게 애정을 느껴라. 그들의 눈을 봐라”는 충고를 했다. 촬영이 거듭되면서 구도나 앵글, 조명보다 자신의 카메라가 배우의 눈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충일한 감정이 담긴 영상이 뷰파인더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그가 감독이 시키는 대로만 영상을 만든다는 얘기는 아니다. <해피엔드>에서는 ‘액션은 들고 찍고, 드라마는 트라이포드 위에 놓고 찍는다’는 식의 기계적인 구분이 싫어, 둘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한 사람은 픽스 숏, 다른 사람은 핸드헬드 숏으로 찍는 장면을 테스트하기도 했다. 게임 속 공간이 주배경인 <성냥팔이…>를 위해서도 다양한 방법을 구상했다. 1인칭 슈팅액션게임 앵글을 위해 카메라를 배우의 등에 메는 장비도 개발했고, 게임 속 자유로운 시점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정교한 계산으로 크레인 숏을 찍기도 했다.충무로? 빛의 딜레마다른 유학파처럼 그 또한 촬영감독이 조명까지 통제할 수 있는 DP시스템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생각이 바뀌고 있다. “DP를 하려면 조명조수들의 실력이 좋아야 한다. 내가 아, 하면 어, 하고 알아들을 정도로. 하지만 내가 조명조수를 고용한다 해도 현재 조명기사들 아래 있는 조명조수의 실력에는 훨씬 미치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현재 충무로의 현실을 고려할 때, 뛰어난 대선배 조명감독과 콤비로 일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린 상태다. 목표? 유능한 손과 발그가 존경하는 촬영감독은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런던국제영화학교의 선배인 닥 후지모토의 작업에 경의를 표한다. 테렌스 맬릭의 <황무지> 이래 <필라델피아> <식스 센스> <싸인>에 이르기까지 그의 촬영은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캐릭터의 감정 흐름을 포착해낸다고 그는 평가한다. 특히 <양들의 침묵>의 마지막 부분에서 조디 포스터와 앤서니 홉킨스가 철창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장면은 그가 꼽는 절정의 촬영이다. 이 장면에서 포스터가 어디로 움직여도 홉킨스의 시선은 이미 그녀가 가고 있는 곳을 미리 점령하고 있다. 카메라는 미세하게 두 배우를 향해 다가간다. 결국 둘 사이에 철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앵글이 근접하면 오히려 불안해하는 쪽은 포스터쪽이다. 이 장면은 둘의 관계를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것. 물론 그는 아직 이런 정도의 미세하고 정교한 연출을 할 만큼 자신의 기량이 익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현장을 장악하는 능력 또한 상당히 부족하다고 느낀다. 때문에 그는 부담없이 자유로운 실험을 해볼 수 있으며 현장 경험도 축적할 수 있는 단편영화나 저예산 장편영화에서 일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 하지만 충무로의 손님들이 그의 택시를 그대로 놓아두지는 않을 터. 지금도 두편의 장편영화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그는 당분간 충무로에서 감독과 영화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옮겨주는 일을 계속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꿈꾸는 그의 미래는 뭘까. “감독 머릿속 아이디어를 필름에 새겨넣는 손과 발로서 최선을 다하겠죠. 연출은 아주 나중에나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만약 내가 영화를 만든다면 오랜 꿈인 잘 만든 할리우드영화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문석 ssoony@hani.co.kr<<< 이전 페이지기사처음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