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캐스팅, 잘못된 연출방향,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터리티 리포트>는 스필버그가 <쥬라기 공원> 이래 지난 10년간 만들어온 장르영화들 중 가장 재미있고 가장 덜 잘난 척하는 작품이다. 스필버그는 를 편집하는 중에 이 사이언스 픽션스릴러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촬영하였으며 그래선지 만듦새에 있어서 그 큐브릭 각색 작품보다 덜 들떠 있고 내용은 더 멜랑콜리하다. 사이언스 픽션의 대가인 필립 K. 딕의 56년작으로부터 예상 밖으로 화제가 되는 배경을 빌려온 이 작품은, 사건이 일어나기도 전에 살인사건 혐의를 잡아내 범죄가 일어나기도 전에 경찰이 범인을 체포하는 일이 가능한 미래사회를 그리고 있다. “법을 어겼기 때문에 피고인을 체포한다”가 이 영화의 흥행포인트다. 스필버그 자신도 부시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을 법적 타당성을 이유로 지지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러한 21세기 초기 감성에 덧붙여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데이비드 핀처의 생생하고 피로 얼룩진 예시들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수석 수사관인 존 앤더튼(톰 크루즈)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멋지게 깔린 가운데 마치 영화편집이라도 하듯이 되감아 돌려보기도 하고 증거를 이리저리 맞춰보기도 하며 이 이미지들의 흐름을 처리한다. 그는 6년 전 아들을 잃으며 얻은 상처 때문에 폐인이 되어 약물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범죄예측에 의한 처벌이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앤더튼은 예지자가 자신을 예비살인범으로 지목했음을 알게 된다. 아직 미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곧 죽이게 될 거라는 것이다. 이것은 음모인가? 그런들 아닌들 우리가 무슨 상관인가? 크루즈가 수사국에서 가장 신비로운 애거서(사만다 모튼, 눈썹 없음)와 탈출을 시작하면서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조차 그보단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긴 하지만, 스필버그식 편집능력의 정교한 리듬은 아직 녹슬지 않았다.
안개로 싸인 듯한 무정형의 2054년을 배경으로 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세계는 야누츠 카민스키가 촬영을 맡아, 범죄가능성과 함께 모든 색깔들이 다 피 빨리듯 빨려나간 모습이다. 조명은 창백하게 분사되고 공간은 놀랍도록 찐득찐득해진다. 워싱턴 D.C.의 잔해는 과거에 대한 안타까운 증인으로 남는다. 주마등같이 펼쳐지는 시각효과를 추구하는 스필버그는 카메라를 거의 계속적으로 움직이도록 해, 신마다 색깔이 바뀌게 하면서 유려하게 동작을 잡아나간다. 그러다가 친숙한 의미에서의 스필버그식 놀라움이 순간 린치식 위협으로 변하여 웰스식 바로크 느낌을 주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하수구를 향해 굴러 달아나는 눈알을 잡으려고 쫓아가는 앤더튼의 모습에서 잘 살아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편집증을 잠시 접어놓자면, 예지자의 존재를 상정함으로써 오웰의 경찰사회보다는 보르헤스의 수수께끼 풀이 같은 상상력에 더 가까워지긴 했지만, 딕의 원작소설은 그 두 갈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 주로 맞춰졌다. 그러나 스필버그 영화는 미래예언이라는 커다란 문제가 가져올 여러 가지 길의 가능성에는 관심이 덜하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시간의 흐름에 논리를 부여하는 데 실패한 각본에도 기인한다. 원작에서 딕에게 굴곡과 반전을 가져다준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컨셉이 여기서는 영리한 유전공학자의 멋진 설명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위치지워져 별다른 구실을 못하고 오히려 영화를 산만하게 만들 따름이다. 각본은 딕의 디스토피아에서 또 다른 주요 개념들인 ‘보정적 약물사용’이나 ‘광고의 홍수’ 등도 함께 소개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중 ‘광고의 홍수’는 특히나 스필버그의 구미를 당겼다. 마치 TV프로그램 순위라도 매기듯 ‘지나치게 신뢰성 있는’(all-too-credible) 사회, 그래서 소비자들이 그들이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갈리고 달라지는 그런 사회를 꿈꾸는 그의 구미를 말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눈이란, 말 그대로, 영혼의 창이다. 그리고 그것은 브랜드네임에 목말라하며 그득 충족되기 원하는 그런 영혼이다. 모든 전자 광고보드는 개개의 소비자들 중 잠재 소비자를 가려내고 그 사람에게 딱 맞는 소비제안을 하게끔 프로그램돼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혼을 빼갈 정도의 놀라운 이미지들과 생각없는 스릴로 가득하다. 의도가 뭐였든지 간에, 이 영화는 무의식이 완전히 정복된 미래사회를 생생히 보여준다. 어떠한 범죄적 상상도 국가의 처벌을 받는 단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욕망은 자본주의적 만족을 향해 제분된다. 스필버그 스스로는, 법적인 자유를 팔아 테러로부터의 안전을 사고 싶을지 모르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경찰이 개개인의 삶에 끼어드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반복적 이미지는 뒤죽박죽 괴롭게 뒤섞인 플롯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울림을 전해준다. 이와 비슷하게, 마치 경찰견처럼 경찰을 보좌하는 로봇거미들은 이 영화 주요 컨셉에 대한 공격적이리만치 스펙터클한 열쇠다.
잃어버린 아이와 파괴된 가정이라는 배경을 가진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스필버그식 진부한 설정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런 감성만이 이 영화를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앤더튼이 애거서의 비전을 다운받으려고 하는 대목 등을 보면서 우리는 연민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 미스터리에 대한 씁쓸한 자각이야말로 매력적이다: 만약 제대로 된 영화를 편집해낼 수만 있다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짐 호버먼/ 영화평론가·<빌리지 보이스>
(<빌리지 보이스> 2002.7.2.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