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Review] 안다고 말하지 마라
■ Story
추석연휴. 대학을 졸업한 뒤 남의 논문을 대신 써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주(김영선)는 임시 과외 선생이 된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안동에서 올라온 사촌동생 장철(김도형)에게 수학을 가르쳐야 하는 것. 수입은 없지만, 장주에겐 꽤나 유쾌한 일이다. 고지식하고 보수적이다 못해 엉뚱하기까지 한 장철에게 장주는 선배 노릇을 톡톡히 하고 싶어한다. 어떻게든 장철에게 정신적 영향을 끼치고 싶어하는 장주의 욕구는 채워질까.
■ Review
삶은 오진(誤診)투성이다. 손쉬운 처방 끝에 상처는 곪기 일쑤다. 미진함에 대한 자각은 언제나 한발 늦다. 그런 과정을 몇 차례 겪고 나면, 무슨 일이든 두려움이 앞선다. <안다고 말하지 마라>의 장주가 겪는 혼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는 장철에 대한 장주의 호기심 가득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댕기머리하고 한학을 배우진 않았어도, 장철은 영락없는 ‘구식’ 인간이다. 요즘 여자들을 어찌 믿느냐며 장철은 100년 전에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장주가 듣는 대중가요를 두고 머리 빈 양아치들의 읊조림이라고 개탄한다. 때론 이해하지 못할 언행도 일삼는다. 근육 좀 만들어 보겠다고 퉁퉁한 솔나무 대용으로 아파트 방 벽을 주먹으로 때리고, 자신이 만약 <유령>의 최민수라면 그냥 핵잠수함을 일본열도에 들이박고서 죽어버리겠다고 큰소리친다.
그런 장철에게 장주는 “갖고 있는 믿음을 의심해보라”고 충고한다. 허나, 쉬울 리 없다. ‘길들여진’ 장철과 ‘삐딱한’ 장주의 변증론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장철이 떠나고 나서야, 장주는 그가 세상과 절연한 이유를 뒤늦게 깨닫는다. 별난 사건없이, 장주와 장철의 문답으로만 이끌고 가지만, 느슨함과 지루함을 허락지 않을 만큼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 장철 역을 맡아 곰살스런 사투리를 아무렇지 않게 구사하는 배우의 자연스러움 또한 인상적이다.
[단편 Review] 선샤인
■ Story
어느 한적한 바닷가. 서른살의 영진은 백사장에서 깨어난다. 그와 동행했던 소연은 곁에 없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그녀가 쓰고 있던 모자만 밀물에 쓸려온다. 영진은 그녀를 찾기 위해 마을을 뒤진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 중 누구도 그녀를 알지 못한다. 툇마루에 앉아 있는 할미는 물어도 말이 없고, 신작로에서 만난 흉측한 외모의 사내는 그에게 위협을 가할 뿐이다. 끝내 경운기를 타고 가는 한 노인의 도움으로 공중전화를 찾게 되는 영진.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소연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 Review
삶과 죽음. 둘을 맞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구나 갖게 되는 이항(二項)이지만, 삶과 죽음의 이항(移項)을 선뜻 받아들이는 이는 없다. 헌데, <선샤인>은 그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선샤인>은 그걸 증명하기 위해 두 남녀를 등장시킨다. 30대의 영진과 20대의 소연. 둘은 여행중이다. 그런데 오프닝과 동시에 갑자기 소연이 사라진다. 백일몽이라도 꾸는 것일까. 영진은 소연을 애타게 찾지만, 그녀의 종적을 알 수 없다. 소연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아무도 그를 돕지 않는다.
죽음이 삶의 외투를 걸쳐 입고 카메라 앞에 나섰음이 밝혀지는 순간, 얼핏 <식스 센스>의 충격반전 요법이 연상된다. 은밀한 밀월여행 중에 영진이 죽음과 맞닥뜨렸음이 드러나는 것. 하지만, <선샤인>의 은유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마지막 장면. 소연에게 연락을 취하던 영진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삶으로의 회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서가 아니다. 통화를 시도하다 말고 영진은 시커먼 뻘밭에서 팔딱거리는 고기를 잡아올리는 이상한 노인에게 이끌린다. 삶과 죽음의 순환이 가능함을 직접 보고서야 발길을 떼는 것이다.
60컷 분량의 화면이 예사롭지 않음을 발견한다면, 연출을 맡은 이모개 감독의 이력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 김형구 촬영감독 아래서 수학한 이 감독은 현재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에서 촬영감독을 맡아 충무로 데뷔전을 치른다. 이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