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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3가지 빛깔 아시아적 나눔 떠보기
2002-08-09

한국·타이·홍콩의 흥행감독들이 뭉친 ‘아시아 최초의 3개국 합작영화’로 기획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던 <쓰리>가 지난 7일 언론시사회와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베일을 벗었다. <쓰리>는 이미 타이에서 지난달 개봉해 역대 타이영화 흥행 3위를 기록했으며 홍콩에서 15일, 한국에선 23일 차례로 개봉될 예정이다. ‘무섭고도 이상한 이야기’를 내걸었지만 <쓰리>는 제목만큼이나 다양한 공포의 색깔과 스타일을 지닌 작품이다. 관객으로선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아시아 영화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아시아 영화시장의 미래를 가늠해보는 시금석이기도 하다.

어느날 눈을 떠보니 낯선 골목길에 쓰러진 당신을 발견했다면 아무런 기억도 없다. 세탁전표에 적힌 전화번호는 통화도 되지 않는다.

한국 김지운 감독의 <메모리즈>에서 공포는 느리지만 스멀스멀 기어온다. 아내(김혜수)는 기억의 조각을 맞추며 신도시를 헤매고, 남편(정보석)은 악몽 같은 환상에 시달리며 아내를 기다린다. 마침내 아내가 자신의 기억을 찾았을 때는 더 무서운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중간중간의 충격효과나 후반부의 반전보다 <메모리즈>가 주는 공포는 신도시라는 ‘공간’ 자체에서 나온다. “꿈이 현실로, 뉴타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휘날리지만 흉하게 건축중인 고층아파트들이 들쭉날쭉 서 있는 그 곳은 건조하다 못해 삭막하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대조적으로 컴컴하고 축축한 아파트 주차장과 휑한 밤길의 도로에서 친근하게 느껴졌던 일상의 행복은 문득 낯설어진다. 마지막 부분의 설명이 지나치게 친절하다는 느낌을 줘 아쉽긴 하지만, 세 편 가운데 가장 실험적이면서도 ‘무서운’ 작품이다. 두 주연배우가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도 주목할 만하다.

<낭낙><잔다라>로 알려진 타이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의 <휠>은 인형극과 가면극을 대대로 하는 집안에 얽힌 저주에 관한 이야기. 타이의 이국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스타일리쉬한 화면이 돋보였지만 지나치게 권선징악적인 이야기는 단조롭게 느껴진다.

3개국 프로젝트의 첫 제안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홍콩 첸커신 감독은 <고잉 홈>을 통해 오랜만에 메가폰을 쥐었다. 공포영화라기 보다는,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야기다. 폐허 같은 아파트에 어린 아들과 경찰 아버지(증지위)가 이사온다. 건너편 동에는 반신불수인 아내와 사는 한의사(여명)가 있다. 어느날 사라진 아들을 찾아나선 아버지는, 3년 가까이 한약재로 죽은 아내의 사체가 부패하는 것을 막아가며 살아가는 한의사 집에 감금된다. <첨밀밀>의 감독답게 첸 감독은 자신의 장기가 멜로임을 잘 보여주면서, 세 편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특히 제한된 아파트 공간을 활용하는 연출솜씨나 크리스토퍼 도일이 촬영한 화면의 색감이나 앵글은 인상적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