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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여자도 아닌 1인치 살덩이 <헤드윅>

내 노래를 들어볼래요. 컴컴하고 허름한 레스토랑 한 구석에서 거대한 금발머리에 빨간 입술을 굵게 칠한 그가 말을 걸어왔다. 그의 이름은 헤드윅. 베를린 장벽의 동쪽에서 살던 어린 시절엔 한셀이라 불리던 “비쩍 마른 계집애 같은 소년”이었고 지금은 “국제적으로 무시당하는 가수”다. 트랜스젠더 로커의 삶을 담은 <헤드윅>(원제 Hedwig and the angry inch)은 시작부터 끝까지 도발적이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는 록 뮤지컬이다. 언뜻 드랙퀸(여장남자) 무비로도 보이지만 단순히 성적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뛰어넘는다. (한국에서도 15살 이상 관람가!를 받았다) 영화는 불완전한 자신을 완성해줄 반쪽을 찾아 끝없이 헤매는 인간의 보편적 갈망에 대한 이야기이자, 이 세상 소외받는 모든 이들에 바치는 헌가다.

70년대 라디오의 미군방송에서 나오는 팝 음악에 젖어있던 소년은 자신을 사랑하는 흑인 미군과 결혼하려고 어머니 헤드윅으로부터 건네받은 가짜신분증을 쥐고 성전환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실패한 수술은 그에게 여성의 몸 대신 두 다리 사이 ‘1인치의 살덩어리’만 남겼고, 미국으로 건너온 뒤 남편은 “작고 사악한 마을” 켄자스시티에 그를 남겨 두고 떠난다. <헤드윅>은 이 대부분의 이야기를 헤드윅(존 카메론 미첼)과 그의 밴드 ‘앵그리 인치’의 노래를 통해 들려준다. 그는 록계의 떠오르는 스타 토미 노시스(마이클 피트)의 전국 관광 공연장 바로 옆 해물 레스토랑 체인에서 ‘그림자 관광’를 벌이는 중이다. 16살 토미에게 음악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사랑했지만, 헤드윅의 성을 알게 된 토미는 그를 떠나버리고 헤드윅의 음악마저 ‘가로채’ 성공했다. 플라톤의 <향연>에는 원래 두 얼굴과 네 개의 팔·다리를 가졌던 인간의 교만함이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남녀로 나뉘어버린 이야기가 나온다. “그건 아주 옛날 어느 어두운 밤 일어난 슬픈 얘기지/ 우리가 어떻게 외로운 두발 동물이 되었는지/ 사랑의 시작에 관한 노래 그것은 바로 사랑의 시작…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노래 <오리진 오브 러브>) 헤드윅 또한 온전한 자신이 되려고 다른 반쪽으로부터의 사랑을 갈망한다. 헤드윅의 오만해보이는 태도도 외로움에 대한 절망을 감추려는 것일 뿐이다.

영화 <헤드윅>은 감독·각본·주연을 맡은 미첼과 음악을 맡은 스티븐 트래스크가 플라톤의 이야기를 모티브 삼아 지난 94년 미국 뉴욕의 작은 드랙퀸 바에서 벌였던 공연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점차 입 소문이 난 공연은 98년 오프 브로드웨이로 옮겨져 컬트가 되었고, ‘미국 독립영화의 대모’ 킬러 필름즈의 크리스틴 바숑이 제작을 맡아 지난해 영화로 만들어진 뒤에는 각종 영화제 상과 전 매체의 찬사를 받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하지만 수많은 상이나 호평과 관계없이 무엇보다 <헤드윅>은 ‘가슴으로’ 느껴지는 영화다. 때로는 강한 비트의 록에, 때로는 감성적인 발라드 멜로디에 실린 시적인 가사들의 음악은 귀에 휘감기며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주제를 드러내려고 아름다운 애니메이션과 회상장면은 매우 정교하게 편집되어 있고, 의상과 화려한 가발·세트들이 보여주는 비주얼 또한 인상적이다. 마침내 헤드윅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혼자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보는 이들의 가슴은 따뜻해지고 눈가는 촉촉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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