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저 에버트가 꼽은 별난 걸작 6
★ <구름 속의 산책>
감독 알폰소 아라우 1995년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의 알폰소 아라우 감독이 키아누 리브스를 기용해 만든 2차대전기 멜로드라마 <구름 속의 산책>을 로저 에버트는 “열정과 쓰디쓴 열망으로 불타는 장려한 로맨틱판타지”라고 불렀다. 그리고 “편견을 지닌 눈에는 오버한 멜로드라마로 보이겠지만 이 영화에 온전히 반응하기 위해서는 열정과 열망을 자기 영혼 속에 갖고 있어야 한다”고 반신반의할 독자들을 설득했다. 이즈음 에버트는 아마 순진한 감성과 고전적 형식의 영화에 대한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듯. 영화는 냉소가 기분이고 한숨보다는 비웃음이 쉽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에 구원 같은 영화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 <노틀담의 꼽추>
감독 개리 트루즈데일, 커크 와이즈 1996년
로저 에버트의 평론에 드러난 그의 취향 중 하나는 디즈니 만화영화에 호의적이라는 점이다. <노틀담의 꼽추> 외에도 <인어 공주> <미녀와 야수> <타잔>이 별 네개를 헌정받았다. 에버트는 빅토르 위고의 어둡고 복잡한 원작이 디즈니 만화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을까를 의심했지만, 이 영화가 주인공의 추한 외모에서 눈을 돌리지 않으면서도 두 주인공이 한 여자를 사랑하는, 불가피하게 비극적인 스토리를 잘 보존했다고 칭찬했다. 또 <인어공주> 이후 디즈니 장편애니메이션 르네상스의 정점이라고 평가하면서 <알라딘> <라이온 킹>보다 한수 위, <포카 혼타스>의 두수 위에 놓았다.
★ <남자가 사랑할
때> 감독 루이스 만도키 1994년
<남자가 사랑할 때>는 형식미보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성숙함에서 할리우드가 양산하는 알코올 중독에 관한 많은 드라마, 결혼에 관한 많은 영화와 차별되는 높은 평점을 얻었다. 에버트는 보통 알코올 중독을 그리는 영화가 중독의 악화 과정, 바닥을 치는 최악의 상황, 궁극적인 회복의 정해진 3단계를 가는 것과 달리 <남자가 사랑할 때>는 알코올 중독은 회복이 끝이 아니라 긴 여정의 시작이라는 점을 잘 표현했다고 지적했다. 또 아내의 회복으로 오히려 달라진 생활의 문제가 시작되는 남편의 ‘중독’까지 훌륭히 포착했다고 칭찬했다.
★ <프라이머리 컬러스>
감독 마이크 니콜스 1998년
<왝 더 독> <대통령의 연인> <JFK> <닉슨>의 공통점은? 백악관을 무대로 한 영화인 동시에 로저 에버트로부터 별 넷을 받은 영화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후보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도 해 대통령 집무실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던 에버트는 <프라이머리 컬러스>가 유머와 통찰력, 정치생활의 현실에 대해 현명한 시각을 가진 영화라고 호평했다. 그리고 클린턴 부부의 현실과 적절한 거리를 둔 연출 태도에 호감을 표했다. 에버트에 의하면 <프라이머리 컬러스>는 “전체적 조망을 검토하고 주변과 배경인물의 행동 패턴을 관찰하게 만드는 영화. 사람들이 왜 정치 캠페인에 휘말리는지 이해하게 만드는 영화”다.
★ <리쎌 웨폰> 감독
리처드 도너 1987년
“당신과 당신의 데이트 파트너가 4분마다 서로의 손을 꽉 쥘 것이며 영화가 끝나면 입이 귀까지 찢어지게 미소지으며 걸어나올, <레이더스>처럼 팔뚝에 멍이 들게 만드는 종류의 영화”라고 극찬했던 <리쎌 웨폰>의 영화평에서 에버트는 “영화의 주제는 영화의 스타일에 비해 덜 중요하다”는 것이 자신의 믿음이라고 썼다. 그리고 이 영화의 스타일에 관해 “폭력영화가 아니라 동작과 타이밍, 주어진 시공간에서 몸과 무기를 안무하는 영화”이며 “에너지가 넘쳐흘러 진짜 무제한적인 액션의 자유로움에 흥겨워진다”고 덧붙였다. 그는 <리쎌 웨폰>을 ‘리처드 도너의 최고작’이라고 단언했다.
★ <칼리포니아> 감독
도미니크 세나 1993년
도미니크 세나의 <칼리포니아>는 에버트로부터 “마틴 스코시즈의 <비열한 거리>, 테렌스 맬릭의 <황무지>, 존 맥노튼의 <헨리:연쇄살인자의 초상>, 칼 프랭클린의 <광란의 오후> 등에서 느꼈던 대가급 연출력을 보여준다”는 칭찬을 받았다. 에버트가 높이 평가한 것은 이 영화가 연쇄살인자와 희생자라는 뻔한 스릴러 구도에서 벗어난 지점. 연쇄살인자로부터 도망치는 남녀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 계급이 다른 두쌍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쫓고 있다는 것이다.
★ <더 쎌> 감독
타르심 2000년
에버트는 <더 쎌>이 세 가지 다른 층위의 이야기를 적절히 교차시키고 있다며 2000년 최고의 영화 중 한편으로 꼽았다. 가상현실에 관한 SF영화면서 가 사운드로 보여준 판타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며 <양들의 침묵>처럼 제한된 시간 안에 희생자를 구해내는 스릴러라는 것이다. 그는 70년대 폴린 카엘이 스코시즈, 알트먼, 코폴라를 옹호하면서 가톨릭이 촉발시킨 그들의 상상력에 대해 언급한 것을 상기하며, <더 쎌>의 타르심이 <식스 센스>의 M. 나이트 샤말란과 더불어 메마른 할리우드에 인도문화의 창조성을 더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
로저 에버트가 꼽은 별난 졸작 6
☆ <양철북> 감독
폴커 슐뢴도르프 197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공동수상하고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까지 차지한 <양철북>에 로저 에버트가 붙인 별은 단 두개. “알레고리란 그 자체가 너무 그럴듯하면 다른 존재를 상징하는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그것이 <양철북>의 문제다. 그렇다면 나는 반지성적 속물인가? <양철북>을 예찬하는 미디어의 소동에 말려드느니 그 편이 낫다”고 쓴 에버트는, 성장을 거부한 주인공 소년 오스카가 줄곧 비인간적 세계에 대항하는 용기의 알레고리가 아니라 그냥 이기적이고 고약한 아이 녀석으로 보였다고 썼다. 원작이나 해석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관객을 납득시키지 못하는 영화에 대해 에버트는 대개 적의를 표한다.
☆ <죽은 시인의 사회>
감독 피터 위어 1989년
<죽은 시인의 사회>는 청춘의 반항, 보헤미안적 삶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이 폼만 잡은 영화라는 뉘앙스의 평을 얻었다. 에버트는 ‘죽은 시인 모임’이 동굴에서 회합을 가질 때 닭살이 돋아 몸이 뒤틀렸고 키팅 선생의 해직에 항의해 책상에 올라서는 클라이맥스에서는 “너무 감동해 토할 뻔했다”고 비꼬았다. 시를 가르치는 좋은 수업은 학생으로 하여금 시를 사랑하게 해야 하는데 이 영화에서 학생들이 사랑하게 되는 대상은 교사라는 것도 에버트의 불평.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력은 에버트의 과녁이 되지 않았으나 영화의 스타일 탓인지 윌리엄스의 출연작은 <굿모닝 베트남>을 빼면 예외없이 에버트로부터 최악의 별점을 얻는다.
☆ <블루 벨벳> 감독
데이비드 린치 1986년
<블루 벨벳>에 대한 로저 에버트의 악평은 악담이라기보다 아쉬움의 토로에 가깝다. “이만큼의 고통과 상처를 지닌 영화는 특별한 고려를 받을 만하다고”고 일부 평론가가 <블루 벨벳>에 보낸 찬사를 수긍한 에버트는 그러나 그처럼 강렬한 장면들이 “마치 자기 영화의 힘을 부정하거나 농담인 척하려는 듯한” 미숙한 풍자와 싸구려 숏으로 둘러싸인 점을 문제삼았다. 특히 미국영화가 함부로 다루는 섹스와 폭력이 제대로 된 진지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믿은 에버트는 <블루 벨벳>이 마치 “끔찍한 뉴스를 전한 뒤 ‘신경쓰지 마!’라고 덧붙여 듣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인간 같다”고 비유했다.
☆ <데드 맨> 감독
짐 자무시 1996년
로저 에버트는 자신이 볼 때 스스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같은 영화에 대해 야박하다. 그는 <데드 맨>을 “의미보다 무슨 의미일까 생각할 시간을 더 많이 선사하는 기묘하고 느리고 보람없는 영화”라고 일축했다. 그리고 호평받았던 닐 영의 영화음악에 대해서도 “영화의 마지막 30분을 한 사람이 마냥 기타를 튕기고 있는 것처럼 들리게 만들었다”고 혹평했다. 참다 못한 에버트는 집에 돌아와 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집에서 이 영화를 설명하는 발견했다고. “넘치게 해보기까지는 충분한 것이 얼마만큼인지 결코 알 수 없다.”
☆ <맨 인 블랙2>
감독 배리 소넨필드 2002년
올 여름영화 <맨 인 블랙2>는 속편 오락영화라는 조건 안에서도 만족스러운 능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는 평을 얻었다. 어떤 속편은 앞선 스토리를 전개하고 어떤 속편은 반복하지만 <맨 인 블랙2>는 똑같은 전제를 되풀이한다고 쓴 에버트는 <맨 인 블랙2>를 박스오피스 수입 외에 절박한 존재이유가 없는 영화로 보았다. 기묘한 외계인도 생각보다 재미가 덜하고 특수효과도 종종 허무하다는 것이 영화의 오락성에 대한 그의 품평. 3편에서 에버트가 좀더 보고 싶어하는 것은 사물함 안 그들만의 세상에서 사는 외계인들의 다른 시점 등등의 내용이다.
☆ <천국의 문> 감독
마이클 치미노 1980년
<디어헌터>의 마이클 치미노는 이 영화 한편으로 회복할 수 없는 추락을 경험했다. 당시로선 유례없는 제작비인 3600만달러를 쏟아부은 <천국의 문>은 뉴욕의 첫 시사회에서 상영시간 4시간 버전을 틀어 혹평을 받은 뒤 2시간20분짜리 재편집본으로 개봉했지만 쏟아지는 비난을 수습할 길은 없었다. 에버트는 이 영화를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추악한 영화 중 하나”이며 “3600만달러를 날려버린, 영화사상 최악의 스캔들을 불러온 영화”라고 적었다. “안개와 먼지가 잔뜩 날리는 가운데 소프트 포커스로 찍어서 누가 누군지 식별할 수조차 없으며 내레이션이 모든 걸 설명하는 영화”라는 것이 비판의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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