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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영화주간 - 8월2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002-07-30

홍차보다 아늑한 영국영화의 향취“음, 해가 안 나온 지 3주일째야.” “음, 30분째 기다려도 기차가 안 오는군.” “음, 할리우드영화보다는 재미없고 프랑스영화보다는 얄팍한 것 같지 않냐?” 궂은 날씨, 버릇처럼 연착되는 철도와 함께 영국영화는 영국인들의 애교어린- 없으면 심심한- 불평거리다. 이와 같은 열등감에는 할리우드와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세계 시장에 나서면 약자라는 영국영화의 특수한 입지도 한몫 거든다. 하지만 국외자의 눈으로 볼 때 영국영화는 다양한 지역문화의 흔적, 절제와 야한 유머가 혼재하는 독특한 감수성, 문학과 연극의 탄탄한 전통이 제공하는 우수한 텍스트와 일급 연기의 향이 고루 담긴 한잔의 맛있는 홍차다. 주한영국문화원과 시네마테크 부산,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함께 주최하는 ‘영국영화주간’은 2000년과 2001년에 걸쳐 제작된 영국의 신작 대중영화들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자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8월2일부터 8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8월10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되는 ‘영국영화주간’에는 국내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했던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의 2000년작 <클레임> 등 여섯편의 장편영화와 SF판타지적 상상력을 다양한 양식에 담은 여섯편의 단편이 소개된다. 서울, 부산에서 공통으로 상영되는 장편 여섯편 외에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8월 말 극장 개봉을 앞둔 부천영화제 개막작 <슈팅 라이크 베컴>이 첫날 첫회를 장식한다. 관람료는 5천원이며 예매는 인터넷(www.maxmovie.com)과 현장에서 가능하다(문의: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02-720-9782, 시네마테크 부산 051-742-5377). <섹시 비스트>(Sexy Beast)감독 조너선 글레이저/ 출연 레이 윈스턴, 벤 킹슬리/ 88분/ 2000년

<섹시 비스트>는 이상한 갱스터다. 메인 이벤트인 범죄의 실행보다 범죄의 전주와 후주가 훨씬 길고 중요한. 고단한 암흑가 경력을 마감하고 스페인의 빌라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은퇴생활을 즐기는 개리 도브(레이 윈스턴)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찾아온다. 동업자들 사이에서 ‘사이코’로 통하는 위협적인 사나이 돈 로간(벤 킹슬리)이 보스가 계획중인 범죄에 그를 끌어들이려고 방문한다는 것. 영화는 개리의 은퇴생활, 돈의 위협, 런던의 범죄로 이뤄진 3막 구조를 취하지만, 불길한 안개처럼 영화 전체를 뒤덮고 지배하는 것은 맹목적 적개심과 파괴 본능으로 날뛰는 야수 같은 남자 돈이 주도하는 2막이다. “말해봐, 난 남의 얘기 잘 들어주는 인간이야… 닥쳐!”와 같은 대사를 표창처럼 내뱉는 벤 킹슬리의 연기는 우리가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얼마나 미미했는지 절감하게 한다. 데뷔 감독 조너선 글레이저는 심리적 긴장을 최고조로 이끄는 시각적 감수성으로 기네스맥주 광고 등 CF 명감독으로서 쌓은 공력을 증명한다. <도니 다코>에서 종말을 예언했던 괴물과 매우 닮은 토끼 사나이도 우정출연(?)한다.<한밤의 쇼핑>(Late Night Shopping)감독 솔 메츠슈타인/ 출연 루크 드 울프슨, 케이트 애시필드/ 90분/ 2000년

생전 해외여행이라곤 가지 않으면서도 늘 시차에 시달리는 청춘남녀가 있다. 전자제품 공장의 야간 작업조 조디, 문닫은 심야의 슈퍼마켓에서 상품을 진열하는 빈센트, 병원의 포터로 일하는 숀, 통신회사의 전화 교환원 레니는 남들이 퇴근할 때 출근해 새벽녘에 퇴근하는 올빼미 인생들. 빈센트는 동틀 무렵 자포자기한 여자들을 유혹하는 데에 선수고, 3주째 연인의 얼굴을 못 본 숀은 그녀가 아직 같은 집에 사는지 의심하고, 포르노 잡지에 기고하는 소심한 레니는 모든 여자가 에로영화 포즈로 보이는 환각에 시달리고, 냉소의 여왕 조디는 세 친구에게 칼같은 조언을 한다. 같이 일하는 교환원에게 교대 직전 들르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친구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한 관계를 맺은 네 젊은이는 약속도 없이 매일 어울려 수다를 떨고 더 나은 인생을 상상한다. 마주앉아 대화하고 싶은 캐릭터와 인물의 성격이 배어나는 유머가 <한밤의 쇼핑>을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힘. 에드워드 호퍼의 도시 풍속화처럼 세련되고 아늑한 촬영은 <쉘로우 그레이브>와 <빌리 엘리어트>를 찍은 브라이언 투파노의 작품이다. <청춘보고서>(The Low Down)감독 제이미 트레비스/ 출연 에이단 길렌, 케이트 애시필드/ 96분/ 2000년

언뜻 뒤늦게 도착한 영국판 ‘슬래커영화’처럼 보이는 <청춘보고서>는 지겹도록 눈에 익은 겉표지와 달리 대단히 독창적인 붓질로 그린 ‘젊은 날의 초상’이다. 한때 미술도였던 프랭크는 친구인 존, 마이크와 함께 TV쇼의 무대장치 소품을 만드는 일을 하며 생활하는 20대 후반의 남자. 룸메이트와의 생활을 매듭짓고 자기만의 첫 번째 아파트를 구하기로 결심한 프랭크는 부동산 소개소 직원 루비와 데이트를 시작한다. <청춘보고서>는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 일화들이 자아내는 무늬의 모음에 가깝다. 애써 털어놓는 고민은 친구의 기타 소리에 먹히고, 섹스는 어색하게 중단되며, 모르는 사람과의 마주침은 어처구니없는 대화로 빠진다. 영화는 숙취처럼 흐느적대고 카메라는 인물의 심장에 연결된 듯 느릿느릿 세상을 둘러보지만 치밀한 캐릭터 연구에 기반한 <청춘보고서>는 생동한다. ‘영국영화주간’의 또 다른 상영작 <청춘보고서>에도 출연한 케이트 애시필드의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매력도 주목할 만하다. <클레임>(The Claim)감독 마이클 윈터보텀/ 출연 피터 멀란, 밀라 요보비치/ 120분/ 2000년마이클 윈터보텀의 <버터플라이 키스> <쥬드> <광기>는, 영국영화가 자연주의자의 냉철한 눈으로 바로크적 로맨스를 그려내는 작가를 갖게 됐음을 알렸다. 윈터보텀 감독의 2000년 베를린영화제 공식 경쟁부문 출품작인 <클레임>에는 눈밭 위로 집채를 끌고 그 테라스에 서서 죽어가는 여인에게 청혼을 하러 가는 사나이가 나온다. 이쯤 되면 베르너 헤어초크가 눈썹을 꿈틀할 법하다. 1867년 캘리포니아 시에라. 황금으로 부자가 된 사내 딜런이 지배하는 마을 킹덤 컴에 한 병약한 여인과 그녀의 딸이 찾아온다. 두 모녀는 20년 전 골드러시 속에서 딜런이 광산의 소유권 대신 다른 사내에게 팔아 넘긴 아내 엘레나와 갓난아기다. 한편 대륙횡단철도가 마을을 비껴감에 따라 딜런의 왕국에는 몰락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토머스 하디의 작품처럼 들린다면 탁월한 직관. 하디의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에서 영감을 얻었다. <시나트라처럼>(Strictly Sinatra)감독 피터 캐펄디/ 출연 이안 하트, 켈리 맥도널드/ 97분/ 2001년

<오션스 일레븐> 이후 엘비스 프레슬리를 밀어내고 쿨한 과거를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듯한 프랭크 시나트라. <시나트라처럼>은 시나트라를 모창하며 아주 조금 남은 꿈의 불씨를 지키고 싶어하는 스물여덟살의 글래스고 청년 토니 코코자의 무용담이다. 공연이 범죄조직 보스의 아내 맘에 드는 바람에 조직이 운영하는 카지노를 초대받은 토니는 담배 파는 아가씨 아이린과 만나 사귀게 된다. “결코 그들에게 술을 사게 해선 안 된다”는 반주자와 아이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토니는 뜻하지 않게 갱들의 범죄에 말려든다. 갱들의 도움으로 전파를 탄 토니는 클럽의 가수로 채용되지만 갱들의 손에서 소년을 구한 토니는 청산을 결심하고 <마이 웨이>를 부르며 새로운 삶을 향해 탈출한다. <트레인스포팅> <고스포드 파크>의 켈리 맥도널드가 건강하고 순수한 처녀로 호연한다. <톰과 제시카>(My Brother Tom)감독 돔 로스로/ 출연 제나 해리슨, 벤 위쇼/ 110분/ 2001년

<톰과 제시카>는 성적으로 착취당한 기억을 공유하는 두 틴에이저의 일그러진 러브스토리이며 서로를 구원하는 것이 삶의 전부인 현대판 아담과 이브 이야기다. 약하고 다친 존재에 친밀감을 느끼는 소녀 제시카는 숲에 숨어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외톨이 소년 톰을 알게 된다. 이웃의 교사 잭에게 성폭행당하는 충격적 경험 이후 제시카는 톰의 연인이 되고 그가 아버지에게 추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시카의 발견 이후 한동안 사라졌던 톰은 제시카의 평범한 새 남자친구와 잭을 공격한다. <어둠 속의 댄서>의 로비 뮐러가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이 영화는 2001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슈팅 라이크 베컴>(Bend It Like Beckham)감독 거린다 차다/ 출연 파르민더 나그라, 케이라 나이틀리/ 2002년

<슈팅 라이크 베컴>은 <빌리 엘리어트>의 토슈즈를 신은 소년을 축구화 끈을 질끈 맨 소녀들로 선수 교체한 유쾌한 성장드라마다. 제스와 줄스는 축구를 “반벌거벗고 사내아이들과 뛰어다니는 짓”으로 여기는 부모님 몰래 잔디 위를 달리는 소녀들. 특히 보수적인 인도계 공동체 문화의 규율 속에서 나고 자란 제스에게 골문은 더욱 좁다. 줄스와의 만남으로 여자축구팀의 선수로 재능을 펼칠 그라운드를 얻은 제스에게 원하던 미래가 성큼 다가오지만, 가족의 요구와 매력적인 코치를 사이에 둔 단짝 줄스와의 다툼은 마지막 위기를 불러온다. 거린다 차다 감독은 왁자지껄한 인도식 결혼과 축구 결승전을 리드미컬한 교차편집으로 오가며 모든 갈등을 상쾌하게 해소한다. 그리하여 두 소녀는 마침내 유연한 곡선을 그리는 인생의 프리킥을 찬다. 그들이 동경하는 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그것처럼. 김혜리 vermeer@hani.co.kr▶ 영국영화주간 - 가상현실을 꿈꾸는 작은 SF천국

상영시간표

서울아트시네마

일시

8월2일(금)

8월3일(토)

8월4일(일)

8월5일(월)

8월6일(화)

8월7일(수)

1시

청춘보고서

시나트라처럼

톰과 제시카

한밤의 쇼핑

3시

섹시 비스트

단편

시나트라처럼

한밤의 쇼핑

클레임

5시20분

슈팅 라이크 베컴

클레임

톰과 제시카

섹시 비스트

단편

청춘보고서

7시40분

시나트라처럼

한밤의 쇼핑

청춘보고서

클레임

섹시 비스트

톰과 제시카

시네마테크 부산

일시

8월10일(토)

8월11일(일)

8월12일(월)

8월13일(화)

8월14일(수)

8월15일(목)

8월16일(금)

4시50분

톰과 제시카

클레임

단편

청춘보고서

클레임

한밤의 쇼핑

시나트라처럼

7시30분

섹시 비스트

청춘보고서

시나트라처럼

한밤의 쇼핑

섹시 비스트

톰과 제시카

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