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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잔인한 계절
2001-03-29

비디오카페

비디오대여점에게 ‘봄’은 잔인한 계절이다. 사업체마다 새로운 사업이 가시화될 시점인데다 학교마다 새학기가 시작되어 아무도 여가문화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할 일 없는 백수들도 봄이 되면 집안에 틀어박혀 있기보다는 따뜻한 봄기운을 받아 밖에서 노는 걸 즐긴다. 이러니, 봄날에는 비디오대여점에 파리조차 얼씬거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3, 4월의 출시작들 중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대박영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불후의 명작> <순애보> <하루>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등 지난 겨울을 휩쓸고 간 한국 멜로영화들이다. 극장에서 대박이 터지면, 비디오업계에도 연이어 대박을 터뜨리는 것이 공식이건만, 예외가 있다면 동양권 멜로영화들이다. 요즘 들어 이런 추세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지난해, 홍콩 멜로영화 <성원>은 극장 개봉에서 몇십만명을 기록했다지만, 비디오로는 중박급에도 못 미치는 성적을 낳았다. 물론 판매량도 저조했다고 한다. 최근 출시되어 있는 한국 멜로영화들 <불후의 명작> <순애보> <하루> 모두 비디오대여율은 낙제점수다. 극장에서 어느 정도의 흥행을 했으면, 비디오에서도 그 여파가 이어줘야 하는데, 동양권의 멜로영화들만은 여지없이 예외가 된다. 극장의 주요 관객은 20대 여성이고, 비디오대여점의 주고객층은 2, 30대 남성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예전엔 한국 멜로영화들 중 대박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미술관 옆 동물원> 등등….

멜로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사사로운 일상을 다루거나, 죽음으로 결말짓는 등 최근의 경향으로 대두되는 단순한 코드들을 고객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TV드라마에서 계속 보아오던 것 아닌가? 고객들은 단돈 천원을 내고 비디오를 보더라도 ‘완성도 높은 재미’를 우선한다. 자꾸만 눈이 높아지는 관객들…. 정말 난관이다.

이주현/ 영화마을 종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