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1일 목요일 밤스크린은 구경도 못하고…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상상과 판타지의 세계로 본격적으로 뛰어 들기 전에 나는 우선 몇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나의 경우 이번달 말로 예정된 러시아 여행을 위한 ‘간단한’ 여행 비자 발급 때문에 목요일 오후 전체를 진절머리나게 긴 대기열 속에서 기다려야 했다. 덕분에 나는 영화제 개막식과 개막작 <슈팅 라이크 베컴>의 상영을 모두 놓쳐버렸다(이 러시아의 현실은 나의 또 다른 영화 계획을 망쳐놓았는데, 나의 첫 한국영화 출연작이 될 예정이었던 <미소>에 출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생활의 발견>의 추상미가 출연하고 임순례 감독이 제작하는 이 영화의 촬영이 다소 지연되었는데, 때문에 러시아에서의 내 스케줄과 겹치게 되었지만 여행 일정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송내역 부근의 ‘째즈’라는 카페에서 있었던 개막 파티에도 불참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건 그다지 애석할 것이 없었다. 내가 그 파티에서 맛본 즐거움 따위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늘어놓는다면 독자 여러분들이 천만부당하게도 나를 여기저기 이름이나 팔고 다니는 거드름꾼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임순례 감독조차도 나를 겸손하고 소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분명히 말한 바 있다!). 한 가지 몹시 애석한 점은 내 친구 요하네스 쇤헤르가 전해준 바에 따르면 파티 중에 미이케 감독이 소파에 앉아 잠이 들어버렸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일년에 7∼8편의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생각하면 파티에서의 그 순간이 지난 십년간 그가 잠을 자기 위해서 진정으로 배려해둔 유일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목요일 밤을 집에서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미이케 감독 회고전에 초청된 작품 중 몇편을 골라보는 것으로 보내야 했다. <아지테이터>나 <블루스 하프> <이치, 더 킬러> <레이니 독> 같은 미이케 감독들의 영화들을 살펴보자면 불행한 유년기라든지 남성간의 우정이라든지 하는 명확한 반복적 주제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이케 감독에 대한 나의 지배적인 인상은 (매우 정교하며 일본적인 방법을 취하고는 있지만) 이 작자는 완전히 꼴통이라는 거다. [미이케 감독의 영화는 멀리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분방한 우키요에(에도 시대의 일상과 생활 속의 즐거움을 소재로 한 목판화물-역자) 미술품으로부터 시원해 다이쇼 시대의 “에로-그로-난센스”(에로티즘, 그로테스크, 난센스의 일본식 합성어-필자) 미학을 거쳐, 전후 시대의 뒤틀린 야쿠자영화 감독들인 스즈키 세이준이나 후카사쿠 긴지로 이어지는 “위반과 과도”의 미학적 전통의 한 부분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7월 12일 금요일 아침금요일 아침-미이케 감독은 ‘진짜’ 꼴통이었다!
아무튼 미이케 감독으로 인한 긴 악몽의 밤을 보낸 금요일 아침에 그를 만났을 때, 나는 너무 직접적으로 나가기는 싫어서 그가 약물을 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고 했다) 모터사이클 갱이었는가와 같은 어리석은 질문들만을 던졌다. 그와의 한심한 대화는 아래와 같다.나: 당신은 십대 시절 이른바 ‘번개족’이었나요?미이케: 모터사이클 타고 돌아다니길 좋아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든지 상관하지는 않았어요.나: 여러 명이서 무리지어 다니며 새벽 3시쯤에 크게 오토바이 엔진을 울려서 인근 주택가 사람들을 깨우거나 하지는 않았나요?미이케: 때로는요…. 나: 그렇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번개족’이었군요.미이케: 뭐 그렇다고도 할 수도 있겠지만….
올해 부천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갖는 다른 두 감독은 뉴질랜드 출신의 스플래터영화의 제왕 피터 잭슨과(<배드 테이스트> <브레인데드> <천상의 피조물> 등) 독일적 염세주의 사조의 대가 베르너 헤어초크(<파타모르가나> <노스페라투> <피츠카랄도> 등)이다. 피터 잭슨은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으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 제작으로 바쁜 나머지 불참했고 헤어초크 역시 바빠서 참석하지 못했다. 다만 헤어초크를 대신해 그에 대한 걸작 다큐멘터리 <버든 오브 드림즈>를 만든 버클리 지역의 영화감독 레스 블랭크가 참석했는데, 그의 작품은 아마존의 정글 속에서 4년간 치러낸 <피츠카날도>의 제작과정에 대한 시시포스적인 악몽을 보여준다. 이 영화 속에서 헤어초크는 조셉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장> 속의 주인공 커츠와 거의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는 1천여명의 인디언 원주민들을 동원해 300여t에 이르는 기관선을 끌고 산꼭대기로 올라간다. 점차 시적으로 변해가는 이 작품에서 블랭크는 마침네 “끔찍하도록 위험한 정글의 파괴력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버든 오브 드림즈>의 상영이 있은 뒤 나는 한 호주 출신의 평론가에게 비록 헤어초크가 실제로 미쳐버리지는 않았지만(헤어초크는 이 작품으로 1982년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헤어초크와 커츠라는 인물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는 점을 언급했는데, 그 평론가는 “예,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헤어초크가 그 영화를 찍기 이전부터 이미 미쳐 있었다고 말할 겁니다”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게스트 라운지에서의 점심 시간 중에 나는 레스 블랭크를 직접 만날 수 있었는데 그는 정말이지 점잖고 멋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버클리 지역의 유별난 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나는 그곳 출신인데 95년 이후로 가본 적이 없다) 그는 나에게 어디서 문신을 새겼냐고 물었다. 그것은 92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였는데 블랭크는 자신의 왼쪽 소매를 걷어 팔 위쪽에 있는 두개골 모양의 문신 두개를 보여주었다(그중 하나는 웃고 있고 하나는 찡그리고 있다). 그는 다시 오른쪽 어깨에 있는 어머니의 초상 문신을 보여주었는데, 어머니의 약혼사진 속에서 옮겨온 이 문신은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문신 미술가 에드 하디의 작품이라고 했다. 내가 <버든 오브 드림즈>에서 본 헤어초크도 어깨에 문신을 하고 있지 않았느냐고 언급하자 블랭크는 자기가 헤어초크를 70년대에 버클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자신의 문신을 부러워했고 자신이 에드 하디를 헤어초크에게 추천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가 어깨에 새긴 어머니의 초상문신을 사진으로 담아두었는데 아마도 한국인들이 문신한 ‘할아버지’를(블랭크는 1936년 플로리다 탬파에서 태어났다) 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블랭크는 자랑스럽게 다시 한번 그의 소매를 걷어올려 주었다.
▶ 굿바이 부천, 어게인 2002
▶ 메가토크 제 1장 : 미이케 다카시 vs 김지운
▶ 메가토크 제 2장 : 할리우드, 한국영화를 주목하다:한국영화의 리메이크
▶ 메가토크 제 3장 블루무비 특별상영 및 세미나: 검열과 극장
▶ ‘국제문화건달’ 스콧 버거슨의 9박10일 부천방랑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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