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남의 돈을 훔쳐내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토머스 테일러(크리스천 슬레이터)는 사랑하는 딸, 애인 페이지(사라 다우닝)와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한탕 벌이지만 체포된다. 1년의 형기를 마친 테일러는 다시 동료들을 모아 장외경마장을 털지만, 이들이 들고 간 돈자루는 불행히도 FBI의 작전용 화폐. 한데 이 돈은 부패한 FBI 요원 마크 코넬(발 킬머)이 돈세탁을 위해 맡겨놓은 돈이 아닌가. 테일러의 뛰어난 솜씨를 알아챈 코넬은 그의 딸을 납치해 카지노 수익금 600만달러를 털어주면 딸을 풀어주겠다고 협박한다.
■ Review
<하드캐쉬>도 가이 리치의 <록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의 성공에서 영감을 받은 듯하다. 엄청난 거액이 담긴 돈다발을 놓고 여러 세력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격투를 벌인다는 설정에서는 이 돈다발 소동극 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하드캐쉬>는 나름의 차별화 전략이 있다. 캐릭터 중 하나로 부패한 FBI 요원을 끼워넣은 것이나 부녀의 사랑이라는 요소를 주요한 축으로 삼았다는 점 등이 그렇다.
그리 많은 예산을 들이지 않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스타급 배우들이 여럿 등장한다는 사실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이제 다소 기력이 쇠하는 듯한 크리스천 슬레이터와 대릴 한나는 그저 그렇다 치더라도 발 킬머의 등장은 시선을 붙잡는 힘이 있다. 버네 트로이어(<오스틴 파워>의 ‘미니 미’)의 깜짝 출연도 잔재미를 주는 요소.
이런 강점에도 불구하고 <하드캐쉬>는 허점이 더 많이 보이는 영화다. 끝까지 결말을 알 수 없도록 미로처럼 얽어놓은 줄거리는 관객의 뒤통수를 때리기엔 역부족이다. 지뢰처럼 심어놓은 복선이 이야기 전개와 함께 펑펑 터지며 짜릿한 쾌감을 안겨준 <록스탁…>과 달리 이 영화의 줄거리는 쫓아가는 시선을 이리저리로 끌고 다니기만 할 뿐, 정작 결정타는 날리지 못한다. 모든 캐릭터가 뒤엉켜 한바탕 소란을 펼치는 결말부의 대격전도 진부한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다.
<하드캐쉬>는 훌륭한 B급영화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결국 그 스타일만을 모사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파격적이고 과감하며 기발한 시도 대신, 평이하고 상식적인 수준에 안주하려는 탓이다. 오페라를 좋아한다는 코넬의 캐릭터는 그의 내면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못하며, 한 여자를 사이에 둔 형제간의 갈등은 줄거리를 꿰어맞추기 위한 억지스런 설정에 그칠 뿐이다. 문석 ssoo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