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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르누아르 감독의 <야수인간>
2002-07-11

의도된 미완성

Bete Humaine 1938년, 감독 장 르누아르 출연 장 가뱅

EBS 7월13일(토) 밤 10시

장 르누아르 감독의 영화세계는 거대한 미스터리다. 르누아르는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한 적 있다. 무명배우였던 아내를 스타로 만들고 싶어 시작했노라고. 영화감독이 된 뒤 르누아르는 화가였던 아버지의 그림을 팔아 제작비를 마련한 적도 있다. 다행히도, 그가 1930년대에 만든 <거대한 환상> <게임의 규칙> 같은 작품은 영화사적 걸작이 되었다. 르누아르 감독의 개인적 철학은 남다른 구석이 있다. 영화는 예술인가, 라는 질문에 “무슨 상관이냐?”라고 되받을 수 있는 용기는 모든 감독이 갖출 수 있는 덕목은 아니다.

<야수인간>은 에밀 졸라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것. 역에서 일하는 자크는 부역장의 아내 세브린느를 사모한다. 남편인 루보가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하자 그의 아내 세브린느는 상사를 찾아가 밤을 보낸 뒤 남편을 위기에서 구한다. 루보는 뒤늦게 아내의 행동에 분노하는데 자크는 우연히 루보가 문제의 상사를 살해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자크와 몰래 만나던 세브린느는 그에게 남편을 살해할 것을 부탁한다. 자크는 오히려 세브린느를 죽일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야수인간>과 비슷한 시기에 장 르누아르 감독은 <게임의 규칙> 등을 만들었다. 그의 영화에서 시적 리얼리즘이 만개하던 시절이다. <야수인간>은 달리는 기차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기차는 역에 도착하고, 역에서 일하는 남자들은 한 아름다운 여인을 사이에 두고 갈등을 벌인다. 이 구조는 르누아르 감독 영화에서 흔한 것이다. 젊고 매혹적인 여인이 여러 남성을 뒤흔드는 것은 <암캐>(1931)에서도 등장했던 적이 있다. <야수인간>은 처연한 비극으로 향한다. 젊은 아내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여러 남성에게 몸을 허락하는 것으로 해결보려고 한다. 나이든 남편은 아내의 행동 때문에 숨이 끊길 지경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절대적인 선악구도를 강조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르누아르 감독의 넉넉한 인간관은 여기서도 변함이 없다.

<야수인간>은 의미심장한 치정극이다. 세브린느와 자크의 대사는 늘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세트와 자연의 풍경조차 의도적인 연출의 흔적이 배어난다. 불륜의 연인이 사랑할 때 자연은 그들에게 안식과 더불어 불행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후배감독 프랑수아 트뤼포는 르누아르 영화에 대해 “그는 절반 정도는 즉흥적이고 의도적으로 미완성된 상태의 영화를 만들었다. 따라서 각각의 관객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결말짓고 해석한다”라고 말했다. <야수인간>은 르누아르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빼어난 연출력과 디테일을 담은 영화 중 하나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