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아가씨 vs 건달
<아귀레, 신의 분노>본 아저씨, 금에 대한 광기를 생각하다
2002-07-04

나만의 엘도라도를 찾아

프리지아의 왕 미다스는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제안을 받고 제 손이 닿은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소원이 이뤄지자 미다스는 난처한 처지에 놓인다.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지만, 그는 음식을 먹을 수도, 사랑을 나눌 수도 없었다. 모두가 그를 피하게 되자 미다스는 제 소청을 없었던 것으로 해달라고 빈다. 그는 파크톨로스강에서 목욕을 하고서야 원래의 손을 되찾는다.

미다스를 기원전 700년 무렵의 사람으로 설정하고 있는 헤로도투스의 기록을 믿는다면, 황금을 향한 인간의 사랑은 2700년 전에도 지금 못지않게 격렬했던 듯하다. 그 격렬한 사랑은 이집트와 중국에서 연금술이라는 섹스 테크닉을 낳았다. 연금술은 별볼일 없는 금속을 황금으로 바꾸는 방중술이다. 중국의 연금술은 연단술(煉丹術)이기도 했다. 연금술사들이 금을 얻기 위해 쓴 선단(仙丹)은 불사의 약이 되었다. 선단이라는 이름의 이 성인 용품은 아랍 사람들의 중개를 거쳐 유럽으로 수출되며 현자의 돌이 되었고, 그 현자의 돌은 곧 생명의 영약이었다. 그러니, 황금에 대한 사랑은 장생불사에 대한 욕망이기도 했다. 황금애(黃金愛)와 장생욕(長生慾)의 이 겹침에는 다소 얄궂은 데가 있다. 미다스가 디오니소스의 호감을 사게 된 것은 길잃은 요정 실레노스를 후대했기 때문이다. 실레노스는 디오니소스를 길러낸 주정뱅이다. 이 실레노스가 미다스에게 설파한 진리는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은 애당초 태어나지 않는 것이고, 일단 태어났으면 빨리 죽는 게 제일이라는 것이었다.

유럽의 연금술은 온갖 사이비과학적 시도를 통해서 화학이라는 진정한 과학을 낳았지만, 애석하게도 유럽인들을 부자로 만들지는 못했다. 그러자 유럽인들은 연금술에 묶여 있던 두손 가운데 한손을 빼내 금으로 뒤덮인 미지의 나라를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뒤, 온통 황금으로 치장돼 있다는 엘도라도가 유럽인들의 꿈속에 자리잡았다. 유럽인들은 그 황금향이 동방 어딘가에 있다고 믿었다. 유럽의 서쪽은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였으므로 그 황금향이 동쪽에 있는 것은 당연했다. 13세기 후반에 중국을 다녀간 마르코 폴로의 상상 속에서 그 황금향은 중국 동쪽에 있다는 지팡구라는 섬나라였다. 어느 순간 유럽인들은 땅이 둥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자, 무시무시한 이교도들로 바글대는 육로를 통해 그 황금향에 가느니보다 서쪽의 해로를 택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가서 인도를 발견했다. 그 인도는 뒷날 서인도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자 멀쩡한 인도는 동인도라고 불리게 됐다.

아무튼 이 서인도가 발견된 이래 유럽인들은 황금향이 아마존강 어딘가에 있다고 믿었다. 16세기 이래 200, 300년 동안 유럽의 탐욕스러운 모험가들은 그 엘도라도를 찾아 아마존강을 헤집고 다녔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곳의 왕조를 무너뜨렸고,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거나 노예로 삼았고, 드넓은 땅을 제것으로 만들었다. 이들에게는 선교사들이 따라다녔는데, 이들 선교사는 군인들의 잔학 행위를 조금도 나무라지 않았다. <아귀레, 신의 분노>에 등장하는 한 선교사가 말했듯,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교회는 항상 강한 자의 편이었”기 때문이다.

베르너 헤르초크 감독의 <아귀레, 신의 분노>는 엘도라도의 환영을 좇아 자신과 동료들을 학대하며 미쳐가는 한 스페인 군인의 격정을 그렸다. 이 사나이의 이름은 돈 로페 데 아귀레다. 그는 프란시스코 피사로(잉카제국의 황제를 속임수로 꾀어 살해한 뒤 제국을 무너뜨린 그 피사로다)에게서 엘도라도 탐색의 임무를 받은 선발대의 부대장이다. 그러나 그는 스페인 국왕에 대해서도, 피사로에 대해서도 충성심이 없다. 그는 오직 자신을 위해서, 엘도라도를 향한 자신의 집념을 위해서 행동한다. 그는 강하다. 그는 자신이 위대한 반역자이며 신의 분노라고 으스댄다. 그래서 그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여정은 파멸로 끝난다. 자연의 험난함과 원주민들의 독화살에 대원들은 하나하나 스러진다. 스페인 사람들은 활을 든 이들 원주민이 신화 속의 여성 무사족 아마존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원주민들은 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였을 것이다. 아무튼 이들의 착각 덕분에 거의 내해에 가까운 남아메리카 최대의 강은 아마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긴, 미다스가 제 몸의 사금(砂金)을 뿌려놓은 파크톨로스강도 신화 속의 여전사(女戰士)들이 살았다는 소아시아에 있었다. 그러니 스페인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엘도라도와 아마존이 연결된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스 신화의 아마존족은 활의 달인들이었다. 그들은 활시위를 제대로 당기기 위해 사춘기에 이르면 젖을 잘라냈다고 전한다. 사실 이 전설은 결핍을 나타내는 그리스어 접두사 a-와 젖가슴을 뜻하는 mazos로 ‘아마존’이라는 말을 분석했던 민간어원설과 관련이 있다.

<아귀레, 신의 분노>는 독일 감독의 손에서 태어난 스페인 역사의 한 에피소드다. 스페인과 독일 사이의 시공간은 이번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한국인들에게 황금의 시공간, 엘도라도였다.고종석/ 소설가 aromach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