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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다큐멘터리가 죄가 되는 나라
이우빈 2026-01-02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 기록한 정윤석 감독의 2심 유죄 선고

2025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 서울고등법원은 한명의 다큐멘터리스트에게 ‘영화를 찍었다는 이유’로 벌금 200만원의 2심 유죄를 선고하며 1심 판결을 관철했다. 피고인은 <논픽션 다이어리>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다양한 사회적 의제를 다큐멘터리에 담아온 정윤석 감독이다. 그는 2024년 12·3 비상계엄의 여파로 일어난 2025년 1월19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이하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기록하던 중 경찰에 현장 체포됐다. 검찰은 그를 서부지법에 침입하여 난동 부리던 극우 세력들과 공동정범으로 간주해 정식 조사 절차도 없이 기소했고, 법원은 2025년 8월 1일 1심 유죄를 판결했다. 2심 판결은 더 악화했다. 같은 사건으로 기소된 실제 법원 침입자 20명은 감형되거나 집행유예도 받았지만, 정윤석 감독에겐 감형도 선처도 없었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정윤석 감독이 “집회 참가자들과 합류하거나 합세하지 않고 동떨어져서 촬영만 했기에 특수건조물침입죄가 성립될 수 없고, 역사적 현장을 촬영하겠다는 소명의식 때문에 진입했다는 점을 고려”한다고 인정하면서도, 그의 청사 진입이 다른 폭도들과 겉으로 구분하기 힘들었으며 이에 “서부지법 직원들이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므로 건조물침입 유죄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폭도들과 한패였다며 진행된 경찰의 체포와 검찰의 기소가 애초부터 잘못되었다는 입증과도 같다. 다만 스마트폰을 든 극우 유튜버들, 실제로 법원에 물리적 가해를 입혔던 이들과 ENG카메라(방송용 전문가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간 다큐멘터리스트가 ‘겉보기론’ 같았기에 처벌한다는 뜻이다. 정윤석 감독이 공공기관에서 발급한 예술인활동증명 확인서를 비롯해 수많은 증거 자료를 제출해도 법원은 예술가의 권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으로 영화인과 예술인들은 국가에 공인받은 코스튬이라도 입고 현장에 나서야 하는 것일까?

지금껏 우리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현장을 기록한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뉴스들을 당연하다는 듯, 숱하게 봐왔다. 그런데 왜 그것을 찍은 정윤석 감독이 지금 국가권력에 의해 범죄자로 판결받아야 했을까. 더군다나 같은 날, 같은 곳에서 폭동 사태를 기록한 방송사 JTBC의 취재진은 ‘이달의 기자상’과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받은 건 물론 당연히 기소되지 않았고, 정윤석 감독은 JTBC의 <특집 다큐-내 란, 12일간의 기록>에 촬영 영상을 제공하며 저널리즘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인은 상을 받고, 예술가는 벌을 받았다. JTBC 보도국 기자 역시 재판부에 정윤석 감독의 현장 촬영이 지닌 공익성을 증언하며 그의 무죄선고를 요청했고, 2025년 4월엔 박찬욱, 김성수 감독 등 2781명의 영화인과 1만1831명의 시민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으며, 이후 재판 과정에서도 수천, 수만명의 탄원 연명이 이어졌다. 국회의장실에서도 정윤석 감독이 그간 공익적인 목적의 취재를 해왔음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2심에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대체 왜일까. 정윤석 감독의 말처럼 “종군기자가 전쟁 현장에 있었다고 전범으로 취급받은 꼴”에 다름없는 촌극은 왜 벌어지고 있나. 핵심은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예술인권리보장법)을 둘러싼 사법부의 권력 저울질이 아닐까.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2022년부터 시행된 법안으로, 제6조 1항은 “이 법은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하여 다른 법률보다 우선하여 적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아직 관련 판례가 없어 명확한 법리 적용이 어려운 단계다. 만약 정윤석 감독의 무죄가 선고된다면 예술인권리보장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인권리침해 신고 절차 등이 진행되고, “무리한 기소와 재판을 이어온 검찰과 재판부가 자신들의 권한이 축소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정윤석)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둘씩 재판부의 편의적 법리 해석에 따라 예술가와 저널리즘의 권리가 훼손된다면, 이제 우리는 카메라는 물론이거니와 스마트폰으로 사회·정치 권력의 일면을 기록하는 일조차 두려워하게 될지 모른다.

<씨네21>은 2025년 기소 단계에서 정윤석 감독을 만나 인터뷰하여 그간의 경과를 취재했고, 정윤석 감독이 직접 쓴 포토 에세이 ‘정윤석의 R.E.C’를 5회에 걸쳐 연재하며 그가 12·3 비상계엄에 대해 예술·공익적 목적의 기록을 수행해왔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검찰이 그에게 특수건조물침입 혐의(이후 재판에선 무산된)로 징역 1년을 구형한 이후에도 관련 보도를 이어왔다. 이외 다수 언론과 시민의 선처 촉구가 있음에도, 정윤석 감독은 3심 결과를 회의적으로 예측했다. “3심은 기본적으로 법률심이기에 무죄를 내려면 예술인권리보장법을 판결문에 적용해야 하는데, 지금 재판부의 태도로는 그런 결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라는 것이다. 대신 그는 헌법소원 등 헌법에 따른 구제 절차를 고려하고 있다. 예술가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가 통하지 않는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면 무력감부터 앞선다. 그럼에도 기록매체로서의 영화와 저널이 해야 하는 일이라면, 정윤석 감독이 2025년 1월19일 서부지법에서 했던 대로, 지금의 사건을 기록하는 움직임일 것이다.

정윤석 감독의 ‘서부지법 폭동 사태’ 관련 타임라인

2024년 12월~2025년 1월. 12·3 비상계엄 관련 다큐멘터리 촬영. 정윤석 감독이 직접 촬영한 계엄 이후 국회 현장.

2025년 1월19일. 서부지법 폭동 사태 기록. 정윤석 감독이 촬영한 현장 사진.

2025년 7월7일 검찰의 특수건조물침입 혐의 징역 1년 구형. 7월21일 국회에서 ‘서부지법 폭동을 기록한 정윤석 감독 무죄 촉구 기자회견’ 개최. 2025년 8월1일 1심, 일반 건조물침입에 대해 벌금 200만원 유죄 선고.

2025년 12월24일 2심, 벌금 200만원 유죄 선고. 1심 판결 유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저널리즘에 대한 폭력”이라는 논평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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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정윤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