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영화의 위기 속에서도 중견감독들의 활약은 빛났다. 박찬욱, 홍상수 감독의 신작이 예상대로 높은 순위에 오른 한편 1, 2, 5위 모두 차세대 감독들의 신작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난관에 부딪힌 한국영화계를 논할 때 세대교체의 부재가 반드시 거론되지만 천착하는 주제와 스타일이 명확한 윤가은, 이란희, 변성현 감독이 보여준 올해의 도약은 더없이 반갑고 앞으로 이들이 한국 독립·상업영화계의 새 축을 단단히 지탱할 것이란 기대를 품게 된다.
1위는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에 돌아갔다. 세 번째 장편에 이르러 윤가은 감독은 성폭력 피해자를 중심으로 청소년 드라마를 정교히 빚어냈다. 그 세심함에 여러 필자가 찬사를 아끼지 않은 동시에 더 많은 논쟁이 요구되는 영화라는 점에 공감을 표했다. 2위 <3학년 2학기>는 이란희 감독이 <휴가>이후 4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장편이다. 공장의 현장실습생들을 다루되 사건, 사고 대신 사회초년생으로서 발을 내딛는 이들의 여정에 초점을 맞춰 호평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미감과 주제의식을 재확인할 수 있다는 평과 함께 <어쩔수가없다>가 3위에 호명됐고, 4위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역시 홍상수 감독의 독창적인 세계가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하는 기회였다. 5위 <굿뉴스>는 근래 가장 빠르게 차기작을 내놓는 감독 중 하나인 변성현의 영화로 <킹메이커>, <길복순>, <사마귀>(각본)에 이은 그의 작품 세계가 더욱 공고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6위는 조희영 감독의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가 선정됐다. 수진(공민정)과 정호(감동환)를 비롯한 다섯 캐릭터의 복잡한 인연을 기반으로 “인간은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는 감각을 실감”(이유채)케 한다. 사건과 관계가 “어긋나며 맞붙는 상태를 이미지로 실험”(정지혜)하는 영화적 시도가 인상적으로 각인됐다. 7위는 박준호 감독의 <3670>이 이름을 올렸다. “퀴어와 탈북이라는 두 소수자성을 이토록 자연스럽게”(황진미), 전형성에 갇히지 않은 채로 풀어낸 <3670>은 “올해 가장 인력(引力)이 강력한 신인감독의 영화”(이유채)이자 “한국 퀴어영화의 희귀한 성취”(홍은미)다. 올해의 신인 남자배우로도 호명된 배우 조유현, 그리고 김현목 배우의 연기 에너지는 이들의 다음 행보를 궁금하게 만든다. 8위는 이종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 <부모 바보>다. 실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했던 이종수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반영되었으며 특유의 “비상한 유머 감각과 첨예한 현실 감각으로 기워낸 이상하고도 평범한 이야기”(홍은미)이다. “무료해진 한국영화계의 틈에서 자생한 기이한 원근법”(문주화)이 요철처럼 튀어나와 시선을 사로잡는다. 9위는 강미자 감독의 <봄밤>이다. <푸른 강은 흘러라>이후 16년 만에 카메라를 든 강미자 감독은 “차 떼고, 포 떼고, 혹독한 현실에 놓인 두 사람의 관계에만 집중”(허남웅)하며 “숏의 매서운 떨림, 그 압력을 온전히 감당하는 몸들”(정지혜)을 적나라하게 기록한다. “정교한 편집과 겸허한 몸짓들의 몽타주”(문주화)에서 느껴지는 처연함과 쓸쓸함이 오래도록 감돈다. 마지막으로 “저자성의 신화를 부수는 쾌감”(김예솔비)을 안긴 정재훈 감독의 <에스퍼의 빛>이 10위에 안착했다. 한국영화 베스트10에 오른 유일한 다큐멘터리로 테이블톱 롤플레잉게임(TRPG)을 즐기는 10대 청소년들의 서사를 담았다. 대본 없이 가상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들에 관한 “스토리텔링은 불친절하고, 관객은 끊임없이 맥락과 캐릭터를 기억하고 이해하려 애쓰며 관람”(김연우)해야 한다. 하지만 “전자기기를 들여다보며 타이핑하는 10대들은 스스로 만든 허구의 캐릭터들과 동일시되지 않”(김연우)으며, “그 간극의 인식까지가 ‘다큐멘터리’ <에스퍼의 빛>이 시도하는 작업”(김연우)이다. 관객의 노력을 요구하는 <에스퍼의 빛>의 실험에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