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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살길을 직접 찾아 나서” 제다를 찾은 영화인들의 말말말
정재현 2026-01-01

수많은 영화인들이 제다를 찾았고 어디에서도 밝힌 적 없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들은 매일 열리는 토크 세션에서 무슨 말로 사우디아라비아 관객들을 환호하게 했을까. 영화제 기간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4인의 발언을 요약해 전한다.

숀 베이커 감독

차기작에 관해 처음 말한다고 운을 떼며.

“단편 차기작이 한편 있다. 패션 브랜드 ‘셀프 포트레이트’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만든 영화 <산디와라>로, 양자경이 1인5역으로 분한다. 이번에도 내가 연출, 각본, 편집을 맡았다. 장편 차기작은 <아노라>와 비슷한 규모로, 보다 코미디에 가까운 영화일 것이다. 독립영화 감독들에게, 특히 제작사가 꺼릴 만한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에게 제발 영화만 바라보고 살지 말라고, 살길을 직접 찾아 나서라고 조언하고 싶다. 지금은 90년대가 아니다. 나 또한 독립영화 감독이다. 영화 연출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고, 연출 이외의 직무에서 수입원을 찾아야 한다.”

배우 커스틴 던스트

할리우드 미투(Me Too) 운동 이후 변화한 업계 풍경에 대한 질문에 답하며.

“그간 우리가 참 많은 사람들을 감옥으로 치우지 않았나. 이젠 성범죄를 유야무야 눈감아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까! 그렇게 모두가 안전한 환경이 갖추어졌다고 믿는다. 많은 여성들은 그간 촬영 현장에서 감독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이때의 감독들은 물론 다 남자고. 그건 배우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나 역시 꺼냈어야 했던 말을 현장에서 힘이 없다는 이유로 참은 적이 많다. 당신이 어느 산업에 종사하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배우 아나 데 아르마스

<블론드>로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을 받은 이후 커리어 변화를 체감하느냐는 질문에 답하며.

“누군가는 내 오스카 노미네이션이 요행이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스스로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 <발레리나>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할리우드가 내게 요구하는 이미지는 아직도 액션 블록버스터에 한정돼 있다. 그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전부가 아닌데도 말이다. 앞으로도 내가 일하고 싶은 감독을 직접 찾아 나설 것이다. 나는 지금 위치에 안주하려고 할리우드에 오지 않았다.”

배우 앤서니 홉킨스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요즘 젊은 배우들은 대사를 왜 그리 웅얼거리듯 내뱉는지. 그래서 한 후배를 야단친 적 있다. 배우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직업인데 그렇게 우물대고 현장에 지각한다면 앞으로 널 위한 배역은 없을 거라고. 대사도 제대로 발화하지 못할 거면 근처 펍이나 가서 노닥거리라고. 그 친구는 아마 말런 브랜도 흉내를 냈던 것 같다. 그런데 브랜도 등의, 소위 ‘메소드 액터’라고 불리는 배우들은 정말 훌륭한 테크니션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연기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정체성을 질문하다 - <유난> 배우 조르주 카바즈

“디아스포라와 유이민. 정체성 상실 그리고 ‘타자’를 찾아가는 과정에 관한 영화를 아랍 문화권에서 상영하게 되어 기쁘다.” 2025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2025년 레드씨국제영화제 경쟁 섹션에서 2관왕(감독상,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유난>은 작가 무니르(조르주 카바즈)의 방랑기를 다룬다. 아직 독일 망명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무니르는 원인 모를 통증에 집필 욕구까지 잃어버렸다. 그는 괴로움을 못 이겨 대도시를 떠나 외딴섬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민박 주인 발레스카(하나 쉬굴라)와 그의 아들 카를(톰 블라시하)과 어울리며 기묘한 시간을 보낸다. <유난>을 통해 다수의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조르주 카바즈는 이 작품을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여겨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감응할 이야기”라고 정리했다. “소외감은 어디에 살든 누구나 느낄 감정이다. 관객 각자가 정체성에 관해 자문해온 시간의 답을 이 영화를 통해 얻길 바란다.” 독일영화의 전설 하나 쉬굴라와의 공연은 조르주 카바즈에게 “국제적 협업”이었다. 그는 “쉬굴라가 세심하게 독일어 악센트를 짚어주는 현장”에서 영화가 국경을 넘어 보다 다양하게 융화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유난>을 위해 다국적 스태프들이 뭉쳤다. 이들은 각자의 전문성은 물론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까지 작품에 녹여냈다. 이같은 필름메이킹이 계속 반복된다면 세계 영화시장은 인도주의로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인간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고뇌가 전 세계 어디나 동일하다는 걸 공유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 <싱크> 자인 두라이 감독

<싱크>는 요르단에서 온 모자 멜로다. 아들 바질(모하마드 니자르)은 조현정동장애 환자지만 학교도, 가족 구성원도 그를 문젯거리로만 취급한다. 오로지 어머니 나디아(클라라 쿠리)만이 바질을 돕기 위해 애쓴다. 두 모자는 몸과 마음,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괴로울 때마다 수영장을 찾는다. 영화의 제목처럼 물속으로 잠길(Sink) 때 이들은 유일하게 평화롭고 또 행복하다. 장편 데뷔작 <싱크>로 다양한 국제영화제를 순회 중인 자인 두라이 감독은 작품의 포스터에 드러나는 물의 이미지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핵심이었다고 말한다. “나디아는 배영을 하면서 물 위에 떠 있지만 그 뒤로 가라앉고 있는 바질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디아조차 진실을 외면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란 대개 위험과 고통을 동반한다. 영화 속 물은 미학을 완성하는 장소인 동시에 두 모자의 심리를 은유한다. 아들과 함께 가라앉고 있는 어머니의 내면적 공간인 셈이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요르단은 <아 라비아의 로렌스>등의 시대극, 혹은 SF인 <마션><듄>에서 마주한 풍경과 다르다. 사막이 아닌 대도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요르단의 풍경이 현실적으로 펼쳐진다. “이번 영화제에서 만난 한 요르단 배우가 ‘내가 아는 요르단 남부를 그려줘서 고맙다’라는 감상을 전했다. 요르단은 가난하고 불쌍한 나라가 아니다. 도시에서 고군분투하는 중산층도 존재하는데, 전세계는 늘 이 나라를 편향된 방식으로만 묘사한다. 앞으로도 서구 관객들에게 ‘보아라, 우리도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라며 당당히 맞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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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레드씨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