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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답게 자유롭게 재밌게! 결성 30주년을 맞이한 크라잉넛
정재현 사진 오계옥 2025-12-25

박윤식

- 결성 10주년엔 멤버 4인의 전역 기념행사를 마련했고, 15주년엔 에세이와 DVD를 출간했다. 20주년엔 일본 간사이 지역 투어를 했고, 25주년엔 기념 음반을 출시했다. 30주년을 어떤 방식으로 기념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한경록 지난 30년간 인디펜던트 뮤지션으로서 여러 이벤트를 손수 기획해왔다. 또 인터넷 서비스가 상용화되기 전부터 활동하다 보니 꽤 많은 아날로그 자료를 소장 중이다. 이 모든 걸 펼치는 전시회를 마련했다. 지난 30년의 바이오그래피와 더불어 우리의 30년과 궤를 함께하는 홍대 인디의 역사, 그리고 세계의 지난 30년까지를 함께 돌아보는 자리다. 기타리스트 상면이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이 친구의 작품도 걸어두었다. 상면이 회화로 재해석한 크라잉넛을 보면 우리의 세계가 또 확장된다.

이상면 어디서 어떻게 전시를 열지 고민하던 중 상상마당도 개관 20주년을 맞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상상마당이 흔쾌히 99일간 대관을 해주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상상마당이 라운지와 공연장을 가진 장소라 전시와 공연을 접목하는 기획이 가능해졌다. 이곳에서 연주도 자주 했던 터라 인디 30주년에 맞추어 사랑하는 선후배 인디 밴드들과 합동공연도 계속 펼치고 있다.

한경록 크라잉넛의 음악을 바탕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알랑가모르겄쑈>도 내년 1월 무대에 오른다. 전시장이 홍대에 위치한다는 점도 의미가 깊다. 1996년 <말달리자>가 인기를 얻은 이후 지하 공연장이 아닌 지상에서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자 ‘스트리트 펑크쇼’에 출전했다. 그 공연이 상상마당 앞과 명동에서 이틀간 열렸다.

- 입지 역시 주된 고려 대상이었나.

박윤식 그렇지. 청담동에서 열었으면 무지 이상했을걸. (웃음)

한경록 우리가 홍대 출신이니까. 크라잉넛의 진원지가 홍대 라이브 클럽 드럭이다. 크라잉넛은 홍대 라이브 클럽 합법화에 목소리를 높이는 등 지난 30년간 홍대 음악 신의 대소사에 늘 연대해왔다. 페스티벌, 콘서트, TV방송 등 크라잉넛의 음악을 경험할 창구는 많지만 우리의 원초성은 라이브 클럽 공연에 있다. 여전히 크라잉넛은 라이브 클럽 밴드다.

김인수 겨울에 홍대 인근으로 문화생활을 하러 온 분들, 공연 시작 전까지 대기할 장소가 없다면 이 전시를 찾아달라. 따뜻하고 무료다!

나답게 자유롭게 재밌게

김인수

- 전시장의 하이라이트는 크라잉넛의 30년 연표다. 크라잉넛의 역사와 지난 30년간 한국과 세계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교차해 기록했다. 30년치 연차가 쌓이니 근래 인터뷰에선 후배나 미래세대에 남기고픈 조언류의 질문을 받더라. 데뷔 초 ‘악동’ 타이틀이 붙던 때를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이상혁 우리도 여전히 배워나가는 중이다.

박윤식 30년차가 됐으니 후배들을 양성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동생들과 같은 필드에서 뛰어놀고 싶다. 함께 땀 흘리고 노래하며 서로를 격려해야지.

한경록 우리 모두 아직까지 음악이 좋고 재밌다. 여러 취미 중 음악이 가장 즐거웠기 때문에 음악으로 성공하는 게 단일한 목표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음악을 시작하는 친구들이라면 그때만 누릴 수 있는 재미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도 그 즐거움으로 지금까지 왔다.

- 30년 연표 중 인터넷 검색으로도 안 나오는 사건이 하나 있다. 1998년 5월 ‘인하대 축제 공연 후 인천 앞바다 다이빙 사건’은 뭔가.

한경록 만화 같은 에피소드다. 인하대학교 축제에 초대됐고, 반응이 좋았다. 뒤풀이를 즐기던 중 이석문 드럭 대표가 대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속 바보회 청년들이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을 언급하며 “너희는 용기가 없어 못 들어간다”라고 도발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멤버 전원이 인천 앞바다에 뛰어들었다. 행패는 아니었고 그냥 다이빙한 건데….

이상혁 그날 신고를 당해 파출소에 잡혀갔다. 이석문 아저씨가 파출소로 와서 “내가 인하대 철학과 교수인데, 이 친구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중이었다”라고 둘러댔다. 놀랍게도 파출소장 딸이 인하대에 재학 중이었다. (일동 폭소) 그렇게 훈방이 됐다.

김인수 참고로 철학과는 절대 학생들을 그런 식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웃음) 내가 철학을 전공해서 안다.

이상면 그날 심지어 숙소에 도둑이 들어 현금으로 받은 개런티를 몽땅 잃어버렸다. 정말 긴 밤이었다.

- 크라잉넛의 지난 30년을 분기점으로 구분하면 어떻게 나뉘나. 김인수씨가 멤버로 합류한 2001년 3집 발매, 셀프 레코딩을 도입한 2009년 6집 발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크라잉넛의 여러 시도 정도로 구분할 수 있을까.

이상면 언급한 세 시기 중에선 팬데믹이 가장 힘들었다. 음악을 업으로 삼는다는 건 ‘버티기’의 다른 뜻이라는 걸 그때 체감했다.

한경록 당시 크라잉넛 공식 유튜브 채널을 정말 열심히 운영했다. 매년 운영하는 경록절만 해도 관중 집합이 불가능하니 온라인으로 돌렸다. 덕분에 수많은 뮤지션들이 비자 없이 축제에 합류할 수 있었다. 섹스 피스톨즈의 글렌 매틀록, 러시아의 스타킬러즈나 소온지 등의 일본 밴드와 함께하며 새 항로를 개척했다.

박윤식 우리는 라이브 공연을 열고 싶어도 못하고, 팬들은 우리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던 시기다. 그 단절감이 엔데믹 이후 해소되며 공연과 음악의 소중함을 피부로 절감했다. 클럽 공연은 관객 가까이에서 연주하니 더욱 면밀히 소통해야겠다는 다짐도 새겼다.

이상혁

- 지난 30년간 여러 히트곡을 냈다. 밴드의 히트곡은 통상의 K팝 노래와 다른 양상으로 탄생한다. 발매 당시보다 여러 라이브 공연을 거치며 점차 인기를 키워간달까. 발동이 늦는 대신 생명력은 길다는 인상을 받는다.

한경록 우리는 인디 뮤지션이라 쉴 틈이 없다. 음악 노동자라 끊임없이 공연을 통해 사람들과 음악을 나누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30년의 호흡으로 노래를 멈추지 않은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을 수 있었다고 본다.

김인수 예전엔 음반 취입하기 전 몇번 합주해본 데모곡을 우선 공연에 올렸다. 그때 관객으로부터 받은 피드백을 종합해 음악을 개량할 수 있었다. 그렇게 관객과 일차적으로 접속한 노래가 세상에 공개되고, 공연 때는 다양한 편곡을 거치며 음악이 순환, 퇴고하므로 오랫동안 사람들 곁에 숨 쉴 수 있다.

- 크라잉넛의 대표 넘버인 <말달리자>는 위치가 독특하다. 특정 세대를 상징하는 곡인 동시에 불특정 다수의 청년에게 시대를 불문하고 젊음의 대표곡으로 호명된다. 이 노래를 만든 이상혁씨에게 소회를 묻고 싶은데.

이상혁 열린 해석을 지향하는 곡이라 매번 의미가 달라진다. <말달리자>를 만든 20대 초반엔 큰 의도가 없었다. 우리 5명 모두 사춘기가 늦게 찾아왔고, 오래 앓았다. 딱 그 정신상태로 만든 노래다. 아는 거 다 쓴 노래라고 보면 된다. (웃음) 닥치라고도 했다가 사랑을 담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넣었다. 경험도 일부 들어 있다. 당시 드럭에서 공연하면 글로 음악을 배운 관객들이 엄청나게 아는 체를 했다. 술이라도 마시면 이건 펑크가 아니라며 훈계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닥쳐’라는 가사가 나왔다.

- 펑크 스피릿도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나. 올해 영화계에선 요아킴 트리에르 감독이 “다정함이 새로운 펑크다”(Tenderness is the new punk)라는 명언을 남겨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상면 이토록 포악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저항 방식이 다정함이 아닐까. 아집과 혐오를 깨부수는 선봉장이 펑크였기 때문에 그 문장이 정말 와닿는다.

김인수 제임스 건의 <슈퍼맨>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쇼츠든 릴스든 SNS든 온갖 혐오 대잔치고, 시스템이 이를 부추기는 시대다. 음악 안에서 서로를 다정하게 챙기고 친구처럼 지내는 일도 워낙 희귀하다 보니 펑크 컬처도 다른 국면을 열어젖힌 듯하다. 어느 나라 국민이든 페스티벌에서 만나면 다 친구다. 국적보다 판(음반)을 한장이라도 더 파는 게 중요하지. (웃음)

한경록 낭만이야말로 반항이다. 사회가 개인을 부품화하며 유용성을 강요하지 않나. 톱니바퀴의 부속품처럼 살지 않고, 나답게 자유롭게 재밌게 톱니바퀴를 새로 만들어 친구들과 맞물며 사는 것. 그게 이 시대의 낭만이다.

유머 그리고 취향

이상면

- 크라잉넛의 모든 노래엔 ‘일단’의 전제가 붙는 것 같다. 아무리 고되고 지난한 인생이어도 우선 잠깐 오늘을 먹고 마시며 즐기자는 정신이 가득하다.

한경록 크라잉넛의 강점은 유머다. 설교보다는 피식 웃어넘기고,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았으면 그것만으로 가치가 충분하다는 말을 건넨다.

이상면 설령 심각한 노래라고 해도 우리가 연주하는 순간 다른 길을 걸을 거다. (웃음)

김인수 어릴 때 읽은 동화 하나가 기억난다. 꼬마들이 내일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그런데 내일을 기다리며 잠든 어린이들이 다음날 만나는 건 당연히 끊임없는 오늘이다. 따지고 보면 내일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 하루를 반복하며 살면 된다. 내일 마실 술 따윈 없다. 다 오늘 마셔야 한다.

- 3집의 수록곡과 동명의 영화인 모큐멘터리 <이소룡을 찾아랏!>에서 주연한 경험이 있지 않나. 과거 <씨네21> 기사를 찾아보니 <이소룡을 찾아랏!> 개봉 이전에는 영화 <3과 1/2 펑크> 3집의 수록곡과 동명의 영화인 모큐멘터리 <이소룡을 찾아랏!>에서 주연한 경험이 있지 않나. 과거 <씨네21> 기사를 찾아보니 <이소룡을 찾아랏!> 개봉 이전에는 영화 <3과 1/2 펑크>

김인수 <3과 1/2 펑크>는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도 했다. 그해 최고의 문제작이었다. 이걸 영화라고 할 수 있느냐는 말도 듣고. 한경록그때 <씨네21>에 기사도 실렸다. 미완성인 영화에 아무 전조 없이 제작사 로고 ‘드럭필름’만 뜨는 이상한 영화라고. (웃음)

이상혁 두 작품 모두 영화를 향한 이석문 아저씨의 열망으로 찍게 됐다. 맨날 술 한잔 걸치면 아트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한경록 그런데 우리도 영화를 좋아해서 괜찮았다. 한국에 국제영화제가 처음 생기던 시기엔 부산, 전주, 부천에서 매해 공연을 했다. <3과 1/2 펑크>를 틀던 전주에서 <이소룡을 찾아랏!> 감독을 만났다. 그 영화를 만들면서 독립영화기금도 냈던 것 같은데? 참고로 <이소룡 을 찾아랏!>의 이소룡은 아직도 찾질 못했다.

박윤식 <이소룡을 찾아랏!>은 시나리오도 없는 영화였다. 현장에 가면 매일 대본을 받는 식이었다.

한경록 와중에 <3과 1/2 펑크>는 시나리오가 있었어. (일동 폭소)

박윤식 그 감독 형이 배운 사람이었네. (웃음)

이상혁 비틀스도 영화 찍었다가 망했다고 들었다.

한경록 그래도 모름지기 록밴드라면 영화 몇편쯤 망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마저도 안 해보면 인생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한경록

- 크라잉넛 모두가 공통으로 좋아하는 영화인은 주성치라고 알고 있다.

김인수 주성치의 최근 연출작들도 OTT에 자주 올라오더라. 예전 맛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볼만하다.

한경록 공익형(김인수)이 우리에게 주성치를 전파했다. 그 정서가 크라잉넛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멋지다! 마사루><파타리로!>같은 만화의 유머도 우리를 형성했고.

이상면 <소림축구>개봉 당시 내한한 주성치를 만난 적 있다. 살면서 딱 두명에게만 사인을 받아봤다. 강수지와 주성치다. (웃음)

박윤식 그때 사진도 찍었는데 사진에 떨림이 그대로 포착됐다. 광둥어로 인사하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 다시 한번 30주년을 축하한다. 31주년의 계획도 세웠나.

한경록 새로운 30년을 준비해야지. LP판을 뒤집고 B사이드에 실릴 새로운 노래를 연주하려고 한다. 새로운 시대를, 지금 현재를 노래해야겠다.

김인수 우리 팬들은 B사이드가 더 좋을 거란 걸 안다.

이상혁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31가지 맛을 다 먹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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