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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불행의 연쇄작용, <허들> 한상욱 감독
이자연 사진 오계옥 2025-12-11

가볍고 경쾌한 작품이 이어지는 연말, 어쩐지 공중에 붕 뜬 느낌이 들 때 <허들>은 보다 차분하고 무게 있는 목소리로 현실의 중심을 잡는다. 실업팀 입단이 목표인 허들 유망주 고등학생 서연(최예빈)은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는다. 유일한 보호자의 부재. 아니, 갑작스러운 보호자 자리의 교체는 벼랑으로 내몰린 돌봄 청년의 현실을 가파르게 보여준다. 서연은 빠르게 의료지원과 복지정책을 알아보지만 어쩌다 한 항목씩 걸려서 아늑한 혜택 밖으로 쫓겨나기 일쑤다. 이제 막 스무살을 꿈꾸고 계획하던 어린 주인공의 삶은 비현실적일 만큼 절망으로 뭉개진다. 어떻게 도약할 수 있을까. 혹은 도약이란 게 가능은 할까. 여태껏 응달 아래 웅크리고 있던 이야기를 끄집어낸 <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한상욱 감독을 만났다.

- 실제 사건을 모티브 삼았다. <허들>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구체적으로 딱 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던 건 아니다. 가족 돌봄 청년에 대한 뉴스를 접했고 그 뒤에 조사를 해보니 무수히 많은 관련 사례를 찾을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주로 중장년층 자식 세대의 간병살인이나 노부부간의 간병살인을 더 가까이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 부담이 청년층으로 내려오면서 어린 세대에게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돌봄 청년이라고 해야 할지, 가족 돌봄이라고 해야 할지 그 단어조차도 완전히 정립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 말은 이 현상을 사회 전반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대중에게 가깝게 접근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를 시작하고 싶었다. 내가 처음 느꼈던 그 충격을 전달하고 싶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이해하길 바라서 내게 가장 가까운 언어인 영화를 활용했다.

- 돌봄 청년이라는 사회문제를 다루는 만큼 시나리오 단계에서 이를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화할지 고민이 컸을 듯하다.

소재 자체가 어렵다기보다 영화로 만들었을 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볼지, 그게 고민이었다. 더 많이 보게 하고 더 많이 알리는 게 영화의 중요한 과제이니까. 그래서 스포츠라는 소재를 더했다. 그때 자료조사를 하던 중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인생은 끝나지 않는 마라톤 같다”고. 진짜 언제 끝날지 모르고 계속 달려야만 하고 쉴 수 없고 누가 대신 뛰어줄 수도 없는 삶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계속 남았다. 그때 허들이 떠올랐다. 허들은 우리 인생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실제로 돌봄 청년은 간병인으로서의 책임감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문제들이 연쇄적으로 도미노처럼 쏟아진다. 허들도 그렇다. 한번 리듬이 깨져버리는 순간 남은 모든 허들이 무너져내린다. 직관적이면서도 은유적으로 돌봄 청년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활용했다.

- 돌봄 청년이 된 고등학생 서연은 생활비와 병원비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지만 아버지의 집과 덤프트럭이 있다는 이유로 모든 지원사업에서 배제된다. 그러나 영화는 복지사각지대만 비추지 않고 지역 체육특기자 선발 문제나 진로 경쟁, 간병 문제와 개인의 돌봄 책임까지 융합시킨다.

서연이와 같은 상황을 ‘스위스 치즈’라고 빗대어 말하는 분들이 있다. 스위스 치즈 표면에는 구멍이 송송 나 있는데 막상 자르고 나면 그 안쪽은 막혀 있다. 그런데 가끔 막히지 않은, 치즈를 관통한 구멍이 있는 경우도 있다. 서현이의 상황이 그렇다. 누군가 한명이라도 나서서 막아줬다면 지금의 결론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모두가 문제를 방치하면서 현재 상황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국내 의료지원이나 정책적 지원은 굉장히 다양하다. 그러나 아직 미성년자들이 이를 찾아 나서기엔 어려움이 많다.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대부분 신청주의다. 당사자가 그 정보를 알고 신청해야만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다. 당장 해결할 게 너무 많은 사람이 이 모든 정보를 알아보고 기간 내에 신청하기엔 무리가 있다. 현실에서는 돌봄 청년들이 이러한 제약 때문에 사기나 범죄의 타깃이 되기도 하고, 청소년들은 금전 문제로 유흥가의 유혹을 받기도 한다. 결국 이들을 보호해줄 사람도, 제도도 없다는 것. 거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 서연이 주변으로 기댈 만한 어른이 없다는 사실도 현실적인 빗길처럼 느껴진다. 아무것도 없기에 한번 미끄러지면 일어나기가 힘들다.

모든 어른이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지만 또 그의 어려움을 완전히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게 현실이었다. <허들>을 준비하면서 특정 인물을 악인으로 비추고 싶지 않았다. 우리도 그렇다. 다달이 얼마씩 정기 기부는 할 수 있어도 누군가가 우리 집에 들어와 살겠다고 하면 그것만큼은 어렵게 느껴지지 않나. 누군가의 절실한 요청이 내게 위협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외숙모와 삼촌도 자신들이 상황 속에 휘말릴까봐 두려울 뿐 내어줄 수 있는 것들을 내어주고, 병원과 관공서는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다만 작은 누수가 하나씩 모이면서 서연이를 무너지게 만든다.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누수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체제와 시스템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관심이 필요하다. 관심이 모이는 순간 변화가 생기니까.

- 서연이와 친구 민정(권희송)의 갈등이 정점에 다다른 순간, 둘의 입장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두 사람의 말과 태도 차이에 어떤 의도를 담았나.

실제 돌봄 청년 당사자의 인터뷰에서 그런 답변을 본 적 있다. “막연히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악순환 속에서 생의 의지가 점점 희미해지자 결국 이들이 무기력하게 기다리는 것은 간병인(가족)의 죽음이거나 환자의 죽음 혹은 둘 다의 죽음이다.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어렵게 살아온 민정이는 자신의 상황을 익숙해하고 제 삶처럼 받아들이지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뇌졸중을 맞은 서연이는 모든 상황 하나하나가 극적으로 느껴지고 절실하다. 그래서 서연이의 유일한 희망이 민정이에게 갔을 때 민정이는 알았을 거다. 자신이 그 기회를 받아버리면 서연이가 힘들어질 거라는 걸. 둘은 결국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기에 더더욱 잘 안다. 하지만 이 또한 이 둘의 현실이다.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할 상황이 아니기에 둘은 결과적으로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다. 어떤 불행은 이해의 영역 밖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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