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고 하던가. 영화 <넌센스>는 니체가 <선악의 저편>에 남긴 경구를 넉넉히 흡수한 듯한 괴담을 들려준다. 미로에 빠져든 자의 이름은 유나(오아연). 그는 보험금을 공정하게 지급하기 위해 손해액을 산정하는 전문 손해사정사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효율을 추구하는 그의 성격은 허위 사실을 지적하고, 사기 행각을 구별해야 하는 업무에 잘 맞아 보인다. 야근도 감수하며 잔업에 몰두하던 어느 밤, 일 처리가 능숙하지 못한 동료 보경(임현주)이 체념 섞인 한마디를 뱉어도 유나는 꿈쩍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경이 의문스럽게 자취를 감추고, 유나가 보경이 매듭짓지 못한 사건을 넘겨받기 때문이다.
처음에 유나는 그 건을 해결하기 어렵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암환자였던 남자가 저수지에서 실족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으니, 이것이 자살인지 아닌지만 명백히 밝히면 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사망보험금 수령자로 등록된 순규(박용우)와 대면하고부터 유나의 예측은 어긋난다. 망자와 어떠한 혈연관계도 없는 그는 자신을 웃음치료사라 소개할 뿐이며, 유나의 웃음도 보고 싶다면서 그녀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려 든다.
<넌센스>라는 제목이 예고하듯 이 영화는 수수께끼 푸는 묘미를 빚어내는 추리극이라기보다 수수께끼에 휘말려 변해가는 인물에 집중하는 심리극이다. 줄거리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표정 없이 살던 여자가 표정을 되찾는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관건은 이 표정이 어떤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지다. 유나는 투자자들은 물론 가족에게도 큰 피해를 입힌 아버지가 병상에 눕고부터 만사에 무감해진 것처럼 묘사된다. 남편의 회복과 가게의 번창을 기원하며 굿까지 벌이는 어머니(오민애)와도 감정적으로 멀어진다. 계속 그렇게 세상을 향한 빗장을 채울 수도 있었으나 유나는 순규가 자기 속을 꿰뚫어보듯 굴자 조금씩 벽에 금을 낸다.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 얼음을 녹인 셈이다.
영화는 나아가 순규가 타인을 간파해 조종하는 사례들을 나열하며 유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고 암시한다. 이때 카메라는 유나와 엄마 또한 가로지른다. 유나는 무속신앙에 진심인 엄마를 못마땅해하지만, 순규와 만난 이후 엄마와 비슷한 자세가 되어간다. 엄마와 다른 도구를 택할 뿐, 마찬가지로 고난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믿음을 키우지 않나. 다만 <넌센스>를 쓰고 연출한 이제희 감독은 그 믿음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다. 모녀를 부추기는 인간사의 부조리를 안타깝게 관조할 따름이다. “모든 것이 진짜인 동시에 가짜”라는 순규의 대사가 먼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라스트신이 이를 대변한다. 마지막에 이르러 석양에 묻히는 유나의 얼굴이 어떻게 일그러져 있을지 상상한 결과에 따라 결말에 대한 해석도 다를 수 있으리라.
close-up
한밤의 식당, 사무실, 그리고 이벤트 소품 창고까지. <넌센스>의 야간 신들은 주로 실내에서 펼쳐져 보다 과감한 색감을 자랑한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초록, 파랑, 붉은빛으로 물드는 얼굴들은 해가 떨어진 후에야 고개를 드는 인물의 본색을 대변한다. 이처럼 인상적인 화면에 기여한 이유석 조명감독은 <비닐하우스><너와 나>등에서도 솜씨를 발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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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희 감독은 <넌센스>를 만들면서 사이비종교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큐어>를 참고했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이 괴상한 방식으로 미쳐가거나 허무맹랑한 말을 믿게 되는 상황”을 설득력 있게 그리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넌센스>의 유나도 <큐어>의 형사 다카베(야쿠쇼 고지)처럼 진실에 다가설수록 어지러워한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질수록 자기 내면의 절규가 또렷이 들리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