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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아세안 신진 영화인들의 비상, 2025 FLY 영화제
이우빈 2025-11-13

2025 FLY 영화제의 개막식 전경. 올해의 영화제 슬로건은 ‘FLY Forward’였다.

지난 11월3일부터 6일까지 부산 영화의전당에선 ‘2025 FLY 영화제’(이하 FLY 영화제)가 개최됐다. 한국과 아세안(동남아시아 10개국이 수립한 지역 협력 기구)에서 모인 ‘한-아세안 영화공동체 프로그램’의 졸업생들이 부산을 찾았다. 그들이 만든 4편의 장편과 24편의 단편, 총 28편의 작품이 영화의전당에서 상영됐다. 아시아영화의 허브라는 부산의 명성에 걸맞게 부산광역시와 부산영상위원회가 공동 주최·주관하고 한-아세안협력기금(AKCF)이 후원한 대규모 행사였다. 11개국에서 날아온 ‘한-아세안 영화공동체 프로그램’의 졸업생과 참여 강사진 66명이 영화제에 초청됐으며, 개막식 땐 한국 외교부 관계자 등 80여명의 게스트를 포함해 300명 넘는 관객이 극장을 가득 채웠다.

올해 FLY 영화제는 2012년부터 ‘한-아세안 차세대영화인재육성사업: FLY’(주관 부산영상위원회·아시아영상위원회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이어진 관련 사업의 역사가 집대성된 자리였다.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인 ‘한-아세안 차세대영화인재육성사업: FLY’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3년을 제외한 11년 동안 2012년 필리핀 다바오를 시작으로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 아세안 10개국을 순회하며 치러졌다. 워크숍에 참가한 한아세안의 신진 영화인들이 2주 동안 멘토들과 함께 영화제작의 전반적인 과정을 익히고 결과물을 도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한-아세안 차세대영화인재육성사업: FLY’는 시행 이후 ‘한아세안 영화공동체 프로그램’(이하 FLY 프로그램)으로 확장되어 왔다. 결과적으로 총 309명의 한-아세안 신진 영화인들이 FLY 프로그램을 거친 뒤 각국에서 영화의 꿈을 펼치고 있다.

‘FLY 그 이후: 아시아 영화인들의 새로운 장’ 라운드 테이블 현장. FLY 프로그램의 졸업생 11인이 패널로 참여했다.

11월3일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FLY 영화제 개막식의 주인공은 미얀마의 장편영화이자 개막작으로 선정된 <나는 당신의 랍스터>(I Wanna Be Your Lobster…)였다. 아직 영화산업 체계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지 않은 미얀마에서 완성됐다는 의미가 더해진 작품이다. 피예 조 피요 감독은 지난 5월 서울과 부산에서 진행된 ‘한-아세안 차세대영화·영상기술워크숍: FLY POST LAB’의 수료생이다. <나는 당신의 랍스터>는 세 청춘이 음악을 매개로 관계의 일변을 겪는 이야기로, 피예 조 피요 감독의 말처럼 “작중의 공연 시퀀스가 100% 현장의 라이브 녹음으로 촬영된” 작품이다. 이는 주인공 스노우 역을 맡은 판 영 첼 배우가 실제 미얀마의 인기 싱어송라이터이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개막작 무대 인사에서 판 영 첼 배우는 한국어로 “한국에서의 첫 상영을 도와준 부산영상위원회, 부산광역시와 관계자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는 소감을 남겨 관객들의 큰 호응을 이끌기도 했다.

11월4일에 열린 두개의 포럼 행사는 FLY 영화제와 관련 사업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국제공동제작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먼저 ‘FLY 그 이후: 아시아 영화인들의 새로운 장’에는 11명의 FLY 프로그램 졸업생이 패널로 참여했다. 패널들의 중론은 FLY 프로그램이 실질적인 영화제작의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었을 뿐 아니라, 이후의 경력을 이어나가기 위한 인적 네트워크 확보의 중요한 계기가 되어줬다는 것이었다. 2014년 FLY 워크숍에 참여했던 인도네시아의 루키 헤르와나요기 감독은 “영화학교를 나오지 않은 내게 FLY 프로그램은 영화제작의 경험을 넘어 영화계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시간”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이후 단편 <어느 금요일 오후>로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 초청됐고, 장편 데뷔작 <Our Son>역시 로카르노국제영화제의 오픈 도어(마켓 프로그램)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말레이시아의 야지드 수하이미 감독도 “어떻게 영화 업계에 진입할지 몰랐던 때에 FLY 프로그램을 통해 차후의 진로를 확신”하게 됐다며 “FLY 프로그램의 동료들과 2022년에 만든 <The Sisters>가 런던단편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에서 상영됐다”는 성과를 전했다.

‘한-아세안 국제공동제작 모델 탐색: 공동제작부터 시장 진출까지’ 포럼에서 발표 중인 리 이브 본 애프터눈 픽처스 대표.

‘한-아세안 국제공동제작 모델 탐색: 공동제작부터 시장 진출까지’ 행사에서는 최근 영화산업의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국제공동제작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 위주의 포럼이 진행됐다. 김영 미루픽쳐스 대표가 진행을 맡았고, 3명의 FLY 프로그램 졸업생과 <엄마를 버리러 갑니 다>로 한국-베트남 국제공동제작의 성공을 이끈 최윤호 SATE 대표가 패널로 자리했다. 말레이시아 애프터눈 픽처스의 리 이브 본 대표는 프랑스와 중국의 공동제작 영화에 참여했으나 작품의 상영 협의 등이 세금 문제로 몇달간 지연된 경험을 전했다. 결국 영화는 중국에서 상영되지 못했다. 그는 여러 시도 끝에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프랑스 합작 영화 <지금, 오 아시스>(Oasis of Now)를 제작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섹션에 초청되는 등 수많은 국제공동제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청작 <체커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의 공동 제작자인 태국의 매넘 차가식 프로듀서는 “국제공동제작의 핵심은 다양한 문화권에 대한 깊은 이해”라며 “한국의 <수상한 그녀>를 리메이크한 태국의 <다시, 또 스물>(Suddenly Twenty)이 태국 관객들의 유머 코드에 적절히 스며들지 못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한국과 공동제작 중인 스릴러 장편영화 <스킨스>를 준비하며 한국의 영화 문화를 깊이 탐구하고 있다. 이처럼 2025 FLY 영화제는 한-아세안 중심의 국제공동제작 체계를 면밀히 점검하며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으로 남았다.

사진제공 부산영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