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년에 종종 나갔던 한 모임이 있다. 대화의 주제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건 ‘딴나라당’, ‘쥐명박’, ‘닭근혜’ 욕이었다. 취기가 오르면 <한겨레><경향신문>을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좀더 어울리며 기다리다 보면 풀뿌리 운동을 같이할 수 있겠거니 했지만, 2012년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자 선거 궁리밖에 없었다. 그즈음 발길을 끊었다. 그해 선거들은 그들의 적(이자 나의 적)이 이겼다. 일차적으로는 정치인들이 책임질 일이겠으나, 이기는 데 필요한 일을 그들이 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했던 욕을 또 한다고 해서 적의 지지율이 깎이지는 않는다. 지지 진영이 없는 시민들을 만나지도 않았으니 우군을 늘릴 수도 없다. 때마침 출현한 뉴미디어로 인해서 모임은 더 활기를 띠고 신규 참여자도 들어왔겠지만, 이미 모인 사람들의 동질성이 더 강화되고, 원래 성향이 흡사한 사람들이 더 모이고, 늘 하던 말의 열기만 더 오른 것에 불과하다. 그때 그 모임 사람들이 지난 10여년간 어떻게 지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온라인을 통해 그 부류 사람들을 항상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고 나서도 달라지지 않았고, 이기고 나서도 그대로였다. 공격성은 넘쳐났지만 적에게 직접 타격을 주는 수준은 약했다. 적이 거대한 잘못을 저질러야 이길 수 있었다. 그들의 공격성은 실질적으로는 군소 세력이나 내부 비주류, 진보적 비판 언론에 집중되었다. 이는 국민의힘과의 싸움과는 달리 내뻗는 족족 주효했다. 더 놀라운 건 그러고도 유산은 분할되지 않고 승자의 독차지가 됐다는 사실이다. 그럼 살아남은 제패자들은 평화롭게 서로 나누며 살 수 있을까? “MBC의 친국힘 편파보도가 언론 자유인가.” 자신에 대한 비판 보도를 두고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말이다. <한겨레><경향신문>을 몰아붙이는 것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사는 것이 그렇다. 꼴 보기 싫은 놈들을 들어내면, 가까이 남은 인간 중 또 원수가 생긴다. 인간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갈등은, 가까이서 벌어지는 갈등이다. 그는 50만~300만원씩 축의금이 걷힌 딸 결혼식을 향해 의혹과 비판이 번져나가자 이런 말도 했다. “암세포에 세뇌된 조절 T세포는 면역세포들로부터 암세포를 방어하게 되고, 결국 암세포가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자신은 면역세포, 적은 암세포, 내부나 언론의 비판자는 ‘암세포에 세뇌된 조절 T세포’라는 소리다. 그토록 공격했는데도 ‘암세포’가 아직 기승을 부린다니 안타깝지만, 그가 돌아봐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면역세포든 조절 T세포든 자기 내면과 조직에서 얼마나 힘이 있는가. 다수파라 으스대는 집단도 실상은 ‘소수들’의 연대다. 그 소수들 사이의 긴장과 공존이 바로 면역체계다. 민주당이 시민운동가 최민희에게 자리를 내줬던 것도 그런 이치 아니었나. 그러나 그와 현실 정치는 “참 이상한 때에 만났어(<파이트 클럽>)”. 정작 그와 같은 인사들이 당내 주류 지위를 굳히는 과정에서 당의 면역체계는 망가졌다. “국민의힘부터 욕하라”라고? 고작 국민의힘보다 낫다는 걸 자랑이라고 하고 있나. 훌륭히 이기기 위해 소수파도 대선 후보로 올릴 줄 알던 ‘김대중노무현의 민주당’은 사라졌다. 그와 그들이 공격해온 대상은 적이나 배신자가 아니다. 자기 자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