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전에 이 자리에서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결과물로 만나게 되어 감사한 마음뿐이다. 하지만 아직 하루 동안의 긴 여정이 남아 있다.” 지난 10월28일, CKL 기업지원센터에서 ‘CREATIVE LAB: 중/저예산 영화 기획개발 프로그램’(이하 ‘크리에이티브 랩’)의 프로젝트 피칭과 비즈니스 미팅이 개최됐다. 크리에이티브 랩은 서울독립영화제가 2019년부터 운영해온 독립영화 기획개발 사업의 연장으로서, 12명의 업계 전문가가 멘토로 참여해 청년 창작자의 기획 역량을 강화하고 콘텐츠 산업 진출을 지원한다. 단순한 멘토링을 넘어 실현 가능성을 전제로 한 시나리오 발굴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크리에이티브 랩은 신진 창작자에게는 도약의 발판이자 산업에는 신선한 자극이 되어왔다. 특히 지난해부터 한국콘텐츠진흥원과의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의 범위와 대상이 한층 확장되었고, 이에 따라 지원자 수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본격적인 피칭에 앞서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프로그램위원장은 “이번 행사가 한국영화의 단단한 허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기대감을 전했다.
2부로 나뉘어 진행된 프로젝트 피칭에서는 총 24편의 시나리오가 무대에 올랐다. <은수>(김예원), <황혼의 왈츠>(조현경), <반 신반의>(남서정), <파계호>(박종우), <킬러소녀 은퇴합니다>(김선빈), <카페 스톡홀름>(원치현), <예민한 시대의 성숙씨>(목규리),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송진경), <링 위에서>(이규빈), <다시 만 난 우리>(이다영), <ㅈㅣㅂ>(송민석), <피드>(황여경), <돼지잡기>(오상민), <대리기사>(이태주), <열녀 옥이 열애사>(김윤선), <슈퍼 노바>(황다슬), <안방>(남순아), <업다운>(오정선), <마그마>(펠트킴), <매장>(이정호), <보구녀관: 간호원양성소>(김지원), <결혼의 정 석>(윤가연), <현란>(김준희), <4월의 맘모스>(한원영) 등이다. 심리 스릴러와 오컬트 호러, 스포츠영화에 이르기까지 무대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가득했다. 지난 6개월의 성과를 응축한 프레젠테이션은 각자의 방식으로 설득력을 더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내는가 하면, 몰입감 넘치는 대화 한 장면만으로 무대를 가득 채운 참가자도 있다. 피칭 직후에는 비주얼 설계와 음악 활용 등 구체적인 구상에 대한 질의응답이 오가며 현장의 열기를 더했다.
피칭 이후에는 두 부문의 시상식이 이어졌다. 프로그램 참여도와 완성도를 고려해 선정한 ‘우수상’은 <돼지잡기>, <ㅈㅣㅂ>, <열녀 옥이 열애사>에 돌아갔다. 오상민 감독의 <돼지잡기>는 성노동자와 외국인노동자, 동물권을 아우르는 연대를 짜임새 있는 각본으로 그려냈다. 송민석 감독의 <ㅈㅣㅂ>은 ‘가장 가까운 존재에 대한 공포’를 한정된 공간 안에서 세밀하게 구축한 미스터리 스릴러다. 김윤선 감독의 <열녀 옥이 열애사>는 조선의 열녀 소옥이 수백년 뒤 한국에서 부활하는 설정을 통해 시대를 넘나드는 매력적인 소동극을 펼쳐 보였다. 산업 관계자들의 현장 투표로 선정된 ‘피칭인기상’은 <킬러소녀 은퇴합니다>의 김선빈 감독, <열녀 옥이 열애사>의 김윤선 감독, <4월의 맘모스>의 한원영 감독에게 돌아갔다. 세 수상자 모두 자신감 있는 피칭과 세밀한 레퍼런스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명료하게 구축해냈다.
시상식 이후에는 자리를 옮겨 산업 관계자와 신진 창작자를 위한 1:1 비즈니스 미팅이 이어졌다. 매력적인 창작자를 선점하려는 제작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129건의 미팅이 성사되며 현장은 기대와 긴장으로 활기를 띠었다. 프로젝트별로 20분씩 최대 7회까지 진행된 미팅에서는 제작 예산과 실현 가능성 등 보다 현실적인 논의가 활발히 오가며 구체적인 협업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간이었다. 올해로 51회를 맞이하는 서울독립영화제의 노하우가 응축된 이 자리에서 정체된 한국영화의 미래를 다시 움직이게 할 새로운 힘이 싹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